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24. 07:51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신접살림을 서툴게 서툴게 시작했을때,
어느날 옆집 아줌마가 인터폰을 했다.
- 자기 모해...?
잠깐 우리집 좀 와바바...
항상 자기,라 부르는 그이는 나보다 너댓쯤 위로 보이는
양순한 사람이었는데,
바람만 불면 나를 불러내 난감하게 만들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물오른 식물처럼 싱싱해져
밖으로 끌어내니
전선을 타고 지나는 바람소리가 귀신울음 같아 소름돋는
내 공포를 설명해도 아랑곳 없어
바람부는 날이면 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 바람을 마주하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지도 않은채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나는 마른웅덩이 같은델 찾아 몸을 작게 감추고 바람을 피해
옹송거려 자라목을 하고 있었으니
머리에 꽃이 없었길 망정이지
그 모양새가 어땟을까.
- 혼자서 이러고 있다 누군가 신고해 하얀차 달려오면
어떡하니...
그나저나 이렇게 나오니 가슴이 트이지 않니? 좋지?
나 어때, 캐스린이나 스칼렛 비슷하니?
바람난 여자 같니?
어지러이 날리는 머리털외엔 닮은 구석이라곤 없으나
염치좋은 솔직함에 그냥 웃고말지 어쩌겠는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마치고 입사한 멀쩡한 직장을
하루아침에 걷어차고 목회를 선언한
동네교회의 전도사였던 그니의 남편덕에
그 집은 늘 손님으로 북적였고
주방은 쉴새없이 끓이고 지지고 볶아댓는데
그때마다 비빔밥에 떡국에 만두에 김밥에...
내게도 부지런히 챙겨다 주곤했다.
그날은 다행?히 바람이 불지않아
안심하고 건너갔는데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펼치더니 묻는다.
- 자기, 이거 어때...?
한눈에 혹할만큼, 작은 들꽃이 그려진 예쁜 코렐세트였다.
나는 탄성이 절로 터졌는데,
한창 살림에 재미가 붙을때니 욕심이 날밖에.
이건 어때..? 해서 돌아보니
세상에...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했던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필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 LP원판이 아닌가.
- 선물로 받은건데... 자기가 살래..?
난 바싹 다가앉아 누군가에 뺏길까 조바심치며
건성으로, 얼마드리면 되겠어요..? 물으며 챙기는데
생글거리는 그니는 좀체로 입을 떼지 않고 딴짓이다.
커피나 한잔 하자더니
베를린필이 어떻고 빈필이 어떻고
지난번 연주는 어떻고..
플룻을 전공한 그니에 이끌려
독주회를 몇번 따라다니다 질려버린 내게 설명이 한창이다.
대금과는 달리 금속성 차가운소리와
음절사이에 급히 들이키는 숨소리 때문에
수면 아래 사력을 다해 움직이는 백조의 발이 연상되어
작위적인 아름다움이 딱하고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해 내 욕구를 채우는 듯해서 질린건데,
그 사실을 알리없는 그니는
언어습관과 플룻소리와의 관계를,
동서양인의 혀모양이 미치는 소리의 차이를,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참다못해 얼마 드리면 되냐, 물으니
아, 내가 좀만 더 생각해 볼께... 또 생글거린다.
가장자리 연두색 가는 줄과 앙증맞은 들꽃 장식된 코렐과
배턴을 쥔 카라얀의 고개숙인 그림이 눈 앞에 어른거려
밤을 설친 나는
결례를 무릅쓰고 일찌감치 찾아갔다.
- 얼마나 아깝겠어요.. 내주기 아깝고 말고겠지요..
팔아 버린다 생각지 말고
꼭 갖고 싶어하는 제게 선물로 주세요..
저도 님이 꼭 필요한 걸 선물로 드리께요..
그니가 주저주저 어물거려 제시한 가격의 두배를 선물?하고
밤을 설치게한 그것들을 난 가지게 되었다.
난 그것을 간절히 원했고
그니는 차마 내놓을 수 없는걸 다른 이유로 내어야 했으니
두배 아니라 두배의 두배였다 해도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는데
두세장 깨먹긴 했으나 지금까지 잘 쓰고,
쓰고 듣고 할때마다 그때가 생각나 그리우니
내가 셈한건 추억이 아닌가 해서이다.
받은 봉투를 옆으로 밀어놓던 그니가
잠시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아오고.. 가벼운 실랑이 후에
자기.. 참.. 귀여운 사람이다... 했던 그니에게서
그 몇년후 전화가 왔다.
- 몇년이 될지 몰라... 선교사라는 걸 들키면 아주 위험해질 수도 있대..
다녀와서 보자..
기도할께,그동안 잘지내야 해, 자기...
선교사로 중국 가기 며칠 전이었는데
그후 내 불찰로 연락이 끊어지고 소식을 모른채 세월이 흘렀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코트깃을 올리고 바람을 향해 환하게 웃던 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데
오늘도 문득 설겆이 하다 그때 그접시가 나온 것을 보고
연락할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한다.
Max Bruch / Kol Nidrei Op. 47
< 松 >
.
저는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님의 플룻에 대한 평에 깊이 공감합니다.
"대금과는 달리 금속성 차가운소리와
음절사이에 급히 들이키는 숨소리 때문에
수면아래 사력을 다해 움직이는 백조의 발이 연상되어
작위적인 아름다움이 딱하고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해 내 욕구를 채우는듯해서 질린건데.."
햐~ 정말 명문입니다.
이제는 LP판이 님 말씀대로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람부는날이면 떠오를 그 분과도 다시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명절 잘쇠셨어여?
플룻이란 악기에 아주 질렸당께요.
헉헉~ 급한 숨소리땜에
부담되서 잘 안들어여...
잘 닦으면 소리 좋아여..
월래 엘피란게 스크라치적당한게 매력이잔아여..
이곳으로 오기 전 집을 확 줄여야했을 때 친구에게 사정하며 주었어요.
요즘 누가 그런거 듣냐며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을
지금 그 판 잘 간직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연락은 끊어졌어도 추억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연락이 되는 방도를 찾으신다면 더욱 다행이겠지만..
안녕하시죠?
☞
난중에 도로 찾게되면 저 주세여..
부군께서 들으시던거면
제가 아주좋아할 곡들인건 틀림없어여..
어째 취향이 비슷하더만여...
몇다리 건너면 연락이 가능하겠어여.
기질이 참 고운 사람이었어여..
바닷가 출신인 제가 그이 덕에 순화가 많이 됫어여..
더 좋은 차를 갖고 싶다거나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어서 안달을 해 본 적도 없고
미치도록 가 보고 싶어 하는 여행지가 달리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연주나 공연을 그렇게 보고 싶어한 적도 없고
또 환장할 정도로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예.
진짜루 없어예.
심지어 돈이나 자식에 대한 기대 까지도 솔직히 큰 욕심이 없어예.
해서 곰곰히 어릴적 까지 �어 봤는데 역시 그렇게 간절히 갖고 싶어했던 것이 없는 것 같아예.
그건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열정이 없어서겠지예.
아니면 애초 부터 두메산골에서 무지랭이로 없이 살다보니
적당히 포기하며 사는 게 익숙해져선지도 모르겠고 예.
참으로 희망 없고 별 볼일 없는 사내지예?
그런 면에서 옹골찬 님이 부러워예.
가끔, 님의 글에서 그런 독기가 느껴질 때가 있어예.
저 나이에도 저런데 젊을땐 한 승질 다부지게 했겠다 그런 생각을 더러 했어예.
어쨌거나 기어코 제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야 뭘 해도 성공하겠지예?
헌데 지금은 뭘 갖고 싶어예?
참, 나는 成佛했어예.
목표를 정해 매진 해보까예...?
어떤 사람이 전에 그랬어요.
- 글이 섬득하다, 현실이라면 결코 가까이
하고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때 제가 느낀게
아.. 아직 멀었구나..
이정도 살았으면 글에서 절로 따사론 기운이
배어나와야 하는데
조망,응시,관조.. 하질 못하고
분노속에서 허우적이니..
근데 매정헌냥반이 왠 인심이 이리 후해졌데???
신사님이 고만 감격해서
두손잡고 눈물흘리듯 반기던데
좀 자주 뵙시다..
사람이 각기 어울리는 장소가 있지요
너무 사람을 그리워하게 맹그는것도 한을 남긴다는걸
成佛한 사램이 왜 모르실까 몰러.
글고 배뱅이 어쩌구 하는건 잘 간직했다가
만날때 주시우.. 꼭..
.
LP판... 모두 달라는 댓글을 보며 혼자 막 웃습니다.
음악을 종종 이 곳에 걸어 놓으시든데, 이제사 그 욕심에 눈치를 딱-챘습니다. 하하-
정말 멋지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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