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5. 15:21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글 사진. 김남희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 우리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정선 읍내 박모래 자락에 비오나마나 / 어린 가장 품안에 잠자나마나
노랑머리 파뿌리 상투를 / 언제나 길러서 내 낭군 삼나
저것을 길렀다 낭군을 삼느니 / 솔씨를 뿌렸다 정자를 삼지
한 세상 사는 동안
사람이 사람을 만나 가슴을 열고 인연을 엮여 가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있을까.
오늘도 수많은 사람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치지만
마음이 오가는 이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누군가 아침가리를 안다고만 해도 그 사람 얼굴을 다시 보게 되고, 친근함이 솟는다.
자기 자신과 만나고 싶어 찾아가지만 자신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곳.
나바호족 인디언의 인사 '호조니'는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길 바란다'는 뜻이란다.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걸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아침가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의 '통과의례' 지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만 '통과!'하고 지나가면 지나간 시절과의 추억을 깨끗이 정리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곳.
혹은 영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그랬듯 사랑을 묻기 위해 찾아가는 장소 같은 곳.
내게는 아침가리가 그런 곳이다.
우리는 별 말 없이 걸어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침묵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사람,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과 함께 걷는 일은 즐겁다.
다람쥐는 가을에 부인을 아홉이나 둔단다.
왜냐하면 도토리를 주워야 하니까.
마누라아홉을 가을 내내 죽도록 일을 시킨 후,
첫눈이 내리고 겨울이 시작되면
눈먼 마누라 하나만 남기고 다 쫓아낸단다.
그리고 눈먼 마누라에게는 썩은 도토리 주고,
자기는 알밤을 까먹는 단다.
그래서 마누라는 "씨궁씨궁" 하며 까먹고,
남편 다람쥐는 "알콩달콩"하며 까먹는다나.
이곳 양양에 사는 이옥남 할머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낙엽 도배지가 깔린 흙길을 우리둘만 걷자니 좀 아깝다.
차를 타고 고개를 걷는 사람들을 내리게 해 함께 드려다보게 하고 싶다.
"삶이란 우리가 살아온 그것이 아니다. 삶이란 우리가 추억하는 그것,
혹은 우리가 어떻게 추억하느냐인 것이다." 라고 마르케스가 그랬던가.
우리가 추억이라고 믿는 불완전한 기억들에 기대어 한 생을 견딘다는
일의 서글픔. 지난 시간들이 깔려 있는 이 길에서 내가 밟고 가는 것은
한묶음의 추억인가.
결국 길 위에서 나를 서럽게 하고. 웃게하고, 눈물짓게 하는 모든 것은
그 길 위에 선연한 울림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인 것이다.
아직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남기게 될 기억들은 또 무엇일까.
나는 이제 길 위에 흔적을 남기는 일들이 두렵다.
나뭇잎들 위로 아무런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지나는 저 바람처럼.
그렇게 걸을 수는 없는 걸까.
함께 걷는 그녀가 말한다.
"풍경은 담을 수 있지만 소리와 향기는 사진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워요."
사진에 담을 수 없는게 어찌 소리와 향기뿐일까.
어깨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햇살의 감촉도 담을 수 없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며 깨어나는 내 생생한 감각도 담을 수가 없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담고자 하는,
남길 수 없는 것들을 남기고자 하는 어리석은 노력이 결국 사진일까.
가능하다면 다음 생에 나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사철 푸른 바늘잎 나무 말고 넓은잎 나무로.
맨몸으로 혹한의 겨울을 견디어낸 후 여린 새 잎을 가장 먼저 내밀어 봄을 알리고,
여름내 무성하게 그늘을 두리우다 가을이 오면 다시 잎을 떨구고 겸손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그런 나무로.
스님은 어머니를 보살님이라 부르고. 어머니는 아들을 스님이라 부른다.
자식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묻고 싶은 것도 다 묻지 못하고,
말과 행동을 아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애쓰지 않아도 보여 나는 또 눈이 맵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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