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BC급 전범 (1)

2007. 10. 16. 14:35책 · 펌글 · 자료/역사

 

 

  

"Death by hanging!"

  

   

 멍해져 버린 나머지 머릿속에 구멍이 뚫린 듯한 기분이었다.

극도로 긴장했던 신경이  풀려서였을까? 뭐가 뭐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나도 정리할 수 없었다.

멀리서 "Death by hanging!" 소리가 귀에 울리듯이 들려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이씨는 차가운 수갑의 감촉에 마침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학래 씨가 수감되었던 곳은  P홀이라 불리던 사형수 방이었다.

P홀은 다른 방과 떨어져서 콘크리트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P홀의 바로 북측 4, 5m도 되지 않는 곳에 교수대가 있었다.

교수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교수대에 올라가 외치는 "천왕 폐하 만세" 소리.

"반자이萬歲! 반자이!"라고 절규하는 소리는 손에 잡힐 듯이 들려왔다.

만세 소리에 이어 덜컹하는 무시무시한 소리, 그 후에 감도는 정적…….

방 안에서 같이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합창한 뒤 나무아미타불을 되뇌면서 사형의 순간을 같이했던 것이다.

 

'순서는 이 다음일까?'

'나는 저렇게 망가지지 않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가?'

'저 순간에는 어떤 기분일까'  '많이 고통스럽겠지?'  '많이 괴롭겠지?'

'저세상은 어떤 곳일까?' ……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같은 사형수로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면

조금 전에 들은 친구의 절규와 덜컹하는 소리가 되살아났다.

  

 

  

 때 모집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소용없지만,

일본이 전쟁에서 졌는데 왜 우리들이 전쟁범죄인으로 죽어야 하는가?

이 의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았다.

일본인 사형수처럼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며 죽을 수는 없다.

조선인 사형수의 마음을 괴롭힌 것은 "왜 조선인인 우리가……"라는 의문이엇다.

자신의 죽음에 무슨 의미도 위안도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특히 조국이 독립한 지금, 일제 협력자로서 사형을 기다리는 처지에

무슨 위안이 있을 수 있는가? 

 

 임씨는 "천황 폐하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저세상으로 갔다.

 '황국신민'이 되도록 교육을 받은 임씨에게 조국의 독립과 천황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으로 섞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임영준씨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인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황국주의자'였다며 일본 군인이 칭찬해 마지않는

어느 조선인 군속은 옥중에서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한다.

 

 

 

 

   피눈물의 시

 

 

1. 감옥 가득한 적막 속에서

   조용히 피눈물으 흘린다

   천지신명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복수의 귀신이 되련다

 

 2. 아, 장렬한 친구들이여

   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도

   정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혼은 영원히 의義에 살리라

  

3. 잔혹 무모한 영미의 개들이

   물자의 힘을 빌려

   지금은 이겼다고 하지만

   반드시 멸하리라 이 악마들

  

4. 아, 나는 지금 가네

   충신들이 사는 곳으로.

   사쿠라여! 후지 산이여!

   영원히 해 뜨는 나라에 영광 있으라 

 

 -『오호! 전범 타이 포로수용소』

 

  

 

사람은 사형 전날 밤에도 자기가 직접 쓴 시를 읊었다고 한다.

조선인 4명이 한꺼번에 사형 집행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 어느 사형 전야 송별회에서, 어떤 사람은 <아리랑>을 부르고,

어떤 사람은 <도라지>를 부르고, 4명이 다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그 뒤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합창한 것이 <기미가요>와 <바다로 가면>

(제2의 일본 국가)이었다.

이 비극스런 장면을 연출할 수밖에 없는 건 이 노래들을 빼고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이 순간에 함꼐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1947년 11월 7저녁을 먹은뒤 형무소의 감시병이 호출했다.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내 인생도 오늘이 마지막 밤인가?'

 분명히 얼굴이 새파래졌을 것이다.

동요를 숨기면서 감시병에게 쫓기듯이 걸어서 삼소에 도착했다.

사무소에 오스트레일리아인 장교가 있었다.

어눌한 일본어로 장교가 말을 꺼냈다. 

  

"20년으로 감형합니다!"

 

 

 

 -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중에서 발췌하여 옮겨적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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