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8. 20:11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 2>
히말라야에서 쓰는 편지
▲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울라기리의 일출
ⓒ2004 김남희
안나푸르나 등산로에서 전망이 빼어나기로 손꼽히는 푼힐(Poon Hill, 3210m)로 가는 마을인 고라파니(3194m)에서 다시 소식을 전합니다.
이곳은 공산혁명을 꿈꾸는 '마오이스트'들의 세력이 득세하는 곳입니다.
총을 든 마오이스트들은 밤마다 게스트 하우스 문을 두드려 관광객들에게 ‘기부’를 요구하고는 합니다.
일인당 1000~2000루피(1만7000원~3만4000원)의 미리 정해진 액수를 알려 주고 돈을 받은 후,
공산국가를 건설하면 돌려 주겠다며 정중히 영수증까지 써 주는 그들을 보노라면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됩니다.
여행자들 사이에는 마오이스트들과 관련된 우스운 이야기들이 떠돕니다.
한 용감한 미국인이 "이건 기부가 아니라 강제 요구이므로 나는 못 내겠다"고 덤볐다가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 맞았다는 이야기,
한 한국인이 1000루피 기부를 요구받았으나 500루피는 현금으로 나머지는 가지고 있던 비상약품으로 기부한 후
기념 촬영까지 함께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가장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독일인 여행자가 주인공입니다.
여행 경비가 다 떨어져 낼 돈이 없던 이 독일인이 상황 설명을 하자(고라파니는 이 트레킹의 거의 끝지점입니다)
마오이스트들은 "네 짐을 뒤져서 돈이 나오면 그 돈은 우리가 다 갖겠다"고 한 후 짐을 뒤졌다고 합니다.
장시간의 꼼꼼한 수색에도 돈이 나오지 않자 이 마오이스트는 경비에 보태라며 20달러를 독일인 손에 쥐어 주고 돌아섰다고 합니다.
관광객에게 기부 이상을 절대 요구하지 않는 이 예의바른(?) 마오이스트들과의 대면을 반쯤은 기다리는 여행자들도 있습니다.
▲ 저녁 햇살을 받고 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고라파니
ⓒ2004 김남희
산길을 걷다 보면 종종 “미 제국주의에 죽음을! 왕정 폐지! 왕실 군대 해체!”등의 격문이 쓰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닌 나라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네팔 왕정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했으며 대다수의 국민이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네팔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카트만두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마오이스트들이 주동한 사흘간의 파업이 시작됐을 때, 놀랍게도 파업 참가율은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시내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버스와 택시마저 전면 운행을 중지했습니다.
멋모르던 저는 파업 참가율이 이 정도로 높다면 마오이스트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함부로 가게 문을 열었다가는 폭탄 세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던 거였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에게도 다른 사회를 꿈꾸며 이념을 목숨처럼 받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에 급급한 자유주의자이자일 뿐이었던 저에게, 제도와 이념에 매달리던 선배들은 낯설었습니다.
어떤 제도나 이념도 인간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고 믿던 저에게는 그 이념의 과격성과 단순함이 불편했던 거지요.
수많은 다양성의 집합체인 인간을 한 집단으로 묶고 한 가지 사상과 제도를 강요한다는 그 발상이
제게는 군부독재의 억압만큼이나 갑갑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기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늘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저에게는 인간의 본성과 가장 어긋나는 제도가 공산주의 같았던 거지요.
그래서 혁명의 가능성을 믿고, 체 게바라의 삶을 꿈꾸던 시절의 끝자락에 저는 늘 위태롭게 한 발만을 걸치고 있었던 거지요.
▲ 짐을 실은 당나귀들이 촘롱의 긴 돌계단을 오르고 있다.
ⓒ2004 김남희
저는 믿습니다. 증오와 폭력과 미움보다 강한 것은 사랑과 연민임을.
모든 것을 부수는 힘보다 위대한 것은 적마저 끌어안고 나가는 간디의 사랑이라고,
그것은 느리고 고된 길이나 인간을 정녕 위대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 이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결국 그 느리고 고된 길이 우리의 대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진정 위대한 영혼은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니라 바로 간디임을 이곳 안나의 산길에서 다시 깨닫습니다.
마침 이곳에서 제가 읽고 있는 책은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입니다.
당신도 청춘의 시절에 읽었을 책이겠지요?
이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책의 주인공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교조적이어서
그들의 위대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울림을 주지 못합니다.
어쩌면 혁명의 가능성이 사라진 시대에 읽고 있기에 그들의 삶이 구체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당신이 속세와 동떨어진 산 속의 무릉도원을 찾아 안나로 온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곳이 다 그러하듯 네팔의 깊은 산 속에도 인간의 고뇌와 땀이 없는 무릉도원은 없습니다.
베이스 캠프에서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촘롱에서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프랑스인 아저씨 장 피엘.
발리와 인도네시아에서 직물을 사서 프랑스에서 판매하는 게 직업입니다.
5월에서 9월까지 열리는 해변의 아침 시장에서 직물을 팔고, 두 달은 발리에서 천을 구입하고 디자인을 하며 보냅니다.
일년에 겨우 6개월 일해서 충분한 돈이 되느냐고 물으니 충분하다고 대답합니다.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부는 충분한 시간과 여행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합니다.
▲ 단체 관광객들이 닐기리와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고라파니 가는 길
ⓒ2004 김남희
장의 친구 중에 그의 소개로 같은 일을 하게 된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업이 번창해 가게도 두 개나 열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돈 버는 데만 전력하다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지금은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덜 갖되 더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임을 장 아저씨를 보며 다시 깨닫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여행은 인생이라는 차의 엔진과 같은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저는 지금 최고의 마력을 자랑하는 엔진을 장착한 거겠지요?
이곳의 길들은 해마다 산사태로 몇 번씩 무너져 내리고는 합니다.
촘롱에서 고라파니로 가는 길도 며칠전 대형 산사태가 일어나 길이 끊겼습니다.
저녁 무렵 동네 사람들이 북과 오르간과 탬버린을 들고 숙소의 마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무너진 다리와 산사태로 끊긴 길을 복구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한 공연이 두 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들꽃을 엮어 만들어 온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춤과 노래를 구경하고,
우리도 끌려나가 다함께 네팔 춤을 추며 밤이 늦도록 어울렸습니다.
11시가 되어서야 방으로 올라왔으니 단연 트레킹 역사상 가장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기록입니다.
촘롱을 떠나 산길을 우회해 고라파니로 왔습니다.
푼힐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묶습니다.
오늘 숙소의 문을 두드리는 밤손님은 없습니다.
저녁을 먹고 별을 보러 마당으로 나가니 까만 밤하늘의 반달과 별도 좋지만, 뺨에 와 닿는 바람이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상쾌합니다.
이 가볍고 서늘한 바람의 감촉.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눈 쌓인 설산.
문득 "난 참 행복해"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밤입니다.
▲ 저녁 햇살을 받고 있는 마차푸차레
ⓒ2004 김남희
‘진보란 삶의 단순화’라고 누군가 그랬지요?
제게 있어 삶의 행복은 이렇게 단순하고 사소한 것들로 다가옵니다.
이 먼 길 위에 오르기를 잘 했음을,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임을, 이곳에서 날마다 깨닫는 중입니다.
푼힐에서 보는 해돋이는 장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촘촘한 햇살이 조금씩 다울라기리(8167m)를 비추는 모습, 어둠에 젖은 산들이 빛의 그물에 걸려 잠을 깨는 모습이 아름다울 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의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올라온 여행자들의 붉은 뺨이 어여쁩니다.
열흘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호숫가의 작은 도시 포카라에서 열흘을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매일 호숫가를 걷고,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오후, 길가의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한 보석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야크 뿔로 만든 각기 다른 모양의 목걸이들이 눈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태양 모양의 목걸이를 보여주며 태양은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성공을 상징한다고 설명하는 주인에게,
사소한 일에 토 달기를 좋아하는 버릇을 끊지 못한 제가 반문했지요.
▲ 프랑스인 장 미셀이 부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은 히운 출리와 안나푸르나 사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촘롱
ⓒ2004 김남희
“하지만 태양은 지기도 하는데요!”
보석 가게 주인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건 우리들 삶도 마차가지지.
결국에는 인생도 다 지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니까.”
언젠가는 지고 말 삶의 길에서 뭘 얻겠다고 그리 멀리 가느냐고 당신이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렵니다.
부처도 사문 밖을 나서 보리수 아래서 수행한 후에야 깨달음을 얻었고,
예수도 광야에서 헤매며 40일간 기도한 후에야 가르침을 얻었다고.
하물며 범부일 뿐인 어리석은 저야 안에서 구하지 못해 오늘도 밖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낯선 거리에서, 깊은 산길에서 만나는 다 다르면서도 같은 얼굴들.
결국 그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건 제 자신임을 당신도 알겠지요?
생의 모든 길이 그러하듯 길 위의 길 역시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이겠지요.
당신의 일상, 내내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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