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 11:00ㆍ산행기 & 국내여행
서울서 친구들 모임이 있었거든. 좀 일찍 올라가서 북촌 근방을 돌아봤지.
북촌8경을 순서대로 보자며 계획했던 게, 웬 걸?
몇 발짝 떼자마자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더군.
백 칸 집으로, 북촌에서 제일 크다는 백인제 가옥이나 제대로 보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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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사는 주민 입장에서는 최악이겠더군.
백인제 가옥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입니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여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면에서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을 사용하여 지어진 백인제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사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먼자,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안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입니다.
백인제 가옥은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등을 거쳐 1944년 백인제 선생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한성은행이 소유했던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유자인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부호로 1932년 27세의 나이로 중앙일보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1944년 이후에는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이 소유하였으며,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 2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11월 30일 서울시에서 구매하여 2015년 11월에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 ※ 한상룡 1913. 7 - 1928. 7 / 최선익 1935. 1 - 1944. 8 / 백인제 1944. 9 - 1968. / 최경진 1968 - 1988. 8 / 서울특별시 2009. 11. 30 )
화장실도 폼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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