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3일
전화하고 싶었어요. 낮부터요.
정오에는 우리 미술관에서 일하게될 큐레이터랑 면담 좀하느라 바빳고,
참 제가 얘기했던가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복원미술을 전공한 젊은 친군데 실력이 만만찮아요.
전공이 아니라 이 쪽에서 일하는게 글쎄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험삼아 큐레이터 일을 좀 해보겠다고 해서 임시로 채용하게 되었거든요.
아무래도 곧 성곡을 떠날 것같기도 해서 제 뒤를 맡아줄 사람도 필요한 시점이구요.
우리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조선 중기 작품 몇점이 상태가 시원찮아 보관중인게 있는데
그 친구에게 한번 맡겨 봐야 겠어요.
미술품 복원 작업은 한두사람 손을 거치는게 아니라
그 친구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지만 장비로 숨어있는 손상 부위도 찾아내야 하고
복원 부위를 정해 아주 디테일한 작업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작업이 끝나면 대중 앞에 선보이기 전에 당신께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어요.
당시의 풍속도이긴 한데 선비차림의 양반 신분으로 보기 드물게
젖가슴을 풀어 헤치고 있는 아낙의 젖가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그림이예요.
자세히 보면 선비도 바지를 허리 춤까지 내려있는 걸 볼 수 있어요.
풍속화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춘화는 절대 아니죠.
예나 지금이나 다들 체면 차리고 살지만 가능하다면 아낙의 젖무덤 아니라 어디라도 여자라면 - - -
그 여자가 그 사람의 연인이라면 더 깊은 곳에 얼굴을 파묻고 하루를 떠나고 싶지 않을까요.
당신은 전설 속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손에 죽은 홀로페르네스 처럼
나에게 성적으로 유혹 당해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한번 했으면 하셨지만
저는 오스트리아 빈 시내 남쪽에 있는 바로크 궁전 벨레데레에 소장된 클림트 그림 키스처럼
두 남녀가 꼭 껴안고 성적 교감의 여명을 틀며 시작하는 정사를 당신과 꿈꾸고 있어요.
에로티시즘이 순간적인 육체의 환락이 아니라 영원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관문처럼
순간적인 정사의 덧없음을 초월해 욕망의 숭고한 충족에 이르도록 노력한
클림트처럼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곱슬머리의 남자가 꼭 껴안은 여자의 더 없이 행복한 표정,
오르가즘 직전의 환희가 표현될 얼굴의 그 그림을 보면 저도 언젠가 그런 정사를 하리라 했죠.
그 남자가 내게 당신으로 다가왔다는 걸 저는 본능적으로 느낄수있었죠.
지난 가을 저희 미술관에 들렀던 당신을 본 순간 전 부끄럽지만 클림트 그림을 떠올렸?c.
그림 속의 곱슬머리는 부드럽게 컬이 져서 넘어간 당신의 희끗한 머리로 대체되었고
나는 속옷을 입지않고 화려한 노란 무늬의 긴 원피스만 겉옷으로 걸치고 있었죠.
당신은 당시 중국 현대작가 초대전을 관심있게 둘러 보셨죠.
내게 다가와 왕청의 작품에 대해 물어 왔을때
저는 알몸을 내보인듯 얼굴을 붉힐수 밖에 없었어요.
이런 상상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충분한 성적 매력을 지닌 남성이었죠.
두번째 만남에서 당신이 남한강을 따라 드라이브만 하고 저를 저의 집 앞에 내려 주셨을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셨을 거예요.
키스라도 없었더라면 저는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당신을 나의 아파트로 유인하여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펼쳤을지도 몰라요.
저는 너무 뜨거워져 있었거든요.
키스?
뭐랄까? 당신의 키스에서 저는 오월에 청보리가 익어가는 맛을 느꼈어요.
청보리 말이죠.
풋풋한 풀내음과 알곡이 영글때 풋알들이 껍질에 밀착되어 밀도가 촘촘해지는 질감
그 모든 것이 당신의 키스 속에 있었죠.
고백하지만 제가 예일에 다닐때 조금 사귀었던
의대생인 스티븐과도 나누지 못한 영적인 키스였어요.
당신도 그러셨잖아요.
정아는 자그마한 체구로 그곳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이었을 거라구요.
스티븐은 아버지가 상원이었는데 저를 무척 좋아했죠.
결혼도 생각했었지만 - - -, 후 후.
그랬더라면 당신과 나누고 싶은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이룰 수 없었겠죠.
당신과 나는 앞으로 긴 길을 걸어 갈거예요.
당신이 그 옷을 입으려 하실지 모르지만
첫 정사를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어요.
클림트에 나오는 남자가 입었던 황금색 가운
그리고 저는 비슷한 패턴의 쉬폰 실크 원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키스 씬으로 시작해서 클림트의 유디트 1 으로 끝나는 sex말이죠.
Have nice day ! !
2005년 12월 13일
당신의 신 다르크로부터.
저를 신데렐라 라고 부르지 마세요. 꼭요!
[유디트Ⅰ](1901) # 캔버스에 유채, 42x84cm # 오스트리아 미술관
역사속의 유디트
구약시대 앗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한 도시를 에워 쌌는데
당시 앗시리아군의 장군은 명장 홀로페르네느스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시리아군에 대한 저항을 하였으나
마침내 항복 할 만한 처지에 놓였다.
이때! 이스라엘을 구할 여장이 나타났으니
이가 바로 "유디트"였다.
매우 부유하고 아름다운 미망인이였던 "유디트"는
하녀 한 사람과 함께 홀로페르네스에게 찾아가
이스라엘인을 굴복시킬수 있는 계책을 알려주겠다며
적진으로 위장 투항한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기분이 좋은 홀로페르네스는
여흥을 베풀기위해 술을 마시고 거하게 취해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게 한다.
어떤 남자라도 그녀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을 만치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치장한 유디트를 품고자 하는 욕망은
홀로페르네스에게도 어김없이 발동하였던 것이다.
이때를 놓칠새라 유디트는 술취한 홀로페르네스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 도망간다.
다음날 아침 목이 잘린 홀로페르네스를 보고
앗시리아는 혼비백산하여 퇴각한다.
유디트는 서양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비중있는 소재로
무수히 다뤄졌다.
그러나 이 애국 여걸이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마치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의 요부로 돌변했다.
현양해야 할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않은,
그저 남자에 굶주린 악녀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특히 유디트(1)은
액자에 유디트란 글자가 박혀 있음에도
대중들 사이에서 살로메를 그린 그림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세례 요한의 목을 벤 고대 요부의 인상이
더 강렬히 풍겨나왔던 까닭이다.
유디트 연작을 보면 모두 주인공의 눈동자가 풀려 있다.
그리고 앞가슴도 공통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
옷은 속이 들여다 보이는 '시스루'이거나
하늘하늘 나부끼는 관능적인 것이다.
온몸으로 자신의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는 여인.
게다가 그녀의 손에 들린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적의 것이라기보다는 연인의 머리 같다.
그 머리를 잡고 있는 손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손으로부터 일종의 끈끈한 애정마저 흘러나와
화면 전반에 기괴한 분위기를 더한다.
그러니까 마치 사체애 환자처럼
유디트는 죽은 적장의 머리를 애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유디트1]
1905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예술가동맹 2차 전시회에서
이 그림은 "살로메"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었다.
1909년작인 "유디트 2" 역시 '살로메'로 불리곤 했다.
이런 오해가 빈번하다보니
도리어 클림트가 제목을 잘못 붙였다는 비난까지나왔다고한다.
그러나 클림트는 그림의 제목을 유디트 1, 2 라고 했을뿐
다른 해설이나 대답을 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살로메는 패배자다.
세례 요한에게 매혹되어 그를 소유하고자 했지만
그는 그녀가 가질수 없는 남자였다.
최후 수단으로 남자를 죽여 그 목을 끌어안고 춤을 추었지만,
이 엽기적인 춤은 사랑의 춤도 승리의 춤도 아니다.
처절한 패배의 춤이다.
하지만 유디트는 승리자다.
그녀는 증오하는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해치웠고,
그녀의 행위는 신과 민족의 이름으로
숭고하고 애국적인 행위로 칭송되었다.
살로메는 남자들에게 살해되었지만,
유디트는 남자들의 숭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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