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한트케, 「아이의 노래 」外

2020. 10. 20. 17:45詩.

 

 

 

 

유년기의 노래

─ 페터 한트케 지음

 


그가 아이였을 때
그 아이는 두 팔을 흔들며 걸었지.
걸으면서 생각했지.
시냇물이 강물이 되면 좋을 거야.
강물이 폭포가 되면 좋을 거야.
진흙탕물이 바다가 되면 좋을 거야.


그가 아이였을 때
자기가 아이라는 것을 몰랐지.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었고
모든 영혼들은 하나였었지.

그가 아이였을 때
그는 어떤 의견도 없었고
습관도 없었지.
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도
느닷없이 뛰쳐나가곤 했지.
머리칼은 멋대로 뻗쳐있었고
사진 찍을 때 억지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

그가 아이였을 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지.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닌 거지?
왜 나는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지?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지? 우주는 어디가 끝이지?
지금 내가 사는 것은 그냥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들이
진짜 세상이 아니고 착각은 아닐까?
사람들은 왜 惡을 저지르지?
惡은 진짜 존재하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지금의 내가 없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지금의 내가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온다는 게 말이 되나?

그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 콩, 밥이 목을 메이게 하곤 했지.
이제 어른이 되어서 누가 먹으라고 시키진 않지만
그는 지금도 이런 것들을 먹고 있지.

그가 아이였을 때
그는 한밤중에 깨어 잠자리를 낯설어 하곤 했었지.
지금도 그는 계속 이러고 있지.
아이였을 때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 많았지.
지금도 운이 좋으면 몇몇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긴 하지만.

천국을 뚜렷이 그려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고
無는 전혀 생각할 수 없고
無를 생각하면 진저리를 치곤하지.

그가 아이였을 때
정말 신나게 놀곤 했지.
지금도 그때처럼 마음이 들뜨기도 하나
생업과 관련해서만 그렇지.

그가 아이였을 때
사과 하나 빵 한 덩이면 충분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그가 아이였을 때
열매들을 손에 가득 움켜쥐곤 했지.
그건 지금도 그렇지만.
갓 따낸 호두를 깨물면 혀끝에 떫은맛을 느꼈는데
그건 지금도 그렇지.
산에만 오르면 더 높은 산에 올라봤으면
도시를 보면 더 큰 도시에 가봤으면
했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나무 꼭대기에 있는 열매를 따려고 발돋움을 하곤 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낯선 사람을 보면 수줍음을 탔었는데
그건 지금도 그래.
겨울이면 첫눈을 기다리곤 했는데
그건 지금도 그렇지.

그가 아이였을 때
뾰족한 작대기를 창처럼 던져 나무에 꽂곤 했지.
그 작대기는 지금도 나무에 꽂힌 채 바르르 떨고 있지.




출처: https://cocomarilyn.tistory.com/662 [CocoMaril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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