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의 역사

2009. 8. 25. 18:09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p.s

 

사족을 앞에다 쓰는 놈은 내가 첨일 거다. ㅎㅎㅎㅎㅎ

 

이번에 러시아 공항 면세점에서 보니까 보드카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러시아를 수십번 드나들었던 인솔자 미스 최에게 물어봤습니다.

보드카건 뭔 술이건 다 맑기는 한데,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맑게 비치는 걸로 사라고 하더군요.

자기는 지금까지 사 본 중에서 스탠다든가 뭔가 하는 게 제일 좋았다고 하면서.

그 스탠다든가는 1리터짜리 병이 없고 500ml인가 700ml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주조회사가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3병 사온 거 다 남들 줘버리고 저는 맛도 못봤거든요.)

값은 그저 그렇습니다. 대충 한 병에 1만원~2만원 합니다.

 

보드카 먹는 방법은 냉동실에 한 일주일 눠 뒀다가 먹어야 좋답니다.

얼어터지지는 않는 답니다.

술을 따르면 기름방울 떨어지듯이 똠방똠방 떨어진다는군요.

입에 탁 털어넣을땐 무색,무취,무미한데, 속에 들어가면 "화아~" 한다네요.

그리고 나서 트림을 커억하면 그때 취기가 온 몸으로 "쫘악~" 퍼진답니다.

 

작년 여름, 폴란드에 갔을때, 아우슈비츠를 안내했던 점잖은 가이드는 또 그러더라구요.

보드카의 진짜 원조(原祖)는 자기네 폴란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일반 수퍼에서 파는게 아니라 다른 루트가 있다고 하면서,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구해주겠다는 거예요.

남은 여정과 이동 구간이 창창한지라 아무도 산 사람은 없었지요.

그래서 그때 참 희한하다, 왜 보드카를 러시아가 아니고 폴란드가 원조라고하는지,

아니 세상에 그것도 강대국이라고 뺐어가나? 하는 궁금증을 가졌더랬습니다.

 

 

 

  다음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이번 러시아 여행중에 읽었던 책입니다.  

 

 

 

미식견문록

 

 

"러시아에서는 그 어떤 자리에서든

보드카 한 병만 내오면

분위기가 확 바뀌며

별천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럴때는 술병에서 요상한 후광이 뻗친다.

이 후광이 보이지 않는 자는

러시아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19 세기 말, 러시아 정부는 보드카 제조 및 판매를 시작한다. 15세기부터 헤아려보면 네 번째 독점이 된다. 그 준비과정에서 보드카 제조기술 향상을 위해 멘델레예프 박사에게 성분비율을 밝혀달라고 의뢰한다. 당시 보드카는 대개 물과 알코올의 비율이 1대 1로, 이때의 알코올 도수는 41~42도(물과 알코올의 혼합액에서 알코올의 중량 비) 정도다. 물과 섞인 알코올이 응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섞기 전의 알코올 비중은 응고로 인해, 혼합 뒤의 비중과 같지 않다. 그 때문에 멘델레예프는 조금씩 비중을 바꾸어 계속 시음을 한 끝에, 1리터의 보드카가 953그램일 때 알코올 도수는 40도가 되며 맛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951그램으로는 41도, 954그램으로는 39도가 되어 어느 쪽이든 맛이며 인체에 대한 생리 작용이 나빠진다. 러시아 정부는 1894년, 이 멘델레예프 이론을 바탕으로 보드카의 이상적인 성분비율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더욱이 멘델레예프는 당시 호밀 증류수를 뜻하는 여러 명사 중에서 ‘보드카’야말로 가장 걸맞은 이름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이렇게 하여 이상적인 비율을 발견한 것뿐 아니라, 보드카가 오늘날의 보드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멘델레예프 덕분이라는 말이다.

 

 - 포흘레브킨 『보드카의 역사 』-

  

  

러나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는데, 상트 페테르부르그 대학의 드미트리예프 박사다. "멘델레예프가 보드카의 도수를 40도로 결정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또 보드카가 40도일때 특히 맛이 좋아진다는 생리학적 연구를 했다는 증거도 없다. 물론 멘델레예프는 1865년에 무수 알콜을 제조하여 그것으로 물과 알콜의 혼합액의 비중을 상세히 측정했으며, ( 중략 )  결론적으로 포흘레브킨의 설은 1860년대의 멘델레예프의 활동과 박사논문으로 미루어 상상력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註. 멘델레예프화학원소 주기율을 발견한 화학자.)

 

 

  

  

보드카 특허권 분쟁

 

1977년 서양의 몇몇 기업이 보드카의 제조 특허와 보드카라는 명칭 사용에 관해 배타적 우선권을 주장하며, 소련산 보드카를 시장에서 밀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소련 기업보다 자신들이 보드카 제조를 더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련에서는 소비에트 연방 집행위원회 · 인민위원평의회가 채택한 1923년 8월 23일 자 조례가 발효된 뒤 제조하기 시작했지만, 자신들은 이미 1918년에서 1921년에 걸쳐 보드카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이 무렵 유럽과 미국에서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러시아 기업가들이 보드카 제조회사 스미르노프고르바초프, 에리스토프게글레비치 등를 설립하고 있었다. 소련 정부는 1917년 12월 1일부터 국내에서 보드카 제조를 금지했고, 이 금지령은 6년쯤 뒤인 1924년에야 풀렸다는 것이다. ( 중략 )  

1923년 8월 23일이라는 날짜는 러시아 보드카의 생일이 아니다. 생일은 적어도 망명자들이 보드카제조를 시작한 1918년보다 훨씬 이르다는 것을 법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니 소송은 일찌감치 취하되었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같은 해인 1977년, 이번에는 같은 사회주의 나라인 폴란드 정부가 헤이그 국제법정에 소송을 걸었다. "보드카의 고향은 폴란드이며, 다른 나라 증류주에 보드카라는 상표명을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다."  (중략 ) 

심의 결과, 1982년 국제법정은 폴란드의 소송을 기각하고, 보드카를 러시아 고유의 알코올 음료로서, 세계시장에서 보드카의 상표를 쓸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인정했다.이리하여 보드카의 고향은 러시아이며, 태어난 해는 1446년이라는 국제적인 인증을 받았다.

 

 

 

"국가의 보드카 독점은

언제나 강력하고 견고하며 안정된 권력,

안정된 사회상의 증거였다.

정치적 안정이 흔들리면

보드카는 통제를 벗어난다.

보드카는 사회의 안정도를 알리는 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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