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길을 걷다』

2007. 8. 4. 11:07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 도보여행가 김남희씨.

 

   릿속에 생각은 많고, 꿈도 많지만,

   CPU 용량에 미치지 못하는 본체를 지닌 탓에

   늘 과부하로 삐그덕거리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국토종단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건 단연코 내 인생 최고의 용기를 낸 거였다.

 

    

  남들이 다 하는 그런 여행 말고,

   몸 하나로 세계와 정면 승부하는 여행을,

   자동차도 버려두고,

   시계도 풀어놓고,

   휴대전화도 끈 채,

   발길 닿는 대로 아주 느리게,

   서두르지도 말고,

   걷자.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

   떠나는 거다.

 

 

 

 

 

의 땅을 떠돌기 전에, 꼭 한번.

우리 땅 끝에서 끝까지. 내 발로 걷고 싶었다.

걷는 동안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내가 떠나고자 하는 길이 비겁한 도피는 아닌지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언제나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칠 때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깊게 채워 돌아오던 내 모습도 그리웠다.

 

   

아. 또 하나의 이유.

짧았던 여행의 끝마다,

어딘가로 이어진 길을 보면

아쉬움으로 발길을 머뭇거리던 기억들이

내게는 흉터처럼 남아 있다.

 

  

방안을 맴돌며 계산만 하기보다는,

가다가 돌아올지언정 일단 걸어보기로 하는 거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게 내 힘에 부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면,

그때 가서 후퇴해도 늦지는 않을 테니까.

파이팅 한 번 외치고 일단 걸어보는 거다.

 

 

여행출발점 '땅끝마을 토말비'. ⓒ 김남희

  

                                    이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내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욕심많고, 허영기 많던 내게 행복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물닐적 충족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게 행복의 의미는 내가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아닐까?

넘어져 무릎 깨지고, 코피도 흘리면서 다시 일어나

걷는 법을 기어이 배우고야 마는 어린아이처럼.

세파에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세상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나를 보는 것.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내가 성장을 계속하리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바로 저 모판에 담긴 어린 모의 색이리라.

 곧 논으로 옮겨져 자라게 될 저 여린 볏잎에 담긴 밥과 희망의 공동체.

 끝까지 보듬고 가야할 우리들 남은 마지막 끈 하나.

  

 

리 집 앞을 지나가는 객을 붙잡아 재워주고, 먹여서.

얼음물까지 비닐에 꼭 사서 배낭 속에 넣어 보내는 열린 마음이 내게도 있던가.

허술한 살림살이 내보이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찬 없는 밥 먹이는 걸 미안해하며,

"가방만 봐도 내 맴이 심란혀. 집에서는 월매나 걱정하고 있을랑가. 몸 조심혀."

손을 꼭 잡아주고 보내는 그런 마음,

그런 분들 앞에서 나는 빠듯한 예산 탓을 하며 2만원을 드릴까 1만5천원을 드릴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 ......

 

 

 

▲ 보성 차밭 오

▲ 전라남도 보성 차밭 ⓒ 김남희

  

차밭도 예쁘지만 그 차밭을 둘러싼 숲과 높지 않은 산이 내 시선을 더욱 끌어당긴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숲길이 있다니,

어쩌려고 나는 이렇게 운이 좋은 걸까.

'내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보다 더 낫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득 불안해진다'던

기성의 고백이 생각난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여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도

  난 움츠리거나 소리 놓아 울지 않았다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개의치 않겠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가 최후진술 대신 읊은 시라며

   선배가 전자우편으로 보내줬다.

   윌리엄 어니스트 핸리라는 영국 시인이 병마와 싸우면서 쓴 시라는 제목은

  '인빅투스(Invictus)' 라틴어로 '정복불능'이라는 뜻이란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을 꺼내 읽는다.

제프리 노먼이라는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쓴 책인데 딸을

키우고 있는 친구나 선배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  남자가 자식들 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 해답이 없는 곳에는 문제도 없다. 

 - 모험 없는 등반을 상상하는 것은 섹스 없는 유혹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  

 - 가족이란 추억이라는 기금을 형성해 놓고 그 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 사람들이 왜 등반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설명 가운데

하나가 집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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