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8. 21:23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2016
추사의 큰 뜻은 효명세자(후일 익종으로 추존)의 스승으로서 왕세자가 부왕 순조의 대리청정을 하고 있을 때 잠시 펼쳐지려 했으나, 그의 요절로 꺾이고 만다. 복권한 안동김씨들은 추사를 제1의 위험인물로 표적 삼았다. 그들의 세도를 흔들림 없이 했던 것은 조선성리학이라는 이념의 독점이었는데, 추사는 바로 그 이념에 근본적인 도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추사를 제거하려 했고, 추사는 이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는 한편 정치적 의지를 도모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그 장치란 다름 아닌 그의 서화였다. 자신의 복귀를 위한 노력과 흥선대원군을 통한 정치적 목표의 추구는 모두 정적들이 알아볼 수 없는 서화 속으로 감춰지게 된다. 그가 숨겨놓은 한 글자, 하나의 선과 점도 쉬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살았던 천재 김정희의 정치관과 정책 방안이 교묘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서화 속에 숨어 있는 추사의 뜻을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며, 독자들은 저자의 흥미진진한 논지 전개를 따라가며 과연 오늘날 누가 추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밝혀내고 있는지 판정하게 될 것이다.
저자 이성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20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동아미술상 수상작가전을 비롯한 150여 회의 단체전 그리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현역 화가이다.
30년간 작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지나치게 문헌 연구 중심으로 경도된 미술 이론들을 접하며 많은 문제점과 병폐를 절감하였다. 이에 화석화된 미술사 연구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작품 중심의 연구 풍토를 환기시키고자, 정설로 자리매김 된 기존 한국미술사에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바른 미술사는 어떻게 정립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화가의 눈으로 확인한 추사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추사가 보내온 비밀 초대장.
그가 정교하게 설계해놓은 미로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지금껏 추사 김정희는 걸출한 예술작품을 남긴 문예인으로만 자리매김 되어왔다. 추사 해석의 대가(?)로 자처하는 문화사가·연구가들의 화려한 작품 해설 앞에서 우리는 감히 이에 대한 의심을 품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추사의 작품을 대면하고 보면 그 특이함과 절묘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 내용을 두고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장 내용이 너무도 단순하고, 밍밍하고, 때로는 앞뒤가 맞지 않은 사실 앞에서 실망을 넘어 거의 이율배반의 느낌마저 갖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유는 추사가 단순한 문예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평생 굽힘없이 개혁을 추구했던 뼛속까지 정치인이었다. 알다시피 추사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선 명문가 중에서도 최고 명문가 출신이다. 재산은 물론이요, 유력자들과의 인맥에서도 결코 아쉬워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삐딱선을 탔다. 왜? 그리고 마지막에는 봉은사 뒷방에서 절밥 축내는 비참한 지경에 내몰렸다. 도대체 왜? 누군가의 삶이 미스터리하다고 할 때 추사야말로 딱 거기에 들어맞는 인물이다.
비밀은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작품 하나하나, 작품 속 구석구석까지 번득이는 코드들로 가득 차 있다. 경천동지할 코드들이.
이제 우리는 암호해독표를 들고 160년 만에 처음으로 민낯의 추사를 만나볼 것이며, 그리하여 조선말기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추사, 추사의 서화 그리고 조선말기의 정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의 단초를 제기하다.
“우리가 알아왔던 추사 김정희는 추사가 아니었다.”
괜히 어깃장을 놓자는 게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또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된 시초는 우리 서화에 대한 기존 해설의 빈약함과 왜곡에서 출발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며 현란한 용어를 구사하는 해설가들 앞에서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알게는 된 것 같은데 뭐가 보인다는 걸까?” 하는 내면의 의구심은 잠재우지 못했다.
현역 화가인 저자는 한국화, 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동양화에 대해 큰 의문을 품어왔다. 우리의 그림은 왜 이리 단순한 표현에 머물고 있는가? 우리가 잘 모르는, 표현상의 어떤 암묵적 제약이 있기 때문일까? 반대로, 혹시 그 제약이란 것이 어떤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서화들을, 특히 진경산수화가 등장하기 전후의 서화들을 읽어내면서 저자는 일종의 벽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풀기 위해 그림 자체뿐 아니라 주류 성리학과 비주류 실학 및 고증학, 아울러 당대의 정치적 맥락 등을 꼼꼼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이는 저자를 감춰진 비밀을 추적해 들어가는 탐정(?)으로 만들어놓았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저자는 추사에 집중했다. 추사가 살았던 시대는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정조가 승하한 후 자기 아버지 세대에서 조선 실학의 꽃망울이 꺾이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성장한 추사는 실학의 씨앗 격인 고증학에 눈을 돌리게 된다. 배움의 최종 목표를 ‘치국평천하’에 두고 있는 유자(儒者)라면 마땅히 자신의 배움을 세상의 밝은 도리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배우고 그렇게 길러진 사람들이 조선의 선비들이다. 김정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문예인이기 이전에 정치인이었던 김정희가 10년의 세월을 고증학에 바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무렵 추사의 속내를 가늠할 수 있는 찬문이 남아 있다.
?實在書(핵실재서) 책에 쓰여 있는 것의 실상을 조사하여
窮理在心(궁리재심) 마음속 답답함에 이치를 세우고자 하나
攷古證今(고고증금) 옛 것을 상고하여 오늘의 증거로 삼고자 하여도
山海崇心(산해숭심) 산같이 높은 위업을 바다같이 깊은 물이 막아서네
(*이 찬문에 대해 최완수 선생은 “사실을 밝히는 것은 책에 있고, 이치를 따지는 것은 마음에 있는데, 옛날을 살펴 지금을 증명하니, 산과 바다처럼 높고 깊다”라고 해석하였다.)
이 찬문을 통해 추사가 고증학에 몰두했던 이유가 드러난다. 옛 경서의 뜻을 헤아려 마음속 답답함을 풀어내고 오늘의 문제에 증거로 쓰기 위함이란다. 일견 당연한 듯 보이는 문장이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성리학에 대한 도전장과 다름없다. 성리학은 공자의 가르침을 주자가 해설한 것을 정설로 삼으며, 조선이 주자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는 것은 주희를 공자의 공식 대변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나 같다. 이렇듯 이미 주희가 공자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다 설명해주었는데, 무엇이 답답하다는 것이고 무엇을 증명하고자 한다는 것인가. 추사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을 향해 “공자께서는 그리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고증학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추사가 조선에 공자를 직접 모셔오려 했던 것은 조선 성리학의 폐해와 허구성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추사의 큰 뜻은 효명세자(후일 익종으로 추존)의 스승으로서 왕세자가 부왕 순조의 대리청정을 하고 있을 때 잠시 펼쳐지려 했으나, 그의 요절로 꺾이고 만다. 복권한 안동김씨들은 추사를 제1의 위험인물로 표적 삼았다. 그들의 세도를 흔들림 없이 했던 것은 조선성리학이라는 이념의 독점이었는데, 추사는 바로 그 이념에 근본적인 도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추사를 제거하려 했고, 추사는 이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는 한편 정치적 의지를 도모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그 장치란 다름 아닌 그의 서화였다. 자신의 복귀를 위한 노력과 흥선대원군을 통한 정치적 목표의 추구는 모두 정적들이 알아볼 수 없는 서화 속으로 감춰지게 된다. 그가 숨겨놓은 한 글자, 하나의 선과 점도 쉬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살았던 천재 김정희의 정치관과 정책 방안이 교묘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서화 속에 숨어 있는 추사의 뜻을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며, 독자들은 저자의 흥미진진한 논지 전개를 따라가며 과연 오늘날 누가 추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밝혀내고 있는지 판정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글을 시작하며
1부 천재가 설계한 미로
모질도 耄?圖 * (耄 늙은이 모) (老+至 늙은이 질)
추사 읽기
계산무진 谿山無盡·
조화첩 藻花牒·
산숭해심 유천희해 山崇海深 遊天戱海
사서루 賜書樓·
잔서완석루 殘書頑石樓·
죽로지실 竹爐之室·
일로향실 一爐香室
2부 대밭에 묻힌 추사
신안구가 新安舊家
설백지성 雪白之性
지란병분 芝蘭?芬
불가의 친구
선면산수도
공유사호편애죽 公有私呼扁愛竹
3부 추사의 가면극
화법유장강만리 서집여고송일지 畵法有長江萬里 書執如孤松一枝
오악규릉하집개 육경흔시사파란 五岳圭楞河執槪 六經?木氏史波瀾
경경위사 經經緯史
황룡가화 黃龍嘉禾
황화주실 黃花朱實·
황화주실수령장 黃花朱實壽令長
숭정금실 崇禎琴室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직성유관하 수구만천동 直聲留關下 秀句滿天東·삼십만매수하실 三十萬?樹下室
차호명월성삼우 호공매화주일산 且呼明月成三友 好共梅花住一山
일독이호색삼음주 一讀二好色三飮酒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여손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강성계하다서대 동자편중유옥배 康成階下多書帶 董子篇中有玉杯·
만수기화천포약 일장수죽반상서 万樹琪花千圃葯 一莊修竹半狀書酒
일광출동여왕월 옥기상천위백운 日光出洞如旺月 玉氣上天爲白雲
글을 마치며
1
그간 우리는 秋史를 考證學의大家라 부으면서도 性理學의 잣대로 그를 이해해 왔고, 그 결과 어긋나는 부분이 생긴 것이다. 성리학의 잣대로 추사를 평가하면 "괴팍한 비운의 천재"가 그려지고, 그의 작품은 소위 人品論에 의해 어그러지는 까닭에 秋史의 작품을 아끼는 마음들은 목청껏 개성만 외쳐댄다.
※ 人品論 : 사람이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사람의 인품과 학식이 반영되기 마련이고 이는 예술도 마찬가지란 것으로, 예술이 재주에 그치지 않으려면 작가는 학식과 인품부터 닦아야 한다는 예술론.
도증학의 대가였던 추사의 생애와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그가 이룬 고증학적 성과를 통해 해석해야 하는 것이 正道이겠으나, 문제는 우리가 그것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秋史는 왜 고증학에 심취해 있었을까? 다소 엉뚱한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추사가 살던 시대(勢道政治)에 조선에서 고증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없는 자'이거나 '위험한 자'이기 때문이다.
"책에 쓰여 있는 것의 실상을 조사하여 마음속 답답함에 이치를 세우고자 하나 옛 것을 상고하여 오늘의 증거로 삼고자 하여도, 산같이 높은 위업을 바다같이 깊은 물이 막아서네."
<- 추사 나이 서른되던 해 여든셋의 옹방강이 보내온 편지 '탐계적독' 전면에 쓴 찬문이다.
<- 秋史가 조선에 孔子를 모셔오려 함은 조선 성리학의 폐해와 허구성을 바로잡기 위함이 아니었겠는가?
2
추사의 가문이 명문가였던 것은 틀림없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의 가문만큼 번듯한 과거 급제자가 필요했던 집안도 없었다. 오죽하면 홍천 현감직을 수행하고 있던 지방수령 신분의 김노경(추사의 生父)이 나이 마흔에 응시했겠는가?
왈실은 승지까지 보내어 축하해주고, 화순옹주의ㅡ사당에 제를 올려 고하게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표면적 이유는 왕실 가족의 일원이니 왕실이 축하하는 것이지만, 국왕의 속내는 추사 가문을 중히 쓰고자 하여도 자격 시비가 불거질까 염려되어 한직이나 제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 족쇄가 풀려 안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상 잘둔 덕에 홍천현감까지 제수받고 감읍해 하던 김노경은 大科에 급제한 지 불과 4년 만에 호조참판이 되고 동지겸사은부사가 되어 燕行 길에 나서게 된다. 김노경이 과거시험에 합격할 때 추사의 나이 스물이었고, 연행길에 자제군관 자격으로 부친과 함께 하던 그 해는 스물넷이었다.
3
오늘의 인문학 위기는 곰팡내 나는 책 더미를 깔고 앉아 세태 탓만 하는 완고함도 문제지만, 관대 노릇하며 世人을 불러놓고 어설픈 물건을 내보이는 짓이 더 큰 문제다.
4
천 마디의 말보다 찰나의 눈빛이 진실에 가까운 법이다. 사람의 말이란 뇌가 걸러낸 것이지만 눈빛은 반응인 까닭에 꾸밀 틈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나의 눈과 가슴을 기울이는 수고로움 대신 타인의 입을 먼저 바라보는 이상한 풍조가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소위 "아는 만큼 보인다"며 무례한 짓에 무신경해진 사람들이다. 물론 많이 알수록 더 깊이 이해할 수는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누군가가 알려준 지식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면, 나의 감각과 느낌은 어느 구석에 버려둬야 좋을까?
5
藝術이 아직도 감성의 영역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 감상에서 '앎'이란 것이 '감흥'에 우선할 수 없으며, 감흥의 부산물일 뿐이란 반증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감흥의 기회를 타인이 정리한 '앎'으로 대신한 채 예술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감동을 기대하는 것만큼 허망한 바람도 없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당신의 눈길에 반응하고 당신의 무뎌진 감각을 다듬어주며, 끝내 당신의 가슴을 벅차게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명작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저 당신의 눈과 가슴을 믿고 작품과 마주하면 된다.
다만 지금 당장은 끌림이 없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이 먹먹할 만큼 큰 울림과 함께 다가오는 것이 명작이므로, 함부로 당신 몫의 감동을 타인의 지식과 바꾸는 짓만은 피하시길 바란다.
본격적으로 추사의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당부 드리니, 잠시 책을 덮고 당신은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며 무슨 느낌을 받았었는지 되짚어보시길 바란다. 만일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면 책 읽기를 유보하시고, 먼저 추사의 작품과 만나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본의 아니게 당신 몫의 감흥을 빼앗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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