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2021. 4. 12. 20:25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100세 철학자의 대표산문선    2018. 2. 8. 

 

 

책소개

1959년 《고독이라는 병》, 1961년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이후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로 널리 사랑받아온 김형석이 평생에 걸쳐 쓴 글들 가운데 가장 아끼는 25편의 산문을 모아 엮은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젊은 시절부터 마음 한편에서 지울 수 없었던 고독,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서부터, 인연, 이별, 소유, 종교, 나이 듦과 죽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애써 살아야 하는 이유까지 삶의 철학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통해 고생스런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까닭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1부 ‘읽어감에 관하여’에서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친구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은 글들을 포함해 상실과 고독, 사랑에 관한 글을 엮었고,

2부 ‘살아간다는 것’에는 인생의 의미, 삶의 과정 자체의 소중함,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지혜 등 그의 인생론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담았다.

3부 ‘영원을 꿈꾸는 자의 사색’에는 삶의 여러 물음들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오늘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을,

4부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에는 저자의 젊은 시절의 글들을 포함해 수필가로서 명성을 얻은 이유를 알게 해주는 소박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형석 대학교수, 철학자

 

저자 김형석은 철학자, 수필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上智)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후학을 길렀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철학계 1세대 교육자’로 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 초대 회장을 지냈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현재 99세의 나이에도 활발한 저서 활동과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지난해에는 무려 165회의 강연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이었다.

주요 저서로 『백년을 살아보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예수』 등이 있다. 특히 1960~1970년대 펴낸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젊은이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한 해 60만 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목차

머리글을 대신하여



잃어감에 관하여 _상실론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자연 그리고 친구
황혼의 우정
사랑이 있는 산문
고독에 관하여



살아간다는 것 _인생론


무소유의 삶을 생각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아름다운 인연들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들



영원을 꿈꾸는 이의 사색 _종교론


처음과 마지막 시인
내가 있다는 것
교만의 유혹
어울리지 않는 계산
정의냐 사랑이냐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 _책 속 수필선


오이김치와 변증론
꼴찌에게도 상장을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것
내 잘못은 아닌데
길과 구름과 실존


선비정신과 돈
양복 이야기
철학의 죄는 아닌데
꿈 이야기
정이라는 것

 

 

 

 

 

책 속으로

그러나 고독은 마음과 더불어 자란다. 마음과 한가지로 깊어지기도 하며 넓어지기도 한다. 정신이 자란다는 것은 이렇게 고독이 자란다는 뜻이다. 키르케고르의 ‘그가 지니고 있는 고독의 척도가 곧 그의 인간의 척도’라는 뜻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_52쪽

이제 지금까지는 모든 대화나 사귐의 뒷자리에 서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이 서성대고 있던 또 하나의 ‘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와 웃고 있을 때도 모르는 체하더니, 애인과 즐기고 있을 때도 얼굴을 돌리고 상관이 없는 듯싶더니, 학문이나 예술을 떠들고 있을 때도 머리를 숙이고 듣고만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친구가 죽었을 때 한번 쳐다보던 그 얼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물끄러미 내 행동을 살피던 모습, 사랑하던 사람이 운명할 때 나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싶어 하던 표정을 그대로 가지고 나타났다.

_56-57쪽

우리는 밤의 암흑을 몰아내기 위해 촛불을 켠다. 초는 불타서 사라지고 만다. 초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초는 빛으로 바뀔 수 있어야 그 빛이 우주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 그리고 암흑은 그 힘 때문에 자취를 감춘다.

_77쪽

옛날부터 우리는 육십, 즉 회갑 관념에 붙잡혀 살았다. 육십은 이미 늙어버린 나이이며 칠십은 고희古稀라는 잠재 관념 때문에 회갑만 지나면 나 자신도 늙었다고 생각하며 칠십이 지났는데 누가 나를 인정하며 받아주겠는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버리곤 한다. 육십이라고 해서 늙으라는 법도 없으며 칠십을 지냈다고 해서 나 자신을 늙은이로 자인할 필요도 없다. 인생은 육십부터이며 칠십은 완숙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_82쪽

죽음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래서 고통 없는 죽음이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죽을 때의 고통은 태어날 때의 고통과 성격이 비슷할지 모른다. 그 고통이 모든 삶의 내용을 망각의 순간으로 바꾸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는 것일까.

_98쪽

그러나 어쨌든 내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무한의 우주 속에 할딱이는 육체, 끝없는 시간 위의 한순간을 차지하고 있는 내 생명, 가없는 암흑을 상대로 곧 소멸되어버릴 한 찰나의 가느다란 불티같은 내 의식, 이것이 나이다. 내가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_129쪽

세상에는 질서가 있고 생활에는 의미가 있듯이 산책에도 이치가 있다. 아침 산책은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육체의 건강을 촉진시키는 소임所任을 맡아주고, 저녁 산책은 마음의 내용을 정리하여 육체의 휴양을 채워준다. 사색을 위해서는 오전이나 오후의 소요가 자연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으므로 좋고, 자연의 미를 느끼기에는 해 뜨기 전에 떠나서 아침볕과 같이 돌아오는 길이 좋다. 석양을 받으며 떠나서 황혼에 돌아오는 산책도 자연을 감상하기에 흡족하다. 안개 속 소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아침저녁의 고요, 산 밑이 온통... 그림자로 채워지는 부드러운 장막 속에 잠겨보는 심정, 이 모두가 얼마나 아름다운 정서인가! 사람들은 바빠서 산책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평생 그렇게 마음이 바쁜 사람은 큰일을 남기지 못하는 법이다.

_182-183쪽

 

 

 

 


보물단지 속, 오래 아끼던 물건과 같은 25편의 산문

“내가 쓴 글에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의 다짐을 굳히기도 한다. 글은 저자를 떠나면 스스로의 내용을 갖고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지니고 있던 보물단지 속의 아끼던 물건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마음의 선물로 내놓는 심정이다.”(6-7쪽)
1920년생인 저자는 1954년부터 1985년까지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봉직하며 후학들을 길러냈다. 1960년대의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필두로 펴낸 수많은 에세이와 철학 저작은 험악한 세월을 사는 독자들에게 인생의 지침이 되어주었다. 퇴직 이후로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집필과 강연은 계속되었고, 일생 동안 써온 수상과 수필을 엮어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2008)와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2012)를 펴냈다. 이 두 권에서 김형석 산문의 고갱이라고 할 만한 글들만을 엄선하여 엮은 것이 바로 이 책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이다. 표제작이자 첫 번째 글인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새로 집필해 추가했다. 하나같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들로, 고생스런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까닭에 대한 사유의 재료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현재가 최상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6쪽)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김형석 교수가 평생 해온 일이 바로 삶의 의미를 검토하는 일이었다. 철학자로서 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저자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회 현실도 빠르게 변화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물음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남아 있다. … 나도 같은 문제를 갖고 백수를 맞이하는 오늘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온 셈이다. 그 열정은 인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물음이기도 하나,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모두’를 염두에 둔 문제의식의 농도가 짙어져갔다. “‘내’가 아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고민, 평생을 해왔고, 지금도 씨름하고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향한 고민의 소산이다. 같은 고민을 가진 독자들에게, 노 철학자가 건네는 애정 어린 말들이 소중한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