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 평전 (2)

2007. 12. 20. 15:19책 · 펌글 · 자료/ 인물

 

 

 

 

 

동지들!

오늘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던 인민의 부대로서 행동하고 싸워야 합니다.

인민의 군대인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인민을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고 인민을 함부로 죽이거나 괴롭히면 안 됩니다.

설사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정당한 인민재판의 절차를 거쳐 심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총을 들이댄 적이라 할지라도 모두 우리의 동포, 우리의 형제입니다.

전투 중에 죽일 수는 있지만 일단 포로로 잡으면 절대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민의 군대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율이며 이를 어기는 대원은 인민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름으로 처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순히 총을 든 군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장 크고 중요한 임무는 남조선 인민들에게 미제국주의와 그들이 하수인 이승만 도당의

죄악상을 널리 선전하는 일입니다.

압제에 신음하는 인민들을 투쟁에 나서도록 선동하는 일 입니다.

이승만에 반대하는 양심적인 세력을 조직하는 일 입니다.

민족통일과 계급해방을 선전하고, 선동하고, 조직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것입니다.

이러한 과업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극좌적인 구호나 폭력, 소영웅주의적이고 모험주의적인

폭력살인은 반동을 이롭게 할 뿐입니다. 혁명을 갉아먹는 크나큰 죄악에 불과합니다.

지나간 일은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당성이 훌륭하고 전투를 잘하는 대원일지라도 이 규약을 어기면 가차 없이 처벌 될 것입니다.

인민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름으로 과감히 처단할 것입니다.

명심하기 바랍니다."

 

 

 

 명한 것은, 그가 추구한 이상이 여러 가지 한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생전 그가  대항해 싸운 적들의 부당성을 희석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식민지 약소민족의 주권을 위해,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인 일본과 미국의 침략에  저항해 모든 것을 바친

세계적인 혁명가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실로 그가 이끈 유격대의 규모와 전적, 그리고 끈질김은 세계의 민중혁명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을 남긴 이 인물에 대해, 그러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의 격류를 건너갈 때 반드시 딛지 않으면 안 되는 징겁다리와도 같은 전설적인  혁명가로서

수다한 기록 속에 등장하면서도, 그에 대한 연구 자체가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여러 회고록에 간간이 신비의 인물로 묘사되거나 소설 속에나 등장할  뿐 이었다.  

남부군 출신 작가 이태에 의해 쓰인 유일한 일대기는 반공의 잣대를 의식한 때문인지

지나치게 북한을 비난하는 입장에서 그를 해석함으로서 근본적인 오류를 토대로 한데다

사실관계에서도 틀린 부분이 너무 많아 신뢰할 만한 책이 되지 못했다.  

이를 알고 있는 누군가 이현상의 일생을 쓰고자 했더라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줄곧 음지에서 이름을 감춘 채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변변한 사진 한 장 남겨진 것이 없고,  절친한 벗들도 모두 죽어 증언할 사람이라곤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악스러울 만큼 자료 정리가 되어 있지 않는데다 권력자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왜곡되고 은폐되어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비밀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p30)

 

  

 

 

 

이옥자가  처음 만난 이 무렵,

이현상은 이미 지리산유격대 사령관으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남로당 간부부장이라거나 일제하의 전설적 노동운동가 이현상이라서는 결코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서도 아니었다.

매일 죽음을 넘나들며 사나워질 대로 사나워진 유격대원들에게 신처럼 받들어질 때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는 본성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수많은 전투를 겪은 당 간부나 유격대 부대장 중에도 막상 적을 만나면 두려움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리거나

남모르게 다리를 후들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용감한 부대장 중에는 일본군으로부터 훈련받은 버릇이 남아 하급대원들을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일도 흔했다.

아무리 갑작스런 전투가 벌어져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자기 몸을 먼저 사리는 사람은 대원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었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부하들을 먼저 챙기고 일상생활에서도 말과 행동이 똑바른 사람이라야 지도자로 존중받았다.

이현상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머리 위로 총알이 핑핑 날아다니는 중에도 전혀 겁을 먹거나 긴장하는 기색없이 당당하게 지휘했고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서도 부상당한 대원을 먼저 챙겼다.

이현상 곁에만 있으면 두려움도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

상급 지휘관들에게는 엄했으나 하부 대원들에게는 상처를 돌봐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전략전술을 짜는 데 있어서도 뛰어나서 작전회의 때마다 부대장들을 감탄시키곤 했다.

이현상이 모든 대원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고 아버지처럼 모셔졌다는 이유를 들어

그가 군사지도자 라기보다 정치지도자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지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의 전부적인 대범함과 지도력, 이를 받쳐주는 뛰어난 두뇌와 인품이 없었다면

이후 수년간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유격대 사령관으로 존중받고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칠고도 용감무쌍한 부대장들이 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부 대원들에게 이현상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14연대 출신들은 일본군식 명령체제에 익숙해 하부 대원들에게 반말로 명령하거나 따귀를 때리는 등 폭력적인 언행을 하기 일쑤였다.

이현상은 이를 엄격히 규제했다.

부하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잘못을 했다고 해서 욕을 하거나 폭행을 가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강조했다.

자기 자신부터 솔선수범해 여자는 물론이요, 나이가 아무리 어린 대원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써서 존중해주고,

사소한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하여 감동을 주었다.

유격대 사이에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이 강조될 때도 그는 특정인을 야단친 적이 없었다.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는 물론, 단둘이 앉은 자리에서도 특정인을 두고 모욕을 주지 않았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뒷공론을 하지도 않았다.

간부들에게는 엄격했지만 일반 대원들에게는 늘 칭찬과 격려로 다독였고,

그것도 지나치지 않도록 어쩌다가 한마디씩 하여 더 큰 감동을 주었다. 

(p308)

 

 

 

 

   

 

 

은 기나긴 협상 동안 한번도 남한의 유격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 측에서 지리산과 소백산맥 일대에 남은 유격대  천여 명을 안전하게 보내줄테니

데려가라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남한의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북한 측은 이 제안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협상 책임자인 김일성은 휴전 직후 행한 연설에서 전쟁으로 고생한 모든 군무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지만

남한 유격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로서 남한의 산중에 남은 유격대는 전쟁포로로 대우받을 권리와 기회를 상실했다.  

북측이 유격대를 외면한 공식적인 이유는 이들을 지하로 침투시키기 위함이었다.

노동당은 휴전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가능한 사람은 모두 하산하여 지하로 들어가라고 지시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죽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은 휴전협상 마지막 날까지 그들의 존재를 숨겼으나,

이현상과 함께 숨져간 남한 유격대를 잊지는 않았다.

평양의 조선혁명박물관에는 아마도 강동정치학원 시절에 찍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이현상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 조국 해방승리기념탑의 적후 인민 유격대원들의 투쟁 편에는 이현상과 빨치산들의 군상 조각이 세워져 있다. 

김대중 대통령 방문 당시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을 안내한 여성은 이현상의 막내딸 이상진이었다.

 

 

 

 

.

 

  안재성 지음. 실천문학사. 2007년 7월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저 라틴아메리카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알아도 혁명가 이현상은 모른다.

마오쩌둥, 호치민, 티토, 카스트로, 그리고 김일성은 알아도 이현상은 모른다."

체 게바라 얼굴이 박힌 티셔츠 대신에 이젠 이현상 선생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으면 어떨까?  (김성동)

 

 

 
 
 

 

사 D장조 op. 123

Ludwig Van Beven (1770-1827)

 

 

 
 

 

 

 

 

 

 

지리산 / 김지하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
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
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히 흘러
울부짓는 것이여 깃발이여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한 자루의 녹슨 낫과 울며 껴안던 그 오랜 가난과
돌아오마던 덧없는 약속 남기고
가버린 것들이여
지금도 내 가슴에 울부짓는 것들이여
얼어붙은 겨울 밑
시냇물 흐름처럼 지금도 살아 돌아와
이렇게 나를 못살게 두드리는 소리여
옛 노래여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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