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취미

2007. 9. 23. 13:06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내겐 유별난 취미(?)가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이가
돌 지나 한참 되어도 걷지 못 해,
아장거리는 아이를 앞세운 산책에 한恨이 된 나는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신발부터 사 모으는데 열중했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우유빛 살갗이 향기롭고
계란껍질 벗겨놓은 듯 뽀얗게 피어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이웃에게 자랑스레 보이고도 싶고
가까이 살던 외가에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속상하게도 걷질 않으니
사 모으는 신발수 만큼이나 초조도 함께 늘어갔고
몰두가 급기야 집착이 되버려 지금까지도 신발의 의미는
내게 참으로 각별하다.

백일 때 부터의 신발을 모두 모아 두었으니
창고 안에는 아이의 신발 박스만 여남은개는 됨 직하다.
가끔씩 잠 안오는 밤이면 꺼내 보기도 하는데
앙증맞고 오밀조밀 여러 모양한 신발들 하나 하나마다
얽힌 추억이있다.
내 집착은 유별나서 동네에서 아무거나 사 입히는 옷에 비해
신발 만큼은 유명백화점을 샅샅이 뒤져 마음에 드는 걸 사는 바람에
시내 백화점의 신발코너 아가씨들이
또 오셨냐고 인사할 정도였다.
유일하게 내가 허영를 감추지 않고 맘껏 드러내어
사치를 즐긴다 해도
죄의식 없는 것이 바로 내 아이 신발을 사는 일이다.

심해지는 건망증이 민망타 할 정도로,
신발 하나하나에 담긴 기억은 또렷하다.
어디에서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 그때 나눈 대화가 무엇이었는지,
그날 점심은 무얼 먹었는지, 그때 우리 기분은 어땠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떠했는지도 기억나니
도데체 무슨 조화속인지 모를 일이다.

이사할때면 한 번씩 꺼내 새로 빨아 빠짝 말려두곤 하는데
보는 사람마다 신기하고 기이 하다는듯

- 누굴 주던가 버리던가 하지, 왜 이렇게 모아놔요?
아이쿠 많기도 하네, 한 짐이네, 한 짐...

핀잔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들을 하면
난 괜스레 불안해져 박스에다 큰 글씨로 '아무게 신발 1'
'아무게 신발 2' 하고 번호까지 붙이며
아주 소중한 물건이란 걸 알아달라는 과장된 몸짓과
심각한 표정 한번 짓고서야 딴 데로 눈을 돌리니
과연 집착이긴 집착인가 보다.

태어나 처음 두 다리로 대지 위에 버티고 서서
장난감 같은 신발을 신고 두 발로 나를 향해 뒤뚱뒤뚱 다가올 때
한두 걸음 앞으로가 힘겨움을 들어주며,
이제부터 아이가 감당해야 할 인생이란 파고에
우리의 방풍림 역할은 언제까지 가능 할런지...
스치는 생각들에 눈물이 솟구쳐
감싸안고 등을 토닥거려 격려해주던 기억 또한 새롭다.

그 후에도 여러차례 걷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고
다시 버티어서고 뒤뚱이며 걷기 시작하고
지금도 서툴게 걷고는 있지만
매번 일어나 다시 걸을때마다 태어나 첫걸음 할때와 같은
경탄으로 다가오며 그때마다 내 취미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아이의 신발장에는 발에 맞는 새로운 신발들로
항상 가득하다.

만삭이 되었을때 갑작스레 찾아온 류마치스로
손목 발목을 제대로 못 써 고생이 자심한데
그 중에서 제일 속상한 건 뾰죽한 굽이 달린 높은 구두를 전혀
신을 수 없다는 거다.

신발장을 정리하다 말고
날렵하고 우아하게 생긴 여러 모양의 구두를 꺼내놓고
이것저것 신어보고 역시 안되겠구나..... 확인하고는
그래도 체념은 안되어 그 자리에 다시 정리하며
내 언젠가는 신어야지 .... 다짐하는 나를 발견하니
이래저래 신발의 의미는 내겐 참으로 각별하다.

꼬마 이멜다인 내 아이의 즐비하게 늘어선 신발과
그림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내 신발들을 보고 설레어 외출을 꿈꾸는 나는
이 집착이,
이 기이한 수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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