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9. 13:22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
기차가 잠시 선 틈을 타 몇 자 적습니다.
다시 델리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 기차 안에서 체 게바라 평전의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가혹할 정도로 치열했던 그의 삶을 돌아보다가 문득 당신과 나의 이십대가 떠올랐습니다.
젊음이 무기이자 상처였던 그 시절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었지요.
그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버린 걸까요?
그때 우리가 꾸었던 꿈들.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꿈들.
그때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갑자기 그 간극이, 지나가 버린 것들과 지금 내게 남겨진 것들 사이의 그 아득한 간극이,
참을 수 없이 서글퍼졌습니다.
그리고 당신,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이십 대를 돌아볼 때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얼굴.
내 나이 스물에서 서른까지, 그 빛나고 어둡던 시절에 당신은 늘 나와 함께 있었지요.
당신은 가장 가까이서, 가장 참혹하게 나를 들여다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가혹하도록 나 자신만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던 그 십 년의 세월,
내가 참 많이도 당신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참 많이도 저질렀다는 것을 아직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 서울에 머물 때였습니다.
늦은 밤 동생이 제 방에 들어섰습니다.
그날 동생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그 애는 당신과 내가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살면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한 문제에 부딪힐 때면 당신을 찾아가곤 하더군요.
그 날, 당신은 그 애가 듣고 싶어 하던 답을 준 것 같았습니다.
“내 평생에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누나는... 내쳤지.”
맥주 몇 잔에 붉어진 얼굴로 동생은 그렇게 말하고 쓸쓸히 돌아나가더군요.
당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 그날따라 몹시 기쁘고,
꼭 그만큼 아프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당신에게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저 변명처럼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당신과 헤어지고 난 후 나도 많이 아팠다는 것,
그래서 당신이 혼자 감당했을 고통을 뒤늦게나마 나도 겪어내야 했다는 거지요.
아직도 아픈 일을 겪을 때마다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말하곤 합니다.
내가 당신을 아프게 했던 그 모든 죄를 고스란히 다 돌려받는 거라고.
당신과 헤어진 후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나도 당신에게 조금은 편한, 당신이 이미 깨끗이 용서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것마저도 제 욕심인 건가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
그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일까요?
혹은 머뭇거리며 헤집어보는 상처일 뿐일까요?
어느 쪽이든, 오늘은 흩어진 내 이십 대가 그립습니다.
그저, 오늘, 체 게바라, 한때 당신과 내가 깃발을 흔들며 달려가던 그 길에서 우리의 희망이었던,
그의 삶을 읽다가,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지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선 자리에서 한결 깊어지고 넉넉한 모습이리라 믿어봅니다.
서울의 거리에서 다시 만나 차 한 잔을 나누는 그 날까지 흔들림 없이 간결하기를 기원합니다.
2005년 2월 13일 델리행 기차에서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너의 안부를 묻는다.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나를 설득하고 싶었어.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음을 확인하곤 해. 그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언제나 내 발목을 잡고, 나를 머뭇거리게 하고, 뒤돌아보게 만들곤 하니까. 길을 가며 만나는 그 무수한 사람들 중에 가끔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 순간에 내 마음을 열어버리고, 무장 해제시켜 내는 힘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하고는 겨우 이삼일의 짧은 시간만을 공유할 뿐, 바람처럼 그들이 제 갈 길로 사라진 후엔 나 혼자 남아 오래 곱씹게 되곤 하지.
......
한 사람을 안다는 것, 소통의 가능성이라는 것, 그게 반드시 그를 만나온 세월의 길이와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너를 통해 새삼 느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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