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바람의 말」

2020. 4. 3. 20:36詩.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1965년 초여름,

박정희 정권이 비밀스럽게 추진하고 있던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번져나간다.

재경 문인들이 한일회담 반대 성명을 내자 신문마다 이 사건을 큼직하게 보도하고,

기사의 끝에는 서명 문인들의 이름이 실린다.

이 때 서명한 많은 문인이 정권으로부터 크고 작은 불이익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다.

박봉우는 서울신문사에서 쫓겨나고, 강위석은 한국은행에서 파면된다.

 

당시 공군사관학교 군의관으로 있던 마종기(馬鍾基, 1939~ )는

장교 통근 버스를 타려다가 공군 방첩대원에게 연행되어 어두운 취조실로 끌려간다.

‘군인사법 94조’, “군인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심문을 받은 것이다.

계급장, 혁대, 구두끈을 빼앗긴 채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며 조서를 쓰고 난 며칠 뒤

그는 쇠고랑을 차고 포승에 묶여 헌병에게 이끌려 11전투비행단 감방에 수용된다.

중앙정보부의 지시로 금고 2년형을 받게 되어 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감방에 들어간 지 열흘 만에 기소 유예로 풀려난다.

사관학교에 적을 두고 있던 마종기는 곧 수원비행단의 기지병원 내과 과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시인은 후배 의사 한 명과 을씨년스러운 하숙 생활을 하는데,

가끔 수원극장에서 「쉘부르의 우산」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 그나마 낙이었다.

시인은 이 무렵의 생활을 「연가 10」이라는 시 속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이렇게 어설픈 도시에서 하숙을 하는 밤에는 월트 디즈니의 만화 영화를 보자.

하숙이 허술해서 몽땅 도둑을 맞았으니 난로를 때는 이 극장이 격에 어울리지.

총천연색의 세상에서 나도 메뚜기가 되어 보면,

밖에는 눈이 그칠 새 없이 내리고 혼자 보고 혼자 오는 발이 시리다. //

 

도서관을 돌다가 무심결에 호흡기 내과 책 한 권을 뽑았더니,

겉장에는 알 케이 알렉산드리아의 사인이 있고

철필로 쓴―보스턴, 메사추세츠, 1879년 8월 2일.

1879년 8월 2일은 날씨가 흐렸다. 흐려진 철필 글씨,

무덤 속에 있는 내과 의사 알렉산드리아 씨(氏)의 손자국을 유심히 본다.

1966년을 내 책에 기입하고 나도 훌륭한 내과 의사가 될 것이다. //

 

현관이 있는 집을 가지면 소리 은은한 초인종을 달고, 쓸쓸한 친구를 맞으려고 했었지.

파란 항공 엽서로는 편지를 쓰면서 겨울을 사랑하고,

테 없는 안경을 끼고 수염을 조금만 키운 뒤,

조용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헤세의 아우구스투스를 읽으려고 했었지.

이제 당신은 알고 말았군.

길어야 6개월의 대화만이 남은 것, 6개월의 사랑, 6개월의 세상, 6개월의 저녁을,

그리고 나에게 남은 6개월의 상심을, 6개월의 눈물을 알고 말았군.

               

마종기, 「연가 10」, 『마종기 시 전집』(문학과지성사, 1999) 
 
 
 
유랑을 제 운명으로 수락한 사람의 이주민 의식과 귀소 의식을 아울러 보여주는 마종기
유랑을 제 운명으로 수락한 사람의 이주민 의식과 귀소 의식을 아울러 보여주는 마종기

1997년 이탈리아 베니스의 곤돌라에서

                                      

 

마종기는 1939년 1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아버지 마해송(馬海松)과 어머니 박외선(朴外仙)의 맏아들로 태어난다.

마해송은 동화 작가이자 일본의 월간지『文藝春秋』의 초대 편집장을 거쳐 잡지 『모던니혼』의 사장으로,

어머니 박외선은 일본 외국어전문대학을 거쳐 서양 무용가로 활동하다가 결혼한다.

1944년 가족이 모두 귀국해 개성에 정착하는데, 마종기는 이듬해에 개성의 만월국민학교에 입학한다.

1947년 가족이 모두 서울 종로구 명륜동3가로 이사하고,

그는 혜화국민학교 3학년에 편입한다. 그의 가족은 여기서 1965년까지 거주한다.

1950년 봄 6학년이 된 마종기는 교내 신문에 처음으로 동시를 발표한다.

곧 6·25가 터지자 마산으로 피난가서 그 곳의 월영국민학교에 편입한 그는 같은 학교를 졸업한다.

서울로 돌아온 뒤 서울중학교 2학년 때 그는 평생의 지기가 되는 시인 황동규를 만난다.

같은 해 마종기는 제1회 ‘학원 문학상’에 산문을 응모해 입상하기도 한다.

1954년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문예반 지도 교사로 있던 시인 조병화를 만난다.

 문과반 학생이던 그는 고교 졸업 무렵에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꿔

무시험 특차 전형으로 연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한다.

의예과에 들어간 뒤에도 ‘연세문우회’에 가입해 습작에 열을 올리던 그는

1959년 1월 박두진의 추천으로『현대문학』에 「해부학 교실」을 선보인다.

마종기는 이듬해인 1960년 2월 『현대문학』에 「돌」을 발표하며 완료 추천을 받고 시인으로 문단에 나온다.

 

 

 

1963년 공군 군의관 시절, 아버지 마해송과 함께

1963년 공군 군의관 시절, 아버지 마해송과 함께

 

 

마종기가 등단 무렵에 쓴 시에는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유랑 의식이 어른거린다.

삶의 근거지를 미국으로 옮긴 뒤 그의 시에는 유랑 의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데,

그것은 이국의 삶에서 비롯된 정착에 대한 그리움, 삶은 영원한 떠돎이라는 두 명제 사이를 오간다.

등단한 해에 그는 친구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첫 시집 『조용한 개선』을 펴낸다.

이 시집에는 10대에 쓴 동시, 연세춘추』에 발표한 산문인 「현대시를 진단한다」등단 전후에 쓴 시 등이 실려 있다.

박두진의 서문과 장욱진의 펜화가 들어 있는 이 시집은 호화로운 양장에 은박 글씨가 박힌 예쁜 책이었다.

 

 

 

10대에 쓴 동시와 등단 무렵에 쓴 시와 산문 등이 실린 마종기의 첫 시집 〈조용한 개선〉

 

 

1963년 마종기는 연세대 의예과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공군에서 복무하기 시작한다.

그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선배 시인 김수영으로부터 “의학을 문학에 접목시켜보라.

문단에 섞일 생각 마라. 나는 너를 열심히 지켜본다.”는 내용의 인상적인 충고를 듣는다.

마종기는 의학 공부를 하며 많은 주검과 마주친 경험을 바탕으로

때묻지 않은 젊음의 치열한 자기 극복 의지를 시 속에 녹여낸다.

 

西向의 한 병실에 불이 꺼지고 /

어두운 겨울 그림자 /

낮은 산을 넘어서면 //

 

부검실은 차운 벽돌, /

뼈를 톱질하는 소리로 울려도 /

이것은 피날레가 아니다. //

 

나는 처음 해부학에서 /

자연스런 생명을 배웠다. /

거기에 추위가 왔다. //

 

막막한 청춘의 잠자리에서 /

나는 자주 사형 선고를 받았다. /

남은 시간의 화려한 현기증. //

 

들리니, 포기한 키 큰 사내의 /

쓸쓸한 임종. /

들리니, 이것은 피날레가 아니다.

               

마종기, 「임종」, 『조용한 개선』(부민문화사, 1960) 
 

외국 생활 외에도 의사라는 직업과

음악 · 무용 · 미술 등에 대한 취미와 교양은 마종기 시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룬다.

특히 인간의 죽음과 자주 부딪쳐야만 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그에게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비애 또는 연민과 함께 존재에 대한 심원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마종기의 시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과 관련된 고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의학의 길에 들어서고 나서 겪은 일과 관련된 진술이 많이 흘러나온다.

「해부학 교실」 · 「정신과 병동」 · 「제3강의실」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런 시에서 수련의 시절에 거친 의료 수업,

특히 해부학 실습은 자아 단련이라는 면에서도 엄청난 경험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당신이 살았을 때 /

말하고 웃을 때 /

나는 몸에 큰 가운을 입고 /

김치 생각을 했다. /

 

당신이 살았을 때 /

블론드의 애인 사진을 자랑할 때 /

나는 어머니 생각을 했다. /

 

당신이 죽었을 때 /

6척 창 밖에는 새벽이 서서 작별하고 /

나는 1분간의 검진으로 /

죽음을 확인한다. /

 

인생은 모르고 지내다 /

돌려주는 것. /

 

밤새 비 오다 그친 병원 뜰 /

윤기 있는 나무 한 그루, /

문득 돌아서서 당신을 본다.

 

               

마종기, 「증례(證例) 1」, 『그리고 평화한 시대가』(지식산업사, 1982) 

 

  

마종기는 많은 시편을 의학 공부 과정과 의사 체험에서 길어올린다.

그의 초기 시들은 혹독한 의학 공부를 하면서 마주친 죽음과 고독을 주로 다룬다.

의사로서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허무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아주 절망하지는 않고 그 체험을 생명에 대한 따뜻한 사랑으로 감싼다.

 

그의 시는 해맑은 분위기, 동심과 같은 순수함, 단정한 시어로 빚어진 것이 적지 않으나,

이런 경우에도 죽음이라는 시적 대상과 소재가 도처에 널려 있기 일쑤다.

정과리에 따르면 시인의 “의사 체험은 간단히 말해, 죽음의 상시적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체험은 단일한 체험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심상을 유발하는 복합적 체험이다.

그것은 죽음(과 생)의 관리자로서의 체험이자, 죽음의 목격자로서의 체험이며,

또한, 유한자의 비애에 대한 체험이다.”각주1)

 

1966년 마종기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공군 군의관 만기 명예 제대를 한 뒤  돌연 미국 오하이오에 있는 한 병원의 인턴으로 가버린다.

그의 이런 결정은 앞서 한일회담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방첩대에 끌려가 모진 심문을 받고

열흘 동안 군 감옥에 갇혀 군사 독재 정권의 폭력성을 체험한 것과 관련이 있을 성싶다.

 

 

곰팡이 냄새 심하던 철창의 감방은 좁고 무더웠다. /

보리밥 한 덩어리 받아먹고 배 아파하며 /

집총한 군인의 시끄러운 취침 점호를 받으면서도 /

깊은 밤이 되면 감방을 탈출하는 꿈을 꾸었다. /

시끄러운 물새도 없고 꽃도 피지 않는 섬. //

 

바다는 물살이 잔잔한 초록색과 은색이었다. /

군의관 계급장도 빼앗기고 수염은 꺼칠하게 자라고 /

자살 방지라고 혁대도 구두끈도 다 빼앗긴 채 /

곤욕으로 무거운 20대의 몸과 발을 끌면서 /

나는 그 바다에 누워 눈감고 세월을 보내고 싶었다. //

 

면회 온 친구들이 내 몰골에 놀라서 울고 나갈 때, /

동지여, 지지 말고 영웅이 되라고 충고해줄 때, /

탈출과 망명의 비밀을 입 안 깊숙이 감추고 /

나는 기어코 그 섬에 가리라고 결심했었다. /

이기고 지는 것이 없는 섬, 영웅이 없는 그 섬.

 

               

- 마종기, 「섬」, 『이슬의 눈』(문학과지성사, 1997) 
 

그 때의 기억을 시인은 뒷날 「섬」이라는 시에서 이처럼 되새긴다.

그의 미국행은

 ‘감옥’과 같은 이 땅의 숨막히는 정치 상황으로부터 “탈출과 망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외국 생활을 시작한 이래

그의 시에는 저절로 이주민 의식이 배어들게 된다.

마종기는 1968년에 황동규 · 김영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 1』을,

1972년에 『평균율 2』를 간행한다.

1969년에 진단방사선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뒤로 그는 의대 교수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1975년에는 오하이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생들에 의해 ‘올해의 교수’로 뽑혀 ‘골든 애플상’을 받기도 한다.

1976년 마종기는 세 번째 시집 『변경의 꽃』을 펴낸다.

이 시집에서 그는 이국에서 살아가는 이의 떠돌이 의식, 조국에 대한 처연한 그리움 등을 노래한다.

『변경의 꽃』은 이국살이를 하는 시인에게 ‘한국 문학 작가상’을 안겨준다.

 

 

 

 

 

마종기는 1980년에 들어 네 번째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내놓는다.

이 때쯤 되면 그는 향수의 열기와 체관주의의 담담함으로 받쳐지고 있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차분하게 응시하는 쪽으로 기울어간다.

이 시집에 실린 「대화」에서 그는 외국에서 사는 일의 쓸쓸함과 모국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는다.

 

 

아빠는 아빠 나라로 갈거야? /

아무래도 그쪽이 내게는 정답지. /

여기서는 재미없었어? /

재미도 있었지. /

근데 왜 가려구? /

아무래도 쓸쓸할 것 같애. /

죽어두 쓸쓸한 게 있어? /

마찬가지야. 어두워. /

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 /

아빠 나라니까. /

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 /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

돌아가셨잖아? /

계시니까. /

그것뿐이야? /

친구도 있으니까. /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

기억도 못 해주는 친구는 뭐해? /

내가 사랑하니까. /

사랑은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

시가 불이야? /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

 

―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눈사람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 3. 대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문학과지성사, 1980) 

 

  

 

 

시인은 제 상처를 들여다보듯 유랑의 운명적 수락이 낳은 이주민 의식을 관조한다.

그는 이런 것을 더 발전시켜 이민의 삶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한국인의 보편적 삶에 대한 성찰로 넓혀간다.

 

1986년에 이르러 이민의 삶에 달라붙는 피할 수 없는 고뇌와 갈등,

중산층으로서의 자기 삶에 대한 반성 등을 담은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내는 것이다.

이 시집에 드러난 시인의 삶은

“한여름 냉방 장치의 응접실에서” “안락한 외제 소파에 틀고 앉아” 동학 전기를 읽는 삶이다.

몸은 안정된 수입을 가진 의사가 누리는 안락한 삶 속에 있지만,

의식은 고통스러운 근대 역사 속을 헤매며 불편스러워한다.

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지만,

충분히 안락을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반성하는 의식 때문에 그는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나는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내가 떠나온 조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 안에서 사는 대다수의 사람은 편안하지 않다는 의식에서 온다.

 

 

 

 

 

 

1991년에 시집 『그 나라 하늘빛』을 내놓은 마종기는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뒤 1997년에 시집 『이슬의 눈』을 펴낸다.

 

며칠 전에는 네 묘지 근처에 /

내가 묻힐 작은 터를 미리 샀다. /

가슴 펴고 고국에 묻히고 싶기야 /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이었지만 /

혹시 나도 그 소원 이룰 수 없다면 /

차라리 네 근처가 나을 것 같아서. /

책을 읽든, 술을 마시든, /

아니면 그냥 싱겁게 싱글거리든, /

다시 한번 네 가까이에 살고 싶어서.

               

- 마종기, 「허술하고 짧은 탄식」, 『이슬의 눈』(문학과지성사, 1977) 
 
 
  

 

 

아들 이야기를 쓴 『그 나라 하늘빛』에서부터

마종기는 아버지 · 어머니 · 아들 등 육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드러내는데,

동생을 잃은 충격과 설움을 노래한 『이슬의 눈』에서 그 고통과 절망은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이 세상 속의 많은 것을 따스하게 보듬고

이로부터 생겨나는 고통과 절망을 피하지 않으며 일상인의 체험을 단정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것을 넘어선 초연한 분위기, 무욕의 세계가 시를 감싼다.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시에서 이슬은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의 지혜를 말한다.

이내 그의 시에는 지상의 현세적 삶에만 집착하지 말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위도 보”면서 진리, 초월적 신성을 생각하라는 권유가 담기게 된다.

시인은 『이슬의 눈』으로 ‘편운 문학상’과 ‘이산 문학상’을 잇달아 받는다.

 

 

마종기의 시는 흔히 밝고 투명하다.

그의 쉽고 순진한 언어들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아프다.”는 전언을 실어 나른다.

주어진 삶의 조건을 거부하고 “탈출과 망명”의 길에 나선 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유랑의 삶이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그 유랑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이주민 의식이며,

이는 곧 귀소 의식으로 발전한다.

그의 몸은 미국 중산층의 안락함 속에 있지만,

그 중산층의 삶이 보장하는 안정과 평화가 저 무의식 속에서 끝내 소용돌이치는 귀소 의식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시인은 제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편린, 이를테면 유년 시절, 음식, 거리, 햇빛, 산하를 떠올리고 되씹는다.

이런 쏠림은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그도 이제 고달픈 유랑을 끝내고

나고 자란 삶의 본디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무의식의 신호일 것이다.

 

 

 

 

 

참고문헌

      • ・ 정과리 엮음, 『마종기 깊이 읽기』, 문학과지성사, 1999
      • ・ 김현, 「유랑민의 꿈」,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해설, 문학과지성사, 1986
      • ・ 성민엽, 「유랑민, 중산층의 삶」, 『월간조선』 1986. 12.
      • ・ 오생근, 「한 자유주의자의 떠남과 돌아옴」, 『이슬의 눈』 해설, 문학과지성사, 1997
      • ・ 김주연, 「동심과 달관 ― 마종기 옛 시를 읽으며」, 『조용한 개선』 해설, 문학동네, 1996
      • ・ 조남현, 「1980년의 시와 시인 ― 마종기론」, 『심상』 1980. 12.
      • ・ 하응백, 「생수에서 강으로」, 『동서문학』 1998 가을

 

장석주 집필자 소개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그 뒤 동덕여..펼쳐보기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그 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 명지전문대 등에서 강의하며,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EBS와 국악방송 등에서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프로그램 진행자로, KBS 1TV 'TV-책을 말하다‘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그 뒤 동덕여..

 

 

출처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 저자 장석주 | cp명시공사 도서 소개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