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우화』

2021. 4. 8. 19:05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2018. 7. 30

 

"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



책소개

 

류시화 시인이 들려주는 우화 『인생 우화』. 폴란드에서 전해 내려오는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 헤움의 이야기들을 저본으로 삼아 재창작한 우화들과 그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저자가 창작한 우화 45편을 담은 책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우리를 상상의 이야기 속으로 안내해 우화가 주는 재미와 의미를 느끼게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한 마을에 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세상의 바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목에 묶은 붉은색 끈이 사라지자 자신을 찾아 헤매는 빵장수, 실수로 창문을 만들지 않은 캄캄한 교회당을 밝히기 위해 손바닥으로 햇빛을 나르는 신도들, 진실을 구입하러 다른 도시에 갔다가 속아서 구린내 나는 오물을 한 통 사 가지고 와서는 ‘진실은 구리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순수함, 어리석음, 그리고 논리적인 비논리 속에 우리가 사는 사회를 담아낸 우화들을 통해 우리 안의 바보가 어떤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더 많은 문제를 만드는지 보여 준다.

 

 

 

 

 

 

류시화 시인

 

충북 옥천 출생이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년부터 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무렵부터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시작해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80여 권을 번역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오쇼 라즈니쉬, 라마나 마하리시, 스리 오로빈드, 푼자 바바 명상센터 등을 방문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 U. G. 크리슈나무르티와 만났다.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로 알려진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의 가르침을 소개했다. 1988년부터 열다섯 차례에 걸쳐 해마다 인도, 네팔, 티벳 등지를 여행했으며,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냈다. 지금은 서울 대학로에 작업실이 있다.

 

 

 

삽화 :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러시아 출신 화가) 作 'Our Street'

 

 

 

 

 목차  

 

 

프롤로그 _ 잘못은 천사에게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
자기 집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
해시계를 해에게 보여 주지 않는 이유
정의를 구합니다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말해선 안 되는 것
전염병 미해결 사건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
시인의 마을
누구를 살릴까요?


단추 한 개
진실을 말할 때 우리가 하는 거짓말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모두가 교수인 마을
내 입장이 돼 봐


아흔 마리 비둘기와 동거 중인 남자
메시아를 기다리며
병원에서 살아남기
바보들의 인생 수업
이번 생에는 빈자, 다음 생에는 부자


햇빛 옮기기
진실은 구리다
고독한 천사에 관한 우화
세상의 참견쟁이들
바보도 아는 질문, 천재도 모르는 답


완벽한 결혼식에 빠진 것
부탁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이 돌은 왜 여기 있을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이야기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


무엇을 보고 싶으신가요?
조언이 필요하세요? 헤움으로 오세요
나한테는 내가 안 보여
썩은 이를 놓고 벌이는 대결
세상에서 가장 쉬운 위기 대처법


별것 아니지만, 꼭 있었으면 하는 끈
흔하디흔한 생선 가게에 생긴 일
옷을 입힌 여자와 옷을 입어 본 남자
이곳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
하루 단어 사용량


신마저도 도울 수 없는 사람
지혜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무슨 설교를 할지 우리가 더 잘 알아요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는 법

 


부록_ 어처구니없는 세상에서 헤움 식으로 살아가기
작가의 말_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시인이 들려주는 폴란드 헤움 마을 우화, 인생을 우화로 풀어낸 45편 수록 ─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믿는 ‘바보들의 마을, 헤움’에서 일어난 기발하고 엉뚱한 일들,
세상에 대한 유쾌한 풍자와 은유



이 우화집은 17세기부터 동유럽에서 구전되어 내려온 짧은 이야기들에서 소재를 빌려와 작가가 기승전결을 갖춘 내용으로 재창작한 우화들과, 그 이야기들에 영감을 받아 작가 자신이 창작한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가 펼쳐지는 무대는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 헤움이다.
“모든 인간은 우화적 세계 속에 태어나며, 따라서 우화적 세계 속에서 사유한다.

그런 만큼 어떤 시대를 지배했던 우화 구조를 이해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라 퐁텐은 대표작 『우화 시집』에 이렇게 썼다.
“우화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직설적인 설교는 지루하지만 이야기와 함께라면 쉽게 받아들인다.

교훈을 위한 교훈은 재미가 없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생각에 재미를 더해서 유명한 작가들이 우화를 쓰는 것이다.”
저자는 “우화는 픽션이 아니라 진실이다.”라고 단언한다.

 

 

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지혜로운 자는 줄고 어리석은 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것이 걱정된 신은 두 천사를 불렀다. 그중 한 천사에게 지상에 내려가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두 모아 마을과 도시들에 고루 떨어뜨리라고 말했다.

두 번째 천사에게는 지상에 있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전부 자루에 담아 데려오라고 일렀다.

지혜로운 영혼으로 바로잡아 다시 세상에 내려보내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천사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혜로운 영혼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천사는 어느 곳을 가든 어리석은 영혼이 셀 수 없이 많았으며,

자루에 넣으려 하면 몹시 저항하며 발버둥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자루가 가득 차자 천사는 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거대한 자루를 메고 하늘을 날기란 쉽지 않았다.

산 정상을 가까스로 넘는 순간 천사는 자루의 무게 때문에 날개의 통제력을 잃고 휘청거렸고,

키 큰 소나무의 뾰족한 솔잎에 찔려 자루 밑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자루 안에 있던 영혼들이 일제히 쏟아져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되었다.

 

 

 

 

(167)

그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항아리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는 소리쳤다.

정말 구려! 구린 걸 보니 진실이 틀림없어!”

그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그것이 정말로 진실 그 자체라고 소리쳤다.

진실이 맞아! 진실은 원래 심한 구린내가 나잖아!”

 

 

 

 

(218)

“친애하는 고덱, 걱정하지 마시오모텍의 미래는 성공적일 겁니다.

한 바보가 그림에 묘사된 장면을 설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나머지 바보들은 자신들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집으로 가서 모텍이 처음의 영감에 따라 계속 그림 작업을 해 나가도록 격려해 주세요.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작업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도 있으니까요!”

 

 

(232-233)

베렉의 말에 모두 침묵에 잠겼다. 그의 주장은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하임을 포함한 의회 현자들 모두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회는 이제부터 위기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 대신 축복받은 환경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의회의 결정 사항은 곧바로 공표되었으며,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자 헤움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276)

너무 상심하지 마, 아나톨. 나의 할머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고 늘 말씀하셨어. 헤움의 큰 사건들은 마을의 연대기에 기록되지만 날의 작은 일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 그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만약 당신이 그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쓴다면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일들이 문자로 기록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게 될 거야. 헤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해도 적어도 당신의 책 속에서는 언제까지나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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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하나

 

물장수 페이사흐는 아내 파이가와 함께 다섯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 파이가는 본래 그 마을의 가장 큰 부잣집의 외동딸이었고 페이사흐는 고아출신이었습니다. 신붓감으로 그녀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지만 파이가는 굳이 페이사흐와 결혼하겠다고 하여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이 집은 매우 가난하여 닭 몇 마리 빼고는 가진 것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하지만 항상 그 마을에서 가장 웃음소리가 많이 나는 집이 이 물장수의 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닭 한 마리를 팔아 동전 한 닢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옆 마을로 아버지 페이사흐의 겉옷 단추 하나를 사러 갔습니다. 마침 겉옷에 알맞은 단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장점 주인은 그 단추만 새것이면 다른 단추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른 단추들도 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단추들도 갈려고 보니 낡은 옷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아예 새것으로 사야만 했습니다. 윗도리만 새 거면 안 어울리니 바지도 사야했습니다. 아빠만 새 옷을 입으면 안 되니 아내와 자녀들 것까지 새 옷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페이사흐가 가진 것은 동전 한 닢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단추 하나만 사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온 가족은 머리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페이사흐는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했고, 아내 파이가는 이런 집에 시집오는 것이 아니었다고 후회하였으며, 아이들은 왜 우리 부모님은 남들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슬퍼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페이사흐는 그 새 단추를 울타리 밖으로 집어던졌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이내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바라는 것이 많아지면 슬픔도 많아집니다.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던 빵장수 헤르셸은 공중 목욕탕에서 옷을 다 벗는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빵장수인지 지붕 수리공인지 혼동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목욕탕에 갈 때마다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는다. 그런데 몸을 씻다가 그 끈이 벗겨지고 다른 남자의 손목에서 그것과 똑같은 붉은색 끈을 발견한 그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다. 그 남자가 자신이 되고, 자신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자기 집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


언제나 다른 도시와 장소를 꿈꾸던 신발 수선공 슐로모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르샤바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쉬지 않고 몇 시간을 걸은 끝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두 갈래 길에 이른 그는 방향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바르샤바 쪽으로 향하게 신발을 벗어놓은 뒤 잠시 낮잠을 잔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남자가 길 가운데 놓인 신발을 보고 자기가 신으려고 집어 들었다가 깔창 냄새에 놀라 바닥에 집어던지고, 공교롭게도 신발코가 헤움을 향하게 된다. 잠을 깬 슐로모는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본인의 영리함을 칭찬하며 다시 바르샤바로 향하는데……

 

 

 

 

「진실은 구리다」


줄거리: 어느날 헤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진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 밖에서 진실을 사오기로 한다. 임무에 고용된 한 마부가 길을 떠나 어느 여관에 도착했고, 진실을 사러 간다는 그의 말에 여관 주인은 자신이 진실을 팔 수 있다며 비싼 금액을 요구한다. 신이 보낸 사람이라 믿은 마부는 헤움에 돌아가 사람들과 논의한 끝에 은화 500개를 가지고 여관 주인에게 돌아가 커다란 항아리에 진실을 채워온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 속에 항아리가 헤움에 도착했고, 조심스레 항아리 뚜껑을 열었으나 구린 냄새로 코를 움켜쥘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구린 걸 보니 진실이 틀림없어!"라며 진실 그 자체라고 소리쳤다.

 

 

「썩은 이를 놓고 벌이는 대결」


자신의 머리만 믿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이그나츠.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이그나츠, 네가 더 잘 알잖아. 네 생각이 옳아.’ 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의 유일한 경쟁자는 마을의 랍비. 어느 날 이그나츠는 극심한 치통으로 고생하다가 부은 볼을 하고 랍비를 찾아간다. 상태를 살펴본 랍비는 얼른 이웃 도시의 치과의사를 찾아가라고 조언하지만, 그는 랍비를 제외하고는 세상 누구도 신뢰할 수 없기에 치과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결국 랍비는 이그나츠의 성화에 못이겨 썩은 치아를 뽑아 주기로 하고 어느 것이 아픈 치아인지 묻는데, 이그나츠는 자기보다 머리가 좋다면 썩은 이를 알아맞춰 보라고 도전장을 내민다.

 


「흔하디흔한 생선 가게에 생긴 일」


생선 장수 모트케는 대도시에서는 모든 가게가 판매 품목을 광고하는 간판을 밖에 내건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시원찮아 고민하던 그는 '매일 신선한 생선 판매’라는 간판을 내건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마다 과장 광고다, 생선가게에서 굳이 생선을 판다고 광고해야 하느냐, 비린내가 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상심한 모트케는 간판을 떼고 랍비를 찾아가 조언을 청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