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7. 12:28ㆍ책 · 펌글 · 자료/역사
콰이江, 태면철도의 노예들
들은 적이 없는 정글을 파헤치며 타이에서 미안마로 철도를 놓으려고 계획했던 대본영 육군부가, 계획을 결정할 즈음
열대의 가혹한 자연 조건을 어느 정도 계산했을까?
보급로도 없이 정글 속 깊숙한 곳에서 철로를 부설하는 공사가 지극히 힘든 공사가 될 것임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우기에는 탁류가 소용돌이치는 콰이강과, 암석 지대가 앞길을 가로막는 산악 지대를 포함해 415Km에 이르는 구간을
곡괭이·정·삽 따위의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인해전술로 공사를 마치려 했다.
맹렬한 기세의 빗줄기가 연일 내리쳤다.
땅은 진흙탕으로 변하고 때때로 빠지면서 걸어야 했고, 트럭으로 물자를 운송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ls똑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분소에서는 포로 7,000명 중 3,087명이 사망했다.
1일 쌀 100g 배급이 1개월 동안 이어졌다. 물론 부식 같은 건 없다.
이 배급은 일본군이 결정한 지급량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식사밖에 지급할 수 없는데 어떻게 공사 현장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단 말인가?
포로는 늘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누구나가 영양실조에 걸렸다.
영양실조에 체력이 없는 몸으로 콜레라나 풍토병에 걸리면 버틸 재간이 없다.
건설 과정에서 포로와 노무자 4만 4,000명이 사망. 99.9%가 이런 영양실조와 콜레라, 이질 같은 전염병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붓으로 삼고 흙이나 풀을 개어 물감으로 삼아서 이 '지옥'을 그렸던 포로가 있다.
『태면 철도의 노예들』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레오 로링의 서화집에는
하루에 50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던 전염병 환자의 모습,
밀폐된 화물차에 모믈 싣고 닷새나 이동해야 했던 포로의 고통, 열대성 궤양으로 살이 썩어 뼈까지 드러난 포로의 모습,
콜레라 환자의 고통, 일본군이 저지른 수많은 잔학 행휘 등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포로의 한 사람으로서 정글 깊은 곳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를 헤맸던 레오 로링에게 태면 철도의 건설 현장은
'지옥' 그 자체였다.
"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 빗줄기와 싸우면서 야자 잎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조잡한 숙사를 지었다.
작업이 끝난 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지겨운 죽이 나왔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중엔 몇 번이나 배가 아파 잠을 깨서는 가까운 도랑으로 달려가 변을 봐야 했다.
어떤 때는 그곳에서 20분이나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면 더 자고 싶은 욕망과 조금이라도 마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과 빨리 싸고 싶다는 생리 반응으로 몸을 떨었다.
나뭇가지에 달랑 천막을덮어 놓은 텐트 위로는 어느새 1인치 정도 물이 고였다.
나는 용변을 마치기 위해 용을 써야 했고, 다시 텐트로 돌아와서는 잠시 울면서 내 운명을 저주했다.
1943년 봄이 다가오면서 일본 군사의 초조감은 눈에 보일 정도로 커졌다.
본부의 명령대로 철도가 완성될 것 같지 않은 예감에 일본 병사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당연히 자신들의 불안감을 발산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눈을 돌렸다.
감시병이 어디선가 영어의 '스피드spped'라는 말을 배워 끊임없이"스피도! 스피도!"라고 고함치면서
소름끼치는 대나무 장대를 움켜쥐고 우리들 머리 위에서 감시했다."
그러나 로링의 저주받은 운명은 더욱 비참한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풍토병, 열대성 궤양, 일본인-조선인 감시원과의 마찰…….
포로의 수기 속에는 반드시 '감시병'의 잔학 행위가 그려져 있다.
어니스트 고든은 영국군 포로 출신으로 지금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 『죽음의 계곡을 넘어-콰이 강 수용소』에는 감시병의 모습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이 감시병은 어떤 때는 철도대의 병사이고, 어떤 때는 수용소의 일본인 하사관이고,
또 어떤 때는 조선인 군속이기도 하다.
고든에게 그 차이는 의미가 없다.
자신들을 관리, 구타하는 자의 총칭을 '감시병'으로 기록하였다.
- 조선인 BC급 전범,'해방되지 못한 영혼' 중에서 발췌하여 옮김 -
덤으루~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대, 일본군은 아시아의 영국군 세력의 중핵인 인도를 공략하는 작전의 일환으로 방콕과 랭군을 있는 장거리 수송 철도를 밀림에 건설하고 있었다. 이 공사의 한 부분이었던 콰이강 계곡 다리 건설현장에 노동자로 투입될 영국군 포로들이 수송되어 온다. 포로수용소장이었던 일본군 사이토 대좌는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으며, 그를 위해 한 명의 인력이라도 더 투입하기를 원하지만, 영국군 대표인 니콜슨 대령은 전쟁포로에 관련된 협약인 제네바 협정의 규정상 장교들을 노동에 투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맞선다. 이 틈을 타 미군인 쉬어즈는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엄격하지만 인간미를 갖춘 사이토 대좌는 니콜슨 대령에게 자신의 뜻을 꺾고 다리 공사의 주도권을 영국군 포로들에게 넘겨 준다. 니콜슨 대령은 철저한 군인정신을 발휘해 포로들을 이끌어 오히려 일본군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 효율적으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하게 된다. 포로수용소의 영국군 의사는 니콜슨 대령에게 일본군의 다리 건설을 돕는 행위는 사실상 반역이며, 규정상 노동을 피할 수 없다고는 해도 굳이 일본군보다 더 잘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니콜슨 대령은 그 말을 무시한다. 그의 목적은 일본군에게 영국군의 능력과 명예, 그리고 자존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한편 인도 주둔 영국군 사령부는 일본군의 전진을 막을 작전을 구상 중이었으며, 그 구상 중 하나에는 일본군의 철도 건설 저지를 위해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는 계획이 있었다. 워든 소령을 지휘관으로 한 특수 부대가 편성되었고, 그 곳을 탈출해 나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쉬어즈 소령이 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그 사이 다리는 무사히 완공되었으며, 영국군 포로들이 축하의 밤을 보내는 가운데 사이토 대좌는 명예를 위해 자결을 결심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영국군 특수부대는 다리에 도착, 밤중에 폭약을 설치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다리 개통식을 마치고 다리를 건너는 첫 기차를 기다리던 니콜슨 대령에게 이 사실을 들키게 된다. 니콜슨 대령은 다리에 무언가 수상한 것이 있다며 사이토 대좌를 데리고 폭약이 설치된 도선을 따라가게 되고, 워든 소령 일행은 아군이 오히려 폭파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그 장면에 경악한다. 멀리서 일본군의 VIP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서로 죽고 죽이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니콜슨 소령은 다리를 폭파하러 온 일행 중에 이미 수용소에서 안면이 있던 쉬어즈가 다리 폭파를 멈추려는 자신을 저지하려다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마치 꿈을 깨듯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이미 그도 총에 맞은 상태였으나,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니콜슨 대령은 끝까지 자신의 몸으로 폭파 스위치를 누르며 숨을 거두게 된다. 결국 다리는 폭파되고, 일본군의 기차는 허망하게 강물 속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강 옆 언덕에서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던 영국군 의사가 "미쳤군, 미쳤어.." 라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 #1 영화 줄거리에 대한 글은 # by 티티 | 2007/06/24 19:22 에서 옮김.)
( #2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우선 차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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