2007. 10. 21. 16:39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긴데 강 이름도 없었어.
물론 소양강 상류겠지만 별다른 이름은 없고 그냥 용대리물이라 불렀지.
용대리 알지? 황태로 유명한 데고, 전두환이 유폐 됐던 백담사 있는 그 곳.
한계령 미시령이 거기쯤서 갈라지지 아마?
저 끝에 보이는 데가 내 살던 동넨데,
거기서 한 20~30리 위가 용대리야.
(요까지가 먼저 썼던 글이고...)
후후후 저게 바로 나지.
사진을 뒤집어 보니 1968년 1월 6일 이라고 써있더군.
저 때가 아마 4학년땐가 5학년 땐가였을 거야.
겨울이면 하루종일 얼음판에서 살다시피 했어.
아침을 먹자마자 나가서는 어둑해져서야 들어왔으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겨울엔 안이구 밖이구 간에 뭐하고 놀만한 꺼리란게 없었잖아.
물론 여름에도 마찬가지지,
두메 촌놈들 소일거리란 게 강에서 멱감고 고기잡는 거밖에 더 있었겠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엔 진짜 얼음두께가 50cm는 됐을거야.
해마다 인제읍에 400M 정도 되는 빙상트랙이 5~6개는 만들어졌는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저 자리에도 있었고
사진에 보이는 다리 위에도 또 하나 있었어.
그거 만들고 관리한다는게 보통 일이 아니지.
강원도에 눈이 좀 많이 오나? 한번 쌓여봐,
그거 넉가래로 치우려면 예닐곱명이 매달려도 한나절감이야.
당연히 애들 힘으로 될 일은 아니고 어른들이 해야하는데,
저긴 맨 군부대 동네잖아. 그러니까 군인들이 관리했단 얘기지.
보통 정성이 아니지,
저녁이면 빙판에 물 뿌리고 사람 통제하고 심지어 야간에 보초까지도 세웠다니까?
당시엔 군부대끼리의 스케이트 시합이 엄청 치열했어.
아마 춘하추동을 통 털어도 가장 큰 스포츠 행사였을거야.
특히 계급별 릴레이가 승패를 가름질만큼 점수가 큰 경기이다 보니
스케이트를 탈줄 모르면 아예 진급할 생각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지.
말단 지휘관부터 시작해서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죄다 얼음판에 매달렸는데
서울에서 사제私製 코치까지 불러들였다니깐! 정말로!
참, 인제에 3군단 사령부가 있다고 한 말 기억하지?
그러니까 군단 대회란 말인데, 그건 바꿔말하면 사단 대항이거든. 엄청 큰 시합이지.
시합날에 임박해서는 야간에도 연습을 했을 정도야.
스케이트장을 군인 트럭이 빙 둘러싸서 헤드라이트로 비춰주는거지.
한마디로 대단했어 아무튼.
흐이휴~, 저 궁상들 좀 봐. 동네 애들이야.
저 중에 중학교 교복입은 애가 대장인 셈인데, 사진찍는 것도 다 쟤가 주선한거지.
글구보니 이 사진은 내가 5학년땐가 본데?
왜냐면 재랑 나랑은 2년 차이거든. 그리고 내가 6학년 1학기에 전학을 갔으니까.....
5학년때가 분명한데......
그렇다면 나와의 마지막 이별을 생각해서 기념촬영을 했던 건가...???
이제 생각하니 고맙기 짝이 없는 형아였네 그랴.
그나저나 저 중에서 내가 누군진 알겠어? 한 번 맞춰봐바.
내가 왜 이 사진을 뵈주냐면, 당시에는 다들 사는 행색이 저랬다는 거지.
내가 처음 스케이트 살 때만해도 스케이트 있는 애가 5% 정도 됐을까?
대부분 탄통뚜껑이나 철사로 썰매를 만들어서 타고,
중학교 정도의 큰애들은 더러 대장간에서 벼린 스케이트,
- 거 왜 송판을 발 모양으로 잘라서 대충 게다짝처럼 만들고
- 거기에 주물로 만든 칼날을 따로 사다가 붙이는.
- 양 옆에 못을 박아서 끈으로 고정시켰었는데, 본 적 있어?
그런거 생각하면 내가 4학년때 제대로 된 스케이트를 가졌다는 사실이 대단한 파격이었단 거지.
사실은 형이 아버지한테 떼를 쓰라고 코치를 한 것인데, (아니다, 코치가 아니라 욱박질렀던 건데)
왜냐면 난 어려서부터 생전 떼라는 건 모르고 컸거든.
그래서 늘 내겐 부모님이 다 알아서 배려를 해주셨는데,
그렇지만 저 스케이트는 당시에 상당히 高價였잖아. 당연히 살 형편이 안됐지.
그러거나 어쨌든간에 작전이 맞아들어서 사긴 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형이 혼자 타는 게 심심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어.
(아무튼 그런 내막을 자세히 말해주다간 집안 내력까지 다 나오게 생겼네, 더 묻지말어.)
얼마나 어렵게 산 스케이튼데 두고두고 탈 수 있는 걸루 사야되잖아.
그래서 내 발보다 두배는 더 큰 걸로 산 것 같아. 중학교때 까지도 탔으니까.
앞 코에 양말이나 걸래쪼가리 같은 걸 짠뜩 밀어넣쿠 탔어. 발목 접질리기 딱 좋았지.
그 헐렁한 유격을 없애자니 또 얼마나 구두끈을 옥죄였겠냐구.
처음 얼마간은 피가 안 통해서 굉장히 아파.
땀이 좀 나면 괜찮아지는데, 그럼 다시 헐거워지니 원.
그래도 그걸 서로 타겠다고 누나랑은 얼마나 싸웠던지.
10m 타고 바꾸고 11m 탔다고 싸우고...ㅎㅎㅎ
그래도 주인은 나잖아? 형도 내 편이고.
그래서 나중엔 나 없을때면 누나가 혼자 몰래 나가서 탔는데
못 탄 봉창을 하겠다고 한번 신으면 벗지도 않고 트랙을 수십바퀴씩 도는 거였어.
속 모르는 남들이 보면 지구력이 대단하다고 혀를 찼겠지.
그래봤자 소용없어, 스피드가 없으니까.
내가 운동신경이 남다른데다가 눈썰미까지 있어서 금세 잘탔어 나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젤 중요한 게 폼이거든.
첫 해 지나 두번째 해인 5학년때는 자세가 딱 잡히고 펄펄 날았지.
얼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착 구부리고 물흐르듯 유연하게 코너워크해 빠져나갈때,
그거 얼마나 폼나는지 알아?
그때부턴 내가 빙판에 나가서 스케이트를 탁 신고 몸을 풀기만해도 어른들이 뒤로 줄을 쫘악 서는 거야.
그렇게 대략 한 20바퀴쯤 돌다가 벗고, 다시 신고 타고 하는 건데,
몇바퀴 돌다보면 나중엔 내 뒤로 수십 명이 줄지어 따라오는 거 있지?
암튼 그래서 형이 대회에 나가게 해주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녔는데 어쩐 이유인지 출전은 못하고 말았어.
그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는데, 참가비가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닐 것 같은데....
짐작에 학교에 스케이트부가 있었는데 내가 거기에 들지 않아서 학교에서 승락을 해주지 않았던 걸거야.
물론 치맛바람도 있었겠지만.... 국민학생은 학교대항 시합만 있고 마구잽이 개인전이란 건 없었거든.
아, 지금 생각하니 그렇구만. 절대로 실력은 누구한테 딸리지 않았었으니까 말이야.
참, 나중에 세계 뭔 빙상대회에서 3000m 우승했던, 이영하(?) 그 친구도 내 또래 인제출신인데,
누군지 모르겠어. 나중에 들어 알은 거지. 원통살았다지 아마?
하긴 내가 어려서 떠나으니.......
훗날 중학교 2학년때 원 풀었지. 대회 나가서 싹 쓸었어,
중등부는 물론이고 일반부 1만m에까지 출전해서 준우승했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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