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라면 죽으리라

2007. 9. 7. 22:05책 · 펌글 · 자료/역사

 

 

 

 

 

  


대에 들어가는 순간, 학도병들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갓 입대한 학도병이 가장 먼저 훈련이랍시고 배우는 것이 자결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총신을 돌려 턱 밑에 총구를 겨누고 발끝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훈련인데,

만약 동굴이나 참호에서 적들에게 포위당하면 훈련한 대로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치우라 해군항공대 문을 들어선 이래로 얼굴 모양이 뒤틀릴 정도로 두들겨 맞는 '맹훈련'의 나날이 이어졌다.

1945년 1월 2일  아침에는 카네코라는 소위에게 얼굴을 스무 대나 얻어맞고 입안이 너덜너덜 찢어져,

고대하던 새해의 떡국 대신 피를 마시며 지냈다.

2월 14일은 부대원 거의 전원이 외출했을 때,

농가에 가서, 주린 배를 채웠다는 이유로 추운 겨울밤에 7시간동안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개돼지처럼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일도 있었다.

나도 사관실로 불러 들어가서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얼굴을 때리다가, 쓰러지면 엎어 메치고 일어서면 곤봉을 내리치며 '자백'을 강요했다.

한 친구는 나가떨어지면서 머리가 그대로 마루바닥을 뚫고 박혀버려, 중태에 빠져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그 뒤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야만스러운 짓을 한 사람은 본부장 츠츠이라는 중위인데, 우리는 지금도 이 남자를 찾고 있다.


 
공작전은 특공대의 죽음을 전제하고 수행된다.

그런 이유로 군 상층부에서는 특공작전을 일본제국 해·육군의 정식임무와는 별도로 취급했다.

천황의 칙령을 통해서 지령이 내려진 게 아니라 특공대가 명목상의 지원병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원할 때에는 전 대원이 한 곳에 집합해서 선 상태로 상관의 일장연설을 듣는다.

천황과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희생하는 것이 곧 미덕이라는 연설이 끝이 나면, 곧 '지원'을 시작한다.

이때 특공대에 지원할 뜻이 있는 병사는 한발 짝 앞으로 나오라고 명령한다.

이와 반대로 그럴 뜻이 전혀 없는 병사를 앞으로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공개적으로 자기 혼자만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해도,

매우 곤란한 일임이 분명하다.

동료 대부분이 '지원'을 하는 상황이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때로, 동료들의 압력을 없애려는 시도도 종종 있었다.

누가 지원을 거부했는지 알 수 없게 두 눈을 가리고, 손을 들어 지원의사를 나타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문제가 있었다.

거수할 때 나는 군복소리를 듣고 많은 동료들이 지원하는 사실을 뻔히 알게 되므로 병사들에게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도병이 일기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들은 놀라울 정도의 권수에 달한다.

독서와 독서일기를 쓰는 습관은 고등학교 시절에 철저히 주입되어 대학에서도 계속되었다.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에서 다룬 4명의 학도병의 일기에서 언급하는 책만 해도 1,400권 정도가 된다.

더구나 이는 그들이 실제 읽은 전체독서량의 일부일 뿐이며, 당시 누구나 읽고 있던 종류의 책들은 아예 제외한 것이다.

사사키의 일기를 편집한 후지시로 하지메에 의하면,

사사키의 일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458권의 책은 사사키가 실제로 읽은 책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서적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한 부분은 편집하면서 대폭 삭제했다고 한다.

 학도병이 읽은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스토아학파와 같은 고전부터

19·20세기 일본과 서양문학과 철하가지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특히, 학도병이 애독하고 논한 저자로는 독일의 칸트, 헤겔, 니체, 괴테, 실러, 마르크스, 토마스 만과 프랑스의 루소,

마르탱 뒤 가르, 로맹롤랑,

그리고 러시아의 레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베르자에프등이 있다.

이들의 작품을 원서로 읽는 이도 많았다.

일본인의 저작 다음으로 프랑스와 독일 저자의 책이 가장 빈번히 언급된다.



사키는 다른 학도병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시기에 성년이 되었다.

 "국가와 천황을 위해 죽어라"라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 인간으로서 '삶'의 최고 정점에 있는 시기,

그리고 눈부신 장래가 기다리고 있는 시기에 '국가를 위해 죽는'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일은 현재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갈등의 나날을 의미했을 것이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죽어야만 하는 '의미'를 찾는 행위는 실은 자신에 대한 '설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 여기에 사사키의 이론적인 비약이 보인다.
왜냐하면 특공대를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는 하나

그럼으로써 그때까지 그토록 비판해온 일본군국정부의 전쟁을 긍정하고 군사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상하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모순에 직접 부딪치기를 회피했다.

아니 회피했다기보다는 그것을 사고에서 아예 배제하고 괴로운 나머지 자신이 기대하는 이상,

새로운 일본에 대한 이상, 인류에 대한 이상을 위해서 죽는것이라는 '이상'으로 자기를 설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와서 보면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까지 내몰려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새벽이다. 밤 3시다. 오전 3시다. 

아! 죽고 싶지 않다. 

외롭다. …… 왜 이리 외로운 걸까. 

고독일까? 

자기의 빈한 때문일까? 

향수 때문일까?

 

(히야시 타다오, 1940년 11월 26일)

 

 

  

 

 

밤의 적막 속 시계 소리의 쓸쓸함이여 

외로움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숱한 상념이 스치고 비까지 내리는구나

 

(나카오 타케노리, 토오쿄오제국대학 시절, 1942년 9월 20일)

 

 

 

 

 

 

아름다운 허구

  

 

전우들의 편지 속에는 허구가 있다 

많은 아름다운 허구가 있다 

모든 것은 허구 안에서 태어나 

그렇게 허구 안에서 죽어갔다 

...... 

나는 호박색 미주에 취해 잠이 든다 

허구의 평화여- 아아, 웃지 말지어다

 

(마츠나카 시게오, 1938년 12월 13일)

 

 

 

  

 

 

일본제국의 종말

 

  

몰락과 붕괴 데카당스 

망하고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의 종말 

…… 

남은 것은 모두 사라지리라 

...... 

모든 것이 붕괴한다 

일본에 종말이 온다. 

저. 금기 

카타스토로프여

 

(히야시 타다오, 1945년)

 

 

 

 

 

이 싸움에서 제가 이기는 것이 좋은지. 산까마귀가 이기는 것이 좋은지, 그건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부디 미워할 수 없는 적을 죽이지 않아도 좋은 세계가 한시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네 몸뚱이 따위는 몇 번이고 찢어져도 상관없습니다.

 

( 사사키 하치로오의 일기에 인용된 미야자와 켄지의 「까마귀의 북두칠성」)

 

 

   

 

 

일단 새로운 시대의 에토스(사회적 관습)에 가까운 것이 보이고 물적 토대도 갖추어지고 있는 오늘날 

에도, 여전히 구 자본주의체제의 유물이 곳곳에 잔존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빠른 시일에 불식시킬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은 그 힘을 패전을 통해 완전히 파괴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 

도 모른다. 불사조처럼 잿더미 속에서 솟아오르느 새로운 것, 우리들은 지금 그것을 바라고 있다. 

한두 번 패배한다고 해도 일본인이 살아남는 한, 일본은 망하지 않는다. 

(사사키 하치로오, 1943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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