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詩, 「석양(夕陽)」外
2020. 2. 7. 09:07ㆍ詩.
놀(夕陽) - 이외수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 그림자 지는 풍경 속에 배 한 척을 띄우고 복받치는 울음 삼키며 뼛가루를 뿌리고 있다 살아있는 날들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사랑하랴 나도 언젠가는 서산머리 불타는 놀 속에 영혼을 눕히리니 가슴에 못다한 말들이 남아있어 더러는 저녁강에 잘디잔 물비늘로 되살아나서 안타까이 그대 이름 불러도 알지 못하리 걸음마다 이별이 기다리고 이별 끝에 저 하늘도 놀이 지나니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난 이외수를 보면 이동원이 떠올라서...... |
더 깊은 눈물 속으로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해체되고 있다 12월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라하 회개하라 폭석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이외수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겨울비 이외수 모르겠어 과거로 돌아가는 터널이 어디 있는지 흐린 기억의 벌판 어디쯤 아직도 매장되지 않는 추억의 살점 한 조각 유기 되어 있는지 저물녘 행선지도 없이 떠도는 거리 늑골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모르겠어 돌아보면 폐쇄된 시간의 건널목 왜 그대 이름 아직도 날카로운 비수로 박히는지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 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해체되고 있다. 봄날은 간다 이외수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 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 새 유채꽃 한 바지게 짊어지고 저기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봄밤의 회상 이외수 밤 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설야 이외수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며 눈이 내린다는 말 한마디 어디선가 나귀등에 몽상의 봇짐을 싣고 나그네 하나 떠나가는지 방울소리 들리는데 창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함박눈만 쌓여라 숨죽인 새벽 두 시 생각나느니 그리운 이여 나는 무슨 이유로 전생의 어느 호젓한 길섶에 그대를 두고 떠나왔던가 오늘밤엔 기다리며 기다리며 간직해 둔 그대 말씀 자욱한 눈송이로 내리는데 이제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울고 싶다는 말 한마디 이미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한 생애가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 시간 누구든 홀로 깨어있음으로 소중한 이여 보라 그대 외롭고 그립다던 나날 속에 저리도 자욱히 내리는 눈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 하나 그대 전생까지 닿아 있음을 달 아래 홀로 술 들며 이백 꽃 속에 술단지 마주놓고 짝 없이 혼자서 술잔 드네 밝은 달 잔 속에 맞이하니 달과 나와 그림자 셋이어라 달은 본시 술 못하고, 그림자는 건성으로 떠돌지만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동반하고 모름지기 봄철 한때 즐기고져.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대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는 흔들대네 깨어서는 함께 어울려 놀고 취해서는 각자 흩어져 가세 영원히 엉킴없는 교유맺고저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리 이외수 시인 *1946년 경남 함양 출생 *춘천 교육대학 중퇴 *1972년 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어린이들>이 당선, 문단 등단 *1975년 1975년 중편소설 <훈장>으로 [세대]지의 신인문학상 수상 *단편<꽃과 사냥꾼> <고수> <개미귀신> <자객열전> <틈> *중편 <장수 하늘소> 장편<꿈꾸는 식물> <들개> <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산문집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감성사전>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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