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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에서는 울보 혜인이가 스타다.
올해 일곱살된 이 꼬맹이가 울지않는 날은 사람들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한다.
워낙 많이 울어서인지 꼬맹이 목소리가 탁트이고
득음한 소리꾼의 신명처럼 이젠 제법 우는소리에 가락이 묻어나기도 하는데
판소리 완창까진 못되더라도
아이의 울음은 꽤나 긴호흡으로 처연하게 이어진다.
어쩌다 우는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에는
일과를 마치지 못한 것처럼 허전한지 마주치면,
- 혜인이네가 어디 갔나요? 오늘은 우는소리가 안 들리네?
이웃끼리 궁금해 할 정도다.
첨에는 함께 놀던 아이들에게 왜 아이를 울리냐고,
잘좀 데리고 놀지않고 울리냐고,
달래주지 않고 왜 모른척하냐,고 나무랐는데
아이들의 곤혹스런 표정들에서 혜인이가 우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할 뿐더러
어느땐 그냥 울고싶어 우는 것이란 걸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 달래면 더 울어요오~
며칠전엔 와앙!! 하는 소리가 나더니,
- 우리아빠한테 일를거야~~~~~~~~
놀래서, 왜 그러니? 누가 때렸니? 했더니,
- 지 혼자 넘어져 놓고선 지네 아빠한테 일른다면서 저렇게 울어요~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이없다는듯, 심한 낭패를 느낀듯
눈동자들이 커져 있었다.
그후부터 우리집에선 어이없는 적반하장이나 어거지 부릴땐
혜인스럽다, 혜인스럽게 스리, 이렇게 통하곤 하는데,
이꼬맹이는 아침잠이 없는지
날마다 문앞에 와서 우리애를 부른다,
- 언니, 나와아~
- 시러, 아직 밥안먹었어, 좀이따 나가께...
- 지금 나와, 지금 안나오면 치사빵꾸다아~
난 속으로 옴마 뜨거라, 저러다 언니한테 또 한대 맞을라, 싶어
얼른, 혜인아, 잠시만 혼자 놀고 있거라.. 개입한다.
어디서 배웠는지 요새 욕을 곧잘한다.
그것도 아주 강도 높은 욕설을 한다.
한번은 우리애 한테 심한 욕을 했다가 꽤나 세개 맞았나 보다.
예의 그우렁찬 울음 터뜨리는 소리 뒤에
우리애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다.
- ㅆ발, 니는 ㅈ같은 언니야아~~
그래도 어린걸 왜 손을 대냐고 나무라는 내게 씩씩거리며
항변한다.
- 저런 욕을 하는데 어떻게 참어!
그날 저녁에 혜인이 엄마가 찾아왔다.
- 빈터가 있길래 호박을 심었더니
아주 잘 자랐어요, 약도 안 치고 해서 좋을거예요..
애호박, 풋고추, 고구마순, 강냉이, 상추.... 한참을 먹을만치
한아름 퍼내놓고선,
- 혜인이를 잘데리고 놀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낮엔 집을 비우거던요, 그래선지
아이가 종일을 밖에서 헤매요...
식당에 취직해서 실직한 남편 대신 생계를 꾸리고있는
혜인이 엄마의 씩씩한 젊음이 싱그럽다.
춘추 구십세 더 되보이는 외증조모님, 칠십세 외조부모님,
그리고 부모와 함께 사는 혜인이는
남달리 유별난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 환경이지, 싶은데도
애미 떨어져 종일 견뎌야 하는 허기가 아이를 울리나 보다.
작은 동네라 이웃들의 사정에 서로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다.
매일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어느집 아이인지,
그애 부모는 무얼하며 형편은 어떠한지를.
이웃했던 여러집이 경매에 넘어가 이삿짐을 꾸렸다.
옆집 살던, 마당 가장자리서 넘어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할머니네도 지난달에 집을 넘기고 이사를 했다.
그래서인지
어울려 노는 아이들 면면을 가끔 지나다 살핀다.
어려움이 아이들의 표정을 어둡게할까바,
혼자 외톨이로 고개를 숙인 아이가 보이면
손을 잡아 끌어 아이들의 낭자한 웃음소리 속에 집어넣고 나서야
돌아설 수 있게 된 요즘이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에 피부도 양놈모냥 희어서 움직이는 인형같은
혜인이 곁에
아직은 엄마가 종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날이,
그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언제 올런지....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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