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2

2007. 8. 5. 16:01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글 사진. 김남희

   

 

 

    전에 난 내가 가는 길에 장애가 생기면

    그걸 확 치워버리거나 무시하고 목표를 향해 무조건 돌진하는  스타일이었어.

    하지만 지금 이 길에서 난 다른 걸 배우고 있어.

 

    처음에 난 원하는 때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려면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지를 계산하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췄어.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걸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달았어.

 

    사람들하고의 만남도, 이야기할 기회도 잃고, 이 작고 어여쁜 마을들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놓치고 있었던 거야.

    산티아고에 가서 '왔노라. 보았노라.'하고 휙 돌아서서 가려고 여기에 온 건 아니잖아. 

    그래서 지금은 안나 책도, 시계도 다 던져버리고 그냥 천천히 걸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작고 어여쁜 마을에서는 오래 멈춰 서서 쉬기도 하면서.

 

    아마 난 산티아고까지 못 가고 캐나다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아.

    산티아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처음 알았을 땐 속상해서 좀 울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년에 다시 오면 되는걸."

 

    "난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이 길을 걷는 동안 내 안에서 뭔가 변화가 있다는 걸 믿어."    

    "난 지금 너와  걷는 게 너무나 즐거워. 하지만 혹시라도 네가 혼자 걷고 싶어지면

    언제라도 내게 말해. 당황하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유럽인을 세상 바깥으로 몰고 간 동력이 뭐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가지였던 것 같아.

     바로 호기심과 탐욕."

  

    유럽의 역사와 문화는 그 전부가 기독교에 기반했는데. 

    이제 기독교에는 사람들을 모아내는 힘이 더 이상 없다.  

    삶과 유리되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고 만 종교는 어떻게 해야 삶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을까.  

 

    "내 삶의 지침은 신이나 부모, 학교가 주는 게 아니라 오직 내가 스스로 찾아낼 뿐이야.

    그것도 길고 오랜 시행착오의 세월을 거쳐서 겨우 ..... "


 

   

 

 

 

 

아무런 열정도 /  

마음의 갈등도 / 

불확실한 것도 /

의심도 /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 

그는 다만 신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다.

 

 미구엘 드 우나무노 『신을 믿는 것』

 

 

 

 

 

 

 

     "프랑스 사회에서 흥미로운 건 중국인과 한국인 사회야.

     중국인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프랑스 사회에 동화해.

     그들은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인과 거래하고, 프랑스인을 상대로 돈을 벌어.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자기네 문화를 지켜가지.

     그런데 한국인은 달라. 그들 중엔 프랑스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아.

     그들은 프랑스 사회 내의 한국인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장사를 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프랑스 사회에 동화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 두 사회의 공동점은 -

     어느 쪽도 프랑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거지."

  

 

 

 


  
                                                                                                          ⓒ2005 김남희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서 한 북미 인디언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면 그대는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고.
물질주의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대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문명 전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과감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줏대없고, 나약한 나를 벗어나 그때 쯤이면 문명 전체에도 등을 돌릴 수 있는 그런 힘을 갖춘 단단한 내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지금 내 머릿속은 너무나 많은 그리움과 미련과 욕망이 뒤엉켜 있다.

실타래 풀 듯 하나씩 풀어낼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얼굴, 맴도는 이름 하나도 지워낼 수 있을까.

멀리 떨어져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움은 깊어져 간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머릿속이 백지처럼 깨끗해져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리워하는 이가 살고 있는 곳.

     한 사람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 낯선 도시가 이토록 가까이 느껴질 수 있다니!

 

 

 

   

 

 

 

 

     미사의 마지막 순서인 성찬식 때,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들이 힘들게 걸음을 옮겨 빵을 받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

     한평생 그들을 이끌어 온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고 화냈을까.

     삶의 벼랑에 몰렸을 때 무엇에 의지해 그 길을 건넜을까.

     삶의 끝에 선 지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한평생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살아온 삶에 만족할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내가 저 나이가 되면 그간 걸어온 길을 어떤 마음으로 돌아볼지 문득 두려워진다.

 

 

 

   

 

 

 

     상처 없는 영혼은 허락될 수 없는 걸까?

     사람은 시련과 아픔을 통해 고양되고 단련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가끔은 상처 없는 영혼과 마주칠 수 있어도 좋은 것 같다.

 

   

     전에 난 사랑 없이 부부라는 틀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비겁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뜨거움이 사라진 공간을 책임감과 약속. 의리와 믿음 같은 것들이 채워낸다면,

     그게 더 용기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나도 사랑에 담담해질 수 있을까?

     집착과 격렬한 감정의 흔들림을 뒤로 하고,

     먼 세월을 혼자 걸어온 사람의 담백한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날이 올까?

     그때도,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비에 젖은 숲에서는 살아 있는 것들의 냄새가 난다.

     살아서 싱싱한 것들의 풋내. 비릿하고 촉촉한 냄새.

     젖은 숲에 들어서면 나무들은 아직 제 모습을 갖춘 그림자로 서 있고

     그 나뭇가지 위 어디에선가 숲의 정령들이 어깨를 옹송거리고 모여앉아

     젖은 날개의 물방울을 털어내고 있을 것만 같다.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는 정령의 뒷모습이라도 눈에 들어올까 싶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젖은 숲에서는.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거나, 혹은 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뿐.

 

  

 

    사에서는 오늘 이 도시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순례 시작 지점과 그들의 국적을 일일이 호명한다.

    "생장피드포르에서부터 걸어온 한 명의 코리아노" 이 말리 들리자, 눈물이 흘렀다.

    천 년 동안 서 있었을 성당 기둥에 기대어 나는 오래 울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한 기회가 왔다가 갔다는 것.

    무언가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감하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울고 싶었고, 내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고 싶었고.

    내가 한 모든 어여쁜 일들도 말하고 싶었고,

    내 가슴속에 터질 듯한 희열과 서러움과 행복과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제 '카미노 데 산티아고' 끝이 났다.

  

   

 

   리는 다시는 지금처럼 여기, 이 장소에 이렇게 함께 있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여기에 있는 김남희의 국내외 여행기들은, 글은 그녀가 쓴 책에서 발췌한 것이고,

    사진은 가급적 그녀가 찍어온 사진으로 골라서 편집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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