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松 >
2007. 7. 30. 00:06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다시 꿈을 꾸다...
아이를 품에 안고 부터
아무도 하지 못할 위대한 일을 해낸듯
나는 남편 앞에 기세등등하다.
- 당신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내게 큰 절 한번 하고 다시 자라,
이렇게 이쁜 물건을 내가 아니면 어디서 구경이나 할 수 있었겠나,
생각할 수록 내게 감사한 맘이 안드냐...
내 착각을 두고,
회복불능의 말기증세라 한들 어쩌겠는가,
하늘이 감동하여 내게 준 귀하디 귀한 선물로 보이는 것을.
각설하고...
요즘 천하에 없는 이 이뿐 물건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종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지척인,
경기도에서 최고 좋다는 사립명문(?)에 넣어놓고
스쿨버스도 못 미더워하며 직접 등하교를 시켰었다.
겨울에는 미리 나가서 시동 걸어 차 안을 덥혀놓았고
여름에는 교문 앞에서 에어콘으로 차 안을 식히며
고작 오분 거리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유난스러운 맹모 였다.
색감이 좋기도 하거니와 흥미도 있어 하는 그리기는
따로 학원을 보내기도 하고
컴퓨터 선생님의 방문학습을 시키고
놀랄 정도로 좋은 발음이 아까워 영어학원에 등록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교재를 몇개씩 한꺼번에 사기도 했었다.
학습지로 예습을 철저히 시켰고
아이 방 삼면을 천장 높이까지 책장을 짜넣어
빈틈없이 각종 책으로 채우며 왜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틈틈히 주지시켰고
TV를 아예 거실에서 없앴다.
해질녘 사위의 모습과 아침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었고
비온 다음 식물이 머금어 싱싱해진 모습과 흙내음을 맡게했고
가까운 야산으로 데려가 책에서 본 식물과 곤충에
애정을 갖도록 직접 보고 그 냄새와 느낌을 알게 해주었다.
눈 밟는 소리와 우박의 모습과 책에서 본 별자리와
달의 기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풍부한 느낌을 가진 아이로 자라기를 기도했었다.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친구들과 스쿨버스를 타고 싶다고 고집하는 아이의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침은 온몸이 녹아내리는듯 했다.
허리까지 출렁이는 머리 향내를 킁킁 맡으며 곱게 빗질하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스타킹을 신겨주며
기분 상하지 않게 눈치보며 하는 여러 당부들과
반듯이 다림질한 교복을 입히며
괜히 슬쩍슬쩍 엉덩이를 만지며 엘리베이트 앞에서 하는 고백들...
"어떡하지...?"
"왜 엄마?"
"우리 딸 올때까지 보고싶어 어떻게 견디지...?"
"아 이 차~암,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올텐데 몰그래."
"알었어, 알었어, 참아보께..."
내가 부모님에게 이렇게 하면 아마 효부상은
따논 당상일 게다, 혼자 아니꼬와도 해보는 아침,
작은 소란을 뒤로하고 살랑살랑, 간들간들, 하늘하늘
한송이 꽃잎이고 한마리 나비 되어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솟구치는 감동을 주체 못해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내 기도가 얼마나 절절했었는지 모른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어린 생명들을 태워다니는
스쿨버스 기사아저씨 가족의 평안과
선생님들의 보람있는 하루를 위해서,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담을 충만한 사랑의 그릇을 위해서.
소풍이나 견학이라도 가는 날엔 버스 꽁무니에 붙어서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따라다니기도 하여
난생 처음 애버랜드니 민속촌이니 무슨 박물관이니
그림자 같이 따르며 힘겨운 기색 보이면 업어주고
다음 스케줄에 따라 선생님과 상의하여 미리 데려오고 하면서
이상한 사람에게 시집온 덕분에 못 누린 호강을
아이 덕에 누렸으니 더이상의 효도가 어디 있었으랴...
몇차례의 수술후 대사기능을 상실하여
머리에서 복부로 연결되는 <션트>라는 펌프장치를
오른쪽과 왼쪽에 두번을 하였고
여린 생명은 션트의 가녀린 두개의 줄에 의지하고 있다.
물이 급작스레 많이 빠지면
창백해지고 기운을 잃는다거나 하는 조짐을 보인다.
그럴때마다 긴급한 조치가 따르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그 징후를 일찍 발견하여 고통을 들어줄 수 있는 것 외엔
대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아이 뒤에 그림자 같이 따르는 이유이며
내 삶의 익숙한 동반자인 분노와 절망, 감사와 희망은
항상 가슴까지 차올라 젖어있는 울음을 다스리는 내 그림자이다.
병소가 소뇌인지라 미세운동에 한계가 있으며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어 잘 넘어지고
신체의 오른쪽은 거의 못 쓰는 탓에
후천적으로 왼손잡이가 되어 필기도 왼손으로 하는데
꼬물거리는 글씨가 그렇게 예쁠수가 없다.
피아노 선생님께 그냥 놀이삼아 배우게 하는 것이니
절대 스트레스 주지말고 이론만 습득케 해달라 당부했으나
욕심 많은 아이는 피아노 앞에서 여러차례 울며 좌절했다.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가운데
오년이 다 되어갈 무렵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이 정도에서 멈춰 주기만을 바라는 내 기도는 희망으로 그치고
열정으로 빛나던 아이는 삼학년 이학기에 접어들어
학업을 포기하게된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수업중에 업고 집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학교에서 구토를 했단다.
창백한 아이는 엄마...머리아파...
결국 잔인하게 현실로 닥치고야 만다.
스케줄을 잡자는 담당 박사님의 충고에 시간을 끌어오던 일이었다.
그러나 몇개월의 시간을 번 나는 다시 한번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이가 세살때,
병원과 의사를 선택, 결정해야 했을때
아이 아빠가 보여 주었던 우유부단으로 그결정은
내가 했어야 했던 일들이 생각났고
최선의 기회,
모든 가능성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던 나의 결정이
아이에게 과연 긍정적이었는지 아직도 확신이 없다.
만약에 그때 다른 선택이었더라면, 하는 회한이 저 밑바닥에서
가끔씩 피해의식 같이 고개를 쳐드니 말이다.
병세는 매순간 악화되어 박사님과 통화하는 몇분 동안
이미 앉지 못하고 누워서 구토만 계속하고 있었다.
육년전 세살이던 아이를 수술했던 그 박사님과
이틀후로 수술날짜를 잡게 된다.
그러나 그날밤 뇌압강하 주사가 듣지 않을 정도의
혹독한 고통과 예기치 않았던 쇼크가 있었고
날이 새자 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열세시간 동안 내가 할수 있었던 건 기도, 기도뿐이었다.
'제게 다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어린 생명을 제게 맡기신 뜻이 분명 있으리라 믿으니
그 프로그램대로 하시되
한번만 더 기회를 제게 주십시오......'
의식이 회복되어 중환자실을 벗어난 아이는
안면근육의 마비와 함께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증세가
진행되고, 앉을 수도 설 수도 없게 되었다.
밤마다 베개를 입에 물고 벽에 머리를 찧으며
분노와 좌절, 포기와 죽음을 넘나 들던 나는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들여놓고 술에 빠져들었다.
취한 후의 세상은 달랐다.
모든 걸 잊을 수도, 쉽게 잠들 수도 있었는데
점차 나 자신조차 잊어 현재의 내 위치와
시제가 대책없이 범벅이 �었다.
차 안에서, 놀이터에서, 술집에서, 장소를 불문하고
마시다 그자리서 잠들었는데 깨어나면 언제나 내 침대였다.
- 제발.. 정신좀 차려..
당신이 스스로를 포기하면 아이와 나는 의지할 데가 없질 않소,
아이를 나 혼자서는 지킬수 없소.
난 지금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행복하오
세살때 병아리 같은 걸 수술실로 들여 보낼 때를 생각하면
얼만큼의 축복이자 행운인지 모르겠소...?
남편은 내앞에서 울었다.
'학교에 가고싶은데 공부를 안해서 불안하다...'
'엄마 냄새는 이불속 같이 포근한 느낌이 들어 참 좋다,
그 냄새를 맡으면 스르르 잠이 온다.'
내 등 뒤에서
엄마와의 단절에 외로운 아이의 절망을
떨리는 손으로 서툴게 써내려간 일기장에서 발견하고
온몸이 죄책감에 떨려왔다.
뒤돌아 보니 키가 한뼘이나 커져 있었고
보이지 않는 어루만짐으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절망과 희망의 끝자락에서 서성이던 내게
극한 상황과 대치하며 보여준 내 아이의 굴복 않는 기상은
주저앉은 나를 자극하여 일으키고 있었다...
먼지 오른 책들을 책장에서 추려내 털어내고
접었던 삼학년 교재부터 시작했다.
병증의 특징인 붉은 허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력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는 상 앞에 앉으면 서너시간은 기본이다.
짧은 시간내에 효과를 극대화 하려는 내 조바심은
아이의 집중력에 힘입은 욕심이 서서히 자라고있다.
스폰지 같이 흡수해버리는 아이의 몰두앞에서
나는 또 한번 가멸찬 꿈을 꾼다.
그리하여 나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비난과 질타를
아끼지 않던 남편에게 다시 한번 기세등등한 유세를
해볼 생각이다.
- 곡진한 삶의 생채기 두려워 않을 기상 가진 내 아이에게
나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소,
보다 확대된 영역을 사유하는 아이로,
이타적 삶으로 행동하는 아이로,
충실하고 치열하게 자신을 다진후 얻을 수있는
직관과 통찰의 검을 쥐어주고 싶었소,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오,
우리가 끝까지 아이의 그림자 노릇을 할 수 없는 건 슬프지만
정해진 운명 아니겠소...
어미로서의 죄의식에서 벗어나
맹모와 석봉모와 율곡모 흉내 내기에 골몰하며
기세등등하던 나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천하에 둘도없는 이 이뿐 물건이 내앞에서
깊은 보울물 지으며 작은 날개짓을 흉내 내고 있는데
주책이라 눈치준다 한들 내 어찌 이 기세가 쉽게 꺾이겠는가,
이 평화가 지속되는한 말이다...
(이천 일년 어느날 씀)
..........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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