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8. 20:18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트레킹 열 여섯 째날
드디어 오늘 치러야 할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난롯가에서 차를 마시며 쉬는 평화의 시간이 돌아왔어.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어.
척박한 환경에서 캠프들을 설치하느라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을 너희들에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자니
왠지 어리광을 피우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찜찜해. 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긴 하루였어.
새벽 6시에 일어나 우선 뒷산을 올랐어.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짧은 구간이었지만 어쨌든 새벽 운동(!)을 했지.
아침 먹고 출발은 가뿐하게 했는데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잖아.
1시간 40분에 걸쳐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막 끝까지 오르니 바로 4610 미터의 라우레비나 패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이제는 내리막이다. 신난다’ 환호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지.
중간에 찻집에서 만난 독일 아저씨들과 이스라엘 친구들이 이 큰 배낭을 메고 혼자서 걷는 내가 대단하다고 마구 치켜세우는 거야.
“대단하긴요. 힘들어서 헉헉대며 다니는데요, 뭘” 이라며 짐짓 겸손한 척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김남희, 정말 대단해. 이 배낭 메고 4600 미터 고개를 넘었으니 훌륭하지,
암 훌륭하고 말고'라며 자화자찬을 마구 남발하고 있었어.
패디(Phedi 3630m)에서 점심 먹을 때까지는 계속 내리막인데다가, 날도 흐리기만 해서 괜찮았어.
패디에서 곱테(Ghopte 3430m)로 이어지는 길을 내가 왜 내리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 그것도 바위투성이의 길.
배낭은 무거운데, 신발은 발목 보호가 안 되지, 길은 바위투성이….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하면서 무릎이 아파 오는 거야.
불행은 홀로 오는 법이 없다더니, 우박까지 쏟아지고….
정말 새끼손톱만 한 얼음 덩어리들이 사정없이 떨어지는데, 30분만에 흠뻑 젖었지 뭐.
오죽했으면 큰 바위 밑에 들어가 우박이 그칠 때까지 피할 생각까지 했겠어.
‘언제 그칠 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젖은 거 그냥 걷자‘ 하고 계속 걸었더니 곱테에 도착해서야 우박이 그치네.
오늘 걸은 시간은 총 여섯 시간.
타레파티까지 두 시간을 더 갈까 하다가 그냥 이곳에 머물기로 결심했어.
어제 머물렀던 곳처럼 이 집도 영어를 못하는 부모를 대신해 겨우 초등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이 손님을 상대해.
(돈도 받고, 주문도 받고, 음식도 나르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별로 아이들 같지가 않아.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 가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눈동자가 순진함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눈이 아니야.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 거침이 없고. 그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마음이 서글픈지….
하지만 또 한국의 아이들이라고 낫다고 할 수도 없잖아?
어린 나이부터 온갖 학원에 시달리며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니.
아이들이 아이답게 밝게 웃으며 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 고사인 쿤드 수면에 비친 산.
ⓒ2004 김남희
큰일이다, 오른쪽 무릎이 계속 쑤셔대고 있으니. 왼쪽은 아무렇지 않은데 왜 오른쪽만 그런 걸까?
내가 배낭을 ‘우편향’으로 싼 걸까?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인데 좀 걱정이 되네.
이제 슬슬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어.
요즘 내 취침 시간은 7시 전후가 되고 있어. 좀 심한가? 다들 좋은 꿈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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