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4. 18:56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더 보고 싶은 그림
─ 모든 그림에는인생이 담겨 있다
저자이일수 출판시공아트 | 2019. 9. 5. 페이지수332 | 사이즈 174*220mm
판매가서적 16,200원
동서양의 여러 그림을 통해 각양각색 그림 속 인물들의 삶과 일상, 당대의 정치와 사회 현실, 그리고 문화와 사상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들의 삶과 인생을 깊숙이 바라보게 하는 예술 인문서다.
술에 취해 제대로 판결하지 못하는 정치인, 격변기의 배움터,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주체, 놀이의 권리 등을 주제로 한 시대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그림들이지만 공통적으로 ‘사람’이 있다.
동일한 소재 혹은 주제의 두 작품을 비교 감상하다 보면 그림 속 인물들의 삶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연결됨을 알게 된다.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를 통해 우리 옛 그림에 담긴 사람을 탐구한 저자가 이번에는 ‘그림에서 삶과 인간을 보는 방법’을 알려 준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림을 봐야 할지 고민하느라 정작 그림이 보여 주는 중요한 무엇을 보지 못한다.
『더 보고 싶은 그림』은 사조나 기법이 아닌 ‘어떤 눈으로’ 그림을 봐야 할지, 무엇을 볼지를 말해 준다.
그림이 주는 있는 그대로의 감동과 그것이 전하는 여운은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전달된다. 경향에 따라 보이는 그대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의 눈으로 본 모든 그림은 결국 감상자의 눈에서 완성된다.
이일수 작가, 큐레이터
대중에게 그림을 통해 지적 유희와 감성적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자 도서 집필, 전시 기획,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미술관 같은 갤러리인 하나코 갤러리를 운영했으며, SBS 기획 전시 총감독으로도 활동했다. 기획한 전시로는 하나코 갤러리의 다수 전시 및 《안녕하세요! 조선 천재 화가님》(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2014 The Out of Box Festival 초청 전시 《Hello! Genius Joseon Painters》(Queensland Performing Arts Centre and Cultural Centre, South Bank) 등 수십여 회가 있다.
대구문화재단의 차세대 문화 예술 기획자 양성 과정(2013-2017년)의 ‘큐레이터 자질과 입문’ 특강 및 여러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예술 경영 특강을 진행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과 각 시립도서관에서 미술 인문학을 강연하고 인문 독서 아카데미를 했다. 저서로는 『작아도 강한, 큐레이터의 도구』(애플북스), 『즐겁게 미친 큐레이터』(애플북스), 『알고 가면 미술관엔 그림이 있다』(인디북),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시공아트), 『화가들의 초대』(구름서재) 등 모두 13권이 있다. 각 공간에서의 모든 미학적 활동은 ‘동시대인들의 삶에 얼마나 이로운 것인가’라는 질문을 전제로 하고 있다.
* BLOG 이일수’s Art 하나코 https://blog.naver.com/iss003
목차
책을 펴내며 : 오늘 여기, 그림 앞 관람객의 모습을 보며
제1전시실_ 보이는 그대로 보기
-술 취한 미래의 시간을 보다
: 김홍도의 〈노상송사〉와 조지 칼렙 빙엄의 〈시골 선거일〉
-노비가 된 신체
: 복쇠의 손이 그려진 〈자매문기〉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반항하는 노예〉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와 귀스타브 카이보트의 〈창가에 있는 젊은 남자〉
-시냇가 기슭에서 있었던 일
: 신윤복의 〈계변가화〉와 강희언의 〈사인사예〉
제2전시실_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까
: 정선의 〈박연폭포〉와 폴 세잔의 〈고가교가 있는 풍경(생트빅투아르 산)〉
-잔혹한 어느 봄날 ‘오란’을 만나다
: 윤두서의 〈나물 캐기〉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서당, 배움터의 빛과 그림자
: 김홍도의 〈서당〉과 김준근의 〈서당〉
-맹금류의 시선이 흔들릴 때
: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와 장승업의 〈호취도〉
제3전시실_ 나의 눈으로 보기
-자비가 필요한 시대
: 파블로 피카소의 〈과학과 자비〉와 프레더릭 모건의 〈자비〉
-그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날다
: 신윤복의 〈단오풍정〉과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놀이의 순간을 통해 본 ‘놀 권리’
: 신광현의 〈초구도〉와 윤덕희의 〈공기놀이〉
-그림의 기만 혹은 해방
: 김홍도의 〈그림 감상〉과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루브르 박물관의 살롱 카레〉
참고 도서
책 속으로
오늘날의 우리 역시 〈노상송사〉와 〈시골 선거일〉 그림을 지적 호기심과 유희로만 감상할 수 없다. 낯부끄러운 문제를 일으키고도 술에 취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모르는 척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김홍도의 그림 속 태수와 형리와 닮았다. 또한 빙엄의 그림에는 지역적 특혜에 대한 공약에 취해 자질 없는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일부 유권자들의 모습이 있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고위 공직자의 역할, 그리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활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유권자의 역할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 제1전시실: “술 취한 미래의 시간을 보다” 중에서
여러 전시실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조선 시대 전시실로 들어갔을 때 〈복쇠자매문기〉를 처음 마주했다. 제목을 보지 않고 우리는 그림 앞에서 각자 손 그림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미소 지었다. 종이 위에 다섯 손가락을 좍 펴서 올려놓고는 펜으로 손 모양을 따라 그리고 나서 색색이 매니큐어 바른 손톱이나 반지를 그리며 놀았던 어릴 적 추억, 그리고 미술을 전공할 때 해부학적 손 그림을 수십 장씩 그린 기억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다음에 작품 문구를 읽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노비가 됨을 증명하는 문서”라고 쓰여 있었다.
- 제1전시실: “노비가 된 신체” 중에서
때로는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그렇다. 차가운 바위 위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응시하는 방랑자의 뒷모습은 광대한 자연과 비교하여 왜소해 보이기는 해도 위축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개 바다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바위산과 계곡을 바라보는 남자의 관념적인 모습은 무대 위에서 “고단한 내 삶의 여정은 언제쯤이나 끝날 것인가?” 하며 격정의 대사를 쏟아 내는 배우처럼 극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 제1전시실: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중에서
정선과 세잔은 성장하며 바라본 동네의 산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미술사에 큰 산을 만들었다. 정선은 조선 회화사의 기념비적인 산을 만들었고, 세잔은 서양 미술사의 산맥을 만들었다. 동네의 흔한 뒷산을 거대한 미술의 산으로 옮기는 예술적 성취는 감각의 근육만이 아닌, 봉우리가 높고 골짜기가 깊은 지성의 산맥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키운 지적 근육이 병행되었기에 가능했다. 산을 쉼 없이 오르다 보니, 그들 자신이 산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
- 제2전시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까” 중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홀연히 어떤 문학적 경험이 그림자처럼 따라올 때가 있다. 동양 문화권에는 이미 서와 화의 근원을 하나로 보는 서화동원 의식이 있었다. 그림과 글은 삶의 근원을 묻는 언어적 역할을 한다는 유사점이 있다. 윤두서의 〈나물 캐기〉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자연스럽게 펄 벅의 소설 『대지』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으로 펄 벅은 1938년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중국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탄생 무렵의 농촌을 배경으로 가난한 농부 왕룽이 부유한 지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땅에 대한 땀과 애정으로 가득한 파란만장한 삶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항상 아내 오란이 함께한다.
-제2전시실 “잔혹한 어느 봄날 ‘오란’을 만나다” 중에서
의사가 여성의 맥박을 재고 있다. 그런데 가운을 입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은 병원이 아니고, 의사도 다급한 연락을 받고 왕진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수녀로 인해 이 누추한 장소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길에서 아이와 구걸하거나 성매매로 병을 얻은 여성들이 구조되어 오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혼자 힘으로 더는 삶을 헤쳐 나갈 수 없을 만큼 피폐해져 벼랑 끝에 놓여 있을 때 이송되어 오는, 빈민가에 마련된 곳이다.
- 제3전시실 “자비가 필요한 시대” 중에서
공기놀이하는 남자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여자아이들의 행방이 궁금하다. 구경하는 모습으로라도 등장할 법 하건만 여자아이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옛 그림에 보이는 딸들의 모습은 주로 동생을 업거나 일하는 성인 여성들 옆에서 시중드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동생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옆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도 있다. 아직은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놀이가 필요한 나이임에도 동생들을 돌보거나 궁핍한 살림에 보태기 위해 남의 집 허드렛일 중이다. 이렇듯 서민층 딸들에게는 ‘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 서양의 그림에 등장하는 성장기 여자아이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제3전시실 “놀이의 순간을 통해 본 ‘놀 권리’” 중에서
대중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가 시각 예술가들의 창작의 화두라면 감상자의 화두는 이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떤 각도에서 볼 것인가다. 우리가 흔히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에는 공통적으로 어느 시대의 감상자를 만나더라도 관찰과 성찰이 가능한, 즉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인류의 보편 가치가 담겨 있다. 천차만별인 미술의 기초적 이해나 미술 경험을 넘어 자신의 삶을 성찰하거나 오늘 여기의 인간 공동체를 둘러보게 하며 질문을 갖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수동적 수용보다는 능동적 접근이 필요한 일이다. 예술의 완성과 인생의 교과서 같은 작품은 감상자의 관찰자적 시선과 성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림 감상〉과 〈루브르 박물관의 살롱 카레〉를 통해서 엄중한 질문을 갖게 된다.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 제3전시실: “그림의 기만 혹은 해방” 중에서
출판사서평
오늘 여기의 관람객을 위하여
미술관에 가면 수많은 그림만큼이나 다양한 뒷모습을 보게 된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또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러 경로와 매체를 통해 그림을 마주한다. 이것은 관람객이 그림을 본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림에 담긴 또 다른 인생을 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림에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그림에서도 인생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그림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더 보고 싶은 그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사조나 화법 같은 틀로 그림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다층적 그림들을 사조와 화법의 틀로만 본다면 정작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놓칠 수도 있다. 그만큼 감동의 여운도 짧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삶과 인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낸다. 그림을 이어 인생을 잇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의 눈으로
감상에도 다층적 시각이 필요하다. 작품의 경향에 따라서는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필요한 작품이 있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필요한 작품이 있다. 또한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이 필요한 작품도 있다. 이 책은 세 가지 ‘보기’마다 네 가지 이야기를 가진 여덟 가지 그림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에 확정 불변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탐독하다 보면 어느새 여러 눈으로 고르게 그림을 보고 취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창작자의 인지도나 표현의 선정성 등 기타 주변적 요소들에 가려서 그림이 보여 주는 어떤 것을 간과할 때가 있다. 따라서 그림은 ‘보이는 그대로 보기’가 중요하다. 반면에 그림에 따라서는 내 눈을 경계해야 할 때가 있다. 내 눈은 본질적 의미의 그림을 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감상의 열린 가능성을 위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나의 눈으로 보기’는 중요하다. 생생한 그림의 눈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것을 담는 나의 눈에 있는 것이다.
동서양의 그림에서 찾은 저마다의 인생
『더 보고 싶은 그림』은 동일한 소재 혹은 주제의 두 작품을 비교 감상하며 이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이어 본다. 결국 관람자가 그림을 보는 이유, 그림에서 얻는 것, 그림에서 더 보아야 하는 것은 사조나 화법이 아닌 오늘 여기의 삶과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감상하는 순간적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화가와 감상자가, 저자와 독자가, 예술과 대중이 삶을 전제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데에 의미가 있다.
신기하게도 감상자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유추해 본 이야기와 작가의 의도가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실제로는 화가의 의도나 주제와 전혀 다르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런 과정은 옳고 그름의 방법적 접근이 아니며, 그림 감상은 어떤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그림에 시선을 주고 마음을 주는 과정에 전율이 있다. 이처럼 그림은 창작자의 손이 아닌, 관찰하고 성찰하는 감상자의 눈과 마음속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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