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의 기억입니다만,
이덕화가 밤 늦은 시각에 티비에 나와서 제 아버지를 회고하며 눈물 짓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란 분이 바로 이예춘씨라고,
허장강과 함께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악역 배우지요. 기억들 나시지요? 키 작고, 머리 확 벗겨지고, 볼에 주름살 푹 패인 그 사람. 이덕화가 나일 먹으니 꼭 제 아비와 빼닮았습디다.
그 냥반이 살아 생전에 처자식들과 잔정을 나누는 일이라곤 통 없었답니다. 아주 엄격했대요. 집안에서 아예 말이 없었다더라구요. 이덕화 얘기가,
즈 아버지가 무서워서 학교서 돌아오면 혹시라도 아버지랑 마주칠까봐 슬슬 피해다닐 정도였답니다.
허니 말 한마디 붙여봤겠습니까?
이예춘씨가 은퇴하고 나서 말년을 경기도 `파로호`인근에 별장을 짓고 들어가서 보냈던 모양인데, 나중에 이덕화가 배우로 한창 잘 나갈 때는 이따금씩 찾아 뵈었답니다.
이덕화가 왜, 아주 소문난 낚시광이라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파로호에 제 아버지 한테도 가면 별 대화없이 낚시로 소일하다 왔겠지요.
밤 낚시 채비를 할라치면 아버지 이예춘이
"야, 먼저 낚시 온 사람들 얘기가 저기 얼루 가 앉으면 괜찮다더라."
그런 식으로 관심없는 척하면서도 슬쩍 정보를 흘려준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가서 낚시를 하면, 붕어 잉어 할 것 없이 어찌나 잘 잡히는지
낚시바늘에 미쳐 미끼를 꿸 새도 없다는 거예요. 낚싯꾼들의 그런 뻥이 아니라 진짜로 그냥 넣기만 하면 나왔다는 겁니다.
낚시해 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 밤중에 형광 불빛의 찌올림과 잡아챌 때의 그 묵직한 손 맛은.., 그거 쥑이는 거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즈 아버지가 포인트에다 평소에 깻묵을 그냥 가마니채 붓다시피 했다는 겁니다. 또 그것도 모자라서 주변에 철조망까지 쳐놔서 일반 사람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구요. 모르긴 해도 전두환때 청남대 낚시터 관리하듯 한 모양입니다.
낚시 좋아하는 아들 올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했단 거지요. 그러니 낚시 조황이구 말구가 어딨겠습니까?
자정을 넘길 즈음되면 아버지가 산책을 나온 척하면서
" 저 위에 낚시 온 친구들 커피나 주려고 타 왔는데 남은게 좀 있는지 몰것따" " 뭐 좀 잡히냐?"
그러면서 보온병을 툭 던져주고 가는데,, 그걸로 끝이라네요. 일부러 자식놈 주려고 타 왔으면서도 그렇게 어깃뚱한 소리 한마디 남기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냥 돌아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날 이덕화가 TV에 나와서
생전 무뚝뚝한 걸로만 알았던 즈 아부지의 속정이 그러한 줄을 몰랐다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반추하는데, 그걸 보니 괜히 나도 눈물이 날라 그럽디다.
아들 둔, 애비들 하는 짓이란 게 대부분 비슷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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