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라오스 미안마

2007. 8. 5. 15:47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여행자들은 시간의 흐름을 공간으로 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의 글에는 꾸밈이 없다. 가르치려고도 설명하려고도 않는다.

자신의 얘기로 독자를 압도하려고 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그네의 관찰자적 시점도 아니다.

소박한 여행자의 일차적 경험을 이차적으로 가공하지 않는다.

그의 '날 경험담'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없애고 세계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는 듯한

착시와 환청을 불러일으킨다.

 

 

  

 

같으면서도 다 다른, 다 다른것 같다가도 다 같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누구의 삶도 특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느꼈다.

우리는 누구나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길 떠난 이의 여유와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긴장이 내내 앞서고 있다.

1백원에 울고 웃고, 메마른 심정을 드러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판단하고 재려 하는 모습이었다.

이 초라한 얼굴을 다 드러내야 하는 건가 회의가 일기도 했다.

 

  

 

 

 

   

 中國  

 

 

 

 

 

「나무와 꽃들의 비명이 요란한 거리에서 거칠게 등을 밀어대는 바람의 손길을 만나면

그저 눈을 감고 가던 길을 멈춘 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던 것처럼 제풀에 꺾여 성질을 죽인 바람이 물러가면

다시 그곳은 나른하게 몸을 뒤집으며 돌아눕는다.」

 

    

 

제 끝날지 모르는 먼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이제 집도 없고, 돌아갈 직장도 없고, 돈도 한 푼 없이. 나이만 들어 있을 텐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도대체 내 안에 어떤 존재가 있어 나를 이렇게 몰아가는 걸까?

나는 왜 소박한 일상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지고, 누군가 내 발목을 잡고 못 간다고 매달린다면

못 이기는 척 주저앉고만 싶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이 내 삶을 여기까지 몰고 왔다.

 

   

없어도 되는 것들로 가득 찬 나를 텅 비워 돌아가는 날,

바람만 담은 깃발처럼 가볍게 나부낄 수 있기를 …….

 

 

  

끔씩 사람들이 종교를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난처하다.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는 없지만, 모든 종교에 문호를 개방하고

절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성당에 가면 천주님께. 이슬람사원에서는 알라께 복을 빌고는 하니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신이 없다 있다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인간의 인식영역을 넘어서는 일로 여겨진다.

또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부처님이나 알라가 없다고 하는 것도 부당한 것 같고,

신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만든 경계 따위는 가볍게 건너다니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이상은 한 기회주의자의 변명.

 

 

  

  

 원난성 샹그릴라

 

    

 

 

 

그릴라에서 무엇을 봤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대답하리라.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을 것만 같다.

내게는 이곳에서 보낸 매 순간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기에.

 

   

개를  조금만 들면 어디서건 한눈에 들어오던 눈 덮인 설산과  창이 화려하게 채색된 창족들의 집.

붉은 장삼을 걸치고 말 없이 골목을 오르내리던 스님들.

경계하는 마음 없이 낯선 이를 맞아 술잔을 건네던 가난하고 아름다운 창족들.

 억압과 감시 속에서 묵묵히 독립의 꿈을 키워가는  그 낮은 목소리를 한순간 들었다는 것.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 결국 어떤 곳을 특별하게 만다는 것은 우리가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곳에 남겨둔 기억이다.

샹그릴라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곳, 아무 곳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곳이다."

 


  

롱이 손전등을 들고 바래다준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땅 위로 내려 앉을 듯. 

한국엔 이런 별이 없느냐고 묻는다. 깊은 산에나 가야 볼 수 있다고 하니 잘 이해가 안 가는 눈치다.

이 별 하나만으로도 오늘 여기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롱롱으로서는 매일 보는 별이

이토록 행복해하는 내가 이해가 안 가겠지.

 

 

 

 

  

라오스, 보텐

 

  

래서인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바라보는 풍경들이 빛바랜 사진 속의 그것처럼 희미하고 낯설었다.

마른 행주처럼 바싹 말라버린 마음은 퍼석거리기만 했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아 가슴이 답답했다.    

그 시간 동안 '왜?' '언제부터?' 이렇게 메말랐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겨우 찾아낸 핑게거리 하나는

한번 내 안의 것들을 모질게 태우고 난 후 아주 많은 것들이 소진된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제 살면서 다시는 그렇게 타오를 수 없을 것 같아 문득 쓸쓸해지곤 했다.

작고 사소한 것들, 비루한 존재들, 날고 허물어져 가는 것들에 머물던 시선은 여전한데

한번 얼어붙은 마음의 벽은 쉽사리 녹지 않았다.  

그 어떤 일들에도 스물몇 살의 시절들처럼 쉽사리 달아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지난날도 부끄럽지만

무디어진 더듬이 역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저 이제는 사람에게 위로받기보다는 말없는 자연의 손길에 기대고 싶어지는 나이에 들어섰음을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확인할 뿐이다.

 

 

 

  

 

 

 

"여행이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이다."

 

    

 

 

 

위치우의의 『중국문화답사기』 中

  

 밤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의 가장 큰 적이다. 

이는 단순히 비오는 밤길이 힘들거나, 혹 장화나 우산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밤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에게 집 생각이 나게 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은 깊어만 간다.

밤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가  편암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갑자기 자신이 너무 외지고 궁벽한 곳에 처해, 고달픈 처지가 되었음을 깨 닫게 된다.

가련한 짓들을 돌아보면 문득 만리 사방으로 치달리던 호탕한 기백도 꼼짝없이 얽매이게 된다. 

 

급류나 험난한 여울, 높은 산 험준한 고개가 아니라

그저 밤비로 인해 여행객은 떠나온 길을 후회하며때로 중도에 포기하고 발길을 되돌린다.

법현. 현장, 정화, 감진, 서하객. 그들은 밤비를 맞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들이 지닌 의지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밤비의 포위를 뚫고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나아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

 

 

   

 

  

 

일출이나 일몰보다는 해뜨기 전의 미명,

타는 듯 붉은 노을을 남기고 태양이 사라진 후의 잔영

이런 것들이 나를 사로잡고는 했다.

삶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고 난 뒤의 허망함,

패배 후의 씁쓸한 교훈 이런 것들이 아닐까?

 

 

 

 

 

 

 

 

 

 글. 사진.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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