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1

2007. 7. 27. 16:56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슈퍼드라이와 슈퍼타이..

 


술독에 빠져 낮인지 밤인지 분간없이 살던 어느날
세탁기에 빨래감을 넣어두고 세제를 사러 어슬렁 나갔다.


- 슈퍼드라이 주세요...

- 저으~기, 꺼내 오세요.. 차가운거 많으니..


차가운거...? 세제를 왜 차게해서 파나..?
의문이 스치긴 했으나 잠시였고
쥔 아줌마의 단호하고도 완강해 보이는 턱짓으로 가르키는 곳에는
눈을 씻고 봐도 슈퍼드라이는 없었다.


- 없는데...요..?

- 없긴, 그기.. 있잖아요.. 냉장고에, 앞에 두고 그러네?


힐난하듯 다가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병 꺼내들고
비스듬히 쳐다보며, 몇병이나? 묻는다.


- 아니, 슈퍼드라이 달라는데 왜 맥주를...?

- ???? 슈퍼드라이 잖어...요...?
........ 아 ~ 슈퍼타이 찾수..? ㅎㅎㅎ


이해와  납득이란 인식과정은 영원처럼 길었고
늙수레한 쥔 아줌마의 미소는 아름답긴 커녕
흉계에 능란한 마녀같기만 했다.
마침 가게에 나와있던 이웃 아낙 여럿의 시선이 동시에 꽂히는걸 느낀 나는
허둥지둥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이 상황의 종결을 간절히 염원했다.


- 얼마예요..?

- 난 또.. 오늘은 일찍부터 시작했네.. 생각했지.
나온김에 아예 사들고 가지 그러우..?



사람이 사람에게, 그것도 전혀 고의가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적의를 가질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마디, 압도하여 반전할 한마디는 내게 없었고
투항하듯 문을 열고 나오며 혼자 궁시렁 거릴수밖에.
.... 끊어야되.. 그저 그넘의 술이 웬수야...
애꿎은 술을 탓했다.


흠... 아픈 기억이다.
나날이 심해지는 메맨토 현상에도 불구하고
나를 결박하는 아픈 기억이다....
술, 그거 별로 좋지 않더라. 많이 먹지는 말자..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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