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2

2007. 7. 24. 12:20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황당 2

   
 

원피스 탓이었어...

 

워낙 흰색 옷을 즐기기도 하지만

절기가 무더운 때라

그때도 나는 흰색 원피스에 구센티나 되는 흰색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강화 외포리서 배로 십여분 가면 석모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동네 작은 분교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찾아 떠난

수치심 많던 방년의 원정길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농로는 결국 신발을 벗어들게 했는데

부드런 흙은 상쾌하고

가까운 해풍은 적당했으며

물오른 벼들의 소소한 일렁임뿐 사방트인 들판은 적요했다.

나는 소리를 높혀 들의 고요를 깨며 곧 만나게될

식구들을 떠올리며 흥얼거렸는데.......




문득 눈을 드니

멀리 보이는 목표점이 가까워 지는게 아니라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그자리에 멈춰서서 손을 들어 각도를 재기도 하며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지를 이해하려 애를 썼다.

 

 
지하도 들어서기 전 무수한 확인도 소용없게

매번 엉뚱한 곳으로 나오는 치명적 방향감,

친구들과 서너번 갔던 길도 혼자서 또 다시 서너번 헤매는

막무가내 어둔 길눈 탓이니 망연할 밖에.



바둑판같이, 두부모판같이, 예리하고도

정연하게 절개한 들판의 세로길을 잘못 들어선듯 했는데

돌아보니 되짚기에는 아득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

작은 수로를 몇개 건너면 바른길이 될듯해서 내려다 보니

마침 충분히 건너 뛸수 있을 만큼의 폭이었다.

비척거리며 내려가 졸졸 맑은 물 흐르는 도랑앞에 섰다.


 

도움닫기 할, 뒤로 확보된 공간도 없었거니와

날렵하게, 나를 저쪽에 옮길수 있을, 만만한 도랑이었다.

한손엔 핸드백을 치켜들고 다른 손엔 신발을 모아쥐고,

크게 숨 한번 들이 쉬고, 뛰었다.


 


그런데, 그런데... 

 

 

도랑 저쪽에 안착해 있어야할 내가

도랑 한가운데,

그나마 맑은 물 흘러 다행인 도랑 한가운데 쳐박혀 있었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잠시후 정신을 수습하고 정리해보니

내 몸이 붕 뜬 순간 누군가에게 발목이 잡혔던것 같다.


 

한창 멋 낼 나이, 타이트한 원피스 자락의

뒷 트임과 도랑 폭의 함수관계를 계산하지 않은체

그냥 몸을 날린것이다....


 
울며... (그래, 확실히 울었었다..)

젖은 생쥐 꼴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놀래 달려나온 엄마.

멍청한 불효로 놀라게 하다니

 



아무도 없는 들판,

맘껏 치마를 걷어올리고 뛰었어야 했는데.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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