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0. 20:47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상춘야흥(賞春野興) - 지본담채 35.6×28.2cm 간송미술관 소장 (혜원전신첩 중에서) "무르익은 봄날 야외에서 여흥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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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1758~?)의 작품입니다.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긍재 김득신(1754~1822)을 꼽습니다. 김득신은 3대화가로 꼽히기는 했지만 거의 단원의 그림에 의존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단원은 풍속화를 그릴 때 대부분 배경을 생략했는데, 김득신은 단원의 이미지에다 배경을 집어넣은 정도에 불과하지요.
정황이 의문의 여지 없이 그대로 다 들어옵니다.
자, 이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혜원의 그림의 특징은 세련된 필치입니다. 붓 지나간 자취, 그 필력이 이렇게 세련되었어요. 선 하나하나가 날렵하고 능숙합니다. 붓이 더듬거나 멈칫한 른적이 없어요. 이미 머릿속에 설계된대로 붓리 따라 움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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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정확한 묘사입니다. 그림을 보면 앉은 기생의 오른편에 사내가 바닥에 손을 짚고 있습니다. 유심히 살피니 장침에 소맷자락이 걸려서 올라가고 팔뚝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까지 정말 정확히 묘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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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요즘 말로 하면 도회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그림치고는 묘사와 감각, 필치에 전혀 촌티가 흐르지 않습니다. 18세기에 이런 화가가 있었다니, 그야말로 조선 후기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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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풍속화는 보는 순간 그림의 의미나 상황 ·정황이 의문의 여지 없이 그대로 다 들어옵니다. 그런데 혜원은 화면 연출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등장인물들의 스타일이나 동선, 행태가 마치 연국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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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 나아가서 혜원의 그림에는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상춘야흥>을 볼까요? 이 날 모임을 주재한 호스트는 가운데 장침에 기대앉은 양반입니다. 이 분들의 신분은 도포나 전복 위에 허리끈으로 사용된 세조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양 끝에 술이 달려 있고 품계에 따라 색을 달리 했습니다. 세조대가 붉은 색이면 정3품 이성입니다. 조정에서 정사를 볼 때 대청에 올라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정3품 上 이상의 당상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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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갓끈이 다릅니다. 왼쪽 분은 묶었고, 가운데 분은 풀려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묶인 갓끈은 비단으로만든 것이고, 딱딱해 보이는 것은 호박으로 만든 갓끈입니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쥘부채를 쥐고 있는 왼쪽 양반보다는 가운데 양반이 조금 윗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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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에 악공 세 사람이 있습니다. 거문고, 해금, 대금입니다. 기녀가 두 명이곻, 주안상을 들고 나오는 시비가 작게 그려져 있군요. 그런데 오른편의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두 양 반이 속해 있는 관의 관속들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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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거문고 악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두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비도 상을 들고 오다가 이 악공을 바라봅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두 기녀와 대금을 부는 악공입니다.
두 기녀는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표정입니다. 삼회장 저고리를 입고 있는 오른쪽 기녀가 등급이 높은 기녀입니다. 그러니까 등급이 낮은 기녀가 옆 기녀의 눈치를 보거나 같은 여성으로서 경계를 하거나, 그런 정황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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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문고 연주자를 볼까요?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로 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합니다. 어떤 일이 벙러진 걸까요?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
예전에 국악을 전공하신 분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설명에 따르면, 이 연주자가 상당한 고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순간 거문고 명인 가락에 빠져서 이렇게 주시하는 장면이랍니다.
그런데 또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악공이 너무 열심히 탄주하다가 줄 하나가 탕 끊어졌다는 거예요. 순간 전부 '아차, 저걸 어째?'하면서 바라보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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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시, 오른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누구냐? 거문고 악공에 대한 앞의 두 견해에 동의한다면, 이 두 사람은 복색으로 보건대 다음 연주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다른 악사들입니다. 주머니 차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복색이 앉아서 연주하는 세 악공과 똑같습니다. 이 두 사람이 노래를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거문고 줄이 탕 하고 끊어지고 악공이 당황하니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다른 거문고나 줄을 구하려 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거문고 줄은 끊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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