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뒷모습』- 전시회 개최부터 미술품을 둘러싼 사건, 큐레이터의 업무까지

2018. 12. 13. 21:11미술/미술 이야기 (책)





미술관의 뒷모습 2018. 1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미술관을 들여다보다


유명한,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회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최근 들어 무명 작가여도, 낯선 주제인데도 전시회를 찾는다. 이런 경향은 미술을 알고 싶은 진지하고 적극적인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전시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개최되는지, 미술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사실 알고 싶어도 미술관 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는 한 자세한 사정은 알기 어렵다. 미술관 업계에서 35년을 일해온 이 책의 저자는 미술관 운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의 여러 모습을 정리했다.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으로 자리 잡은 미술관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본다.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 알아두면 좋을 미술관 상식


미술관의 기원이 어디인지, 미술관과 박물관은 어떤 기준으로 구별하는 것인지, 작품은 어떤 식으로 보존?복원되고, 또 작품의 가격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지, 기증과 기탁의 차이는 무엇인지, 작품을 감상할 때 그림을 먼저 봐야 하는지, 캡션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등은 전시회에 가보았거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궁금했을 내용들이다. 미술관과 전시회에 얽힌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낸 이 책으로 미술이라는 세계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미술이 품은 가치와 숨겨진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감동을 받아도 그 감각의 질과 양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이 책이 미술관과 미술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해줄 것이다.

아름다움의 전당인 미술관도 반드시 아름다운 이야기만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미술품 도난 사건이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연간 수천 점이 넘는 미술품과 문화재가 미술관뿐만 아니라 교회, 사원, 유적지 등에서 도난되고 있다. 또 위작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위작은 유명 작가의 필치를 베껴 그린 그림이나 보증 문서를 조작한 것을 말하는데, 현재도 수많은 작품의 진위 판독이 진행 중이다. 일반인은 작품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지만, 사실 위작을 가려낼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언제, 어떤 진품이 위작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미술관이 운영 및 유지를 위해 상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미술품이 경제적,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미술품을 대여함으로써 사업상 계약 체결에 편의를 제공하는 등 외교의 술책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름다움으로만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미술관도 이면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런 미술관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미술품을 둘러싼 사건들, 이로 인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술관 사람들의 흥미로운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 : 다카하시 아키야
저자 다카하시 아키야는 195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연구과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19세기 프랑스 미술사를 전공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문부성 재외연구원으로서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파견되어 개관 준비실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했고, 국립 서양 미술관 주임연구관 및 학예과장을 거쳐 2006년 도쿄 마루노우치에 위치한 미쓰비시 이치고칸 미술관 초대 관장에 취임했다. 로트레크, 르동, 발로통 등의 작품을 구입해 미쓰비시 이치고칸 미술관의 소장 컬렉션을 자리 잡게 했다. ‘마네와 모던 파리’, ‘샤르댕’, ‘프라도 미술관’ 등의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2010년 10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했다.




책 속으로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에 얽힌 일화다. 그는 평소 인간의 나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벽화를 제작할 때도 등장인물들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작품이 공개된 후 남성의 성기와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난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교황청에서는 즉각 수정을 요구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응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사망하자, 교황은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a)에게 노출이 심한 부분에 옷을 그려 넣으라고 명령했다. 볼테라는 원작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성기 부분만 가렸는데, 이 때문에 ‘기저귀 화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시민들에게 조롱받았다.
- 35~36쪽

마네는 ‘서양 회화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전통적인 양식과 아카데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화가다. 이런 이유로 근대 회화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마네는 서양 회화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었던 것일까? 간략하게 설명하면 마네는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미를 연구하면서도, 그것과 결별함으로써 눈앞의 리얼리티를 그리는 자유를 얻었다. 말하자면 3차원적인 깊이(원근법), 종교화나 신화화 주제, 심지어 필치를 남기지 않는 치밀하고 정형적인 아카데미 작풍을 과감히 파괴했다.
- 148~149쪽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를 이곳에서 볼 경우, 천장으로 들어오는 외광(外光)이 강하면 벽이나 바닥에 빛이 하얗게 난반사해 작품 고유의 색이 흐려지고, 반대로 외광이 약하면 간접 조명이 강해서 작품의 표면이 빨갛게 보이는 난점이 있었다. 그래서 리뉴얼 공사를 할 때 과감하게 일부 벽면의 색을 푸르스름한 짙은 그레이로 칠했다. 이 색은 빛의 가감 상태에 따라 진한 감색으로도 보인다. 기존의 벽은 샌드 베이지색이었으므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벽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셈이다.
- 158쪽

복원가라는 직업은 혼자서 묵묵히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때로는 정반대의 자질도 필요하다. 컬렉션을 복원하는 작업과 전시회 개최 작품을 점검하고 보전하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품이 든다는 점은 같아도 필요한 자질이 다르다. 컬렉션 복원, 즉 미술관 소장품을 복원하는 작업은 자신의 아틀리에로 돌아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작업해도 된다. 반면에 전시회 작품은 아주 짧은 기간에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시간상 엄격한 제약이 있는 전시회장은 그야말로 혼돈 상태다. 고급 기술만으로는 현장을 총괄하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유연하고 대범한 대처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리고 다양한 문제에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이 필요하다.
- 176쪽

미술상은 미술 시장의 주역이라고 할 만한 존재지만, 미술품을 보는 눈이 있다고 누구나 미술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상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필수적으로 냉철하고 눈치가 ...빨라야 한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명예교수였던 자크 튈리에 선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좋은 미술상은 있지만, 선의의 미술상은 없다.” 예리하게 정곡을 찌른 말이 다. 쉽게 말하면 보는 눈이 있는 미술상은 있지만,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단지 선의로 작품을 소개해주는 미술상은 없다는 뜻이다.
- 230~231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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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제1장 미술관의 기원


메이지 시대의 서양 미술 컬렉터, 마쓰카타 고지로와 오하라 마고사부로




<마쓰카타 컬렉션>이란 '가와사키 조선소'의의 초대 사장인 마쓰카타 고지로가 제1차 세계대전 末부터 1920년대 初까지 유럽에서 수집한 서양미술품을 뜻한다. 전쟁 중에 벌어들인 군수 수익으로 막대한 富를 쌓은 마쓰카타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로트렉 등의 화가들의 작품과 로댕, 부르델의 조각 컬렉션, 그 밖에 공예품 풍속화에 이르기까지 1만 점이 훌쩍 넘는 엄청난 양의 미술품을 사들였다.


마쓰카타 고지로는 일본 최초의 서양미술관을 만들어 일본의 젊은 화가들에게 서양의 一級 회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장대한 비전을 품었다. 도쿄 중심부에 용지를 확보하고 설계안까지 그린 상태였으나, 1927년 금융공황으로 마쓰카타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주거래 은행의 휴업으로 가와사키 조선은 경영 위기에 빠졌고, 마쓰카타는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져왔던 수백 점의 회화작품을 은행에 넘겼으며, 은행이 이를 매각하면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마쓰카타는 유럽에서 사들인 미술품 중 일본으로 가져오지 못한 것은 런던과 파리에 보관해두었다. 이 작품들 중 런던의 창고에 있던 것은 1939년 화재로 소실 되었고, 파리의 창고에 있던 약 400점만 남았다. 그런데 이 컬렉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의 재산으로 간주되어 프랑스의 국유재산이 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의 끈질긴 반환 요쳥에 대해 프랑스는 일본에 프랑스 미술품을 위한 미술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프랑스 정부가 추천하는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프랑스 정부가 감시토록 한다는 조건으로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의 작품을 되돌려주었다. 프랑스의 제안대로 르 코르뷔지에가 기본설계를 해서 1959년에 개관한 것이 <우에노 국립서양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이 소장한 컬렉션은 원래 마쓰카타가 수집한 작품들로, 고흐의 <아를의 침실>은 당시 프랑스 정부가 끝까지 넘기지 않았던 작품이다.







국가의 격, 컬렉션의 힘
미술관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일까, 르네상스일까?
르네상스 시대, 작품 주문자와 인기 예술가의 긴밀한 관계
루브르에서 시작된 공공 공간으로서의 미술관
일본 미술관의 기원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영어 'Natural Hystory'의 번역어로 '박물(博物')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자연과학에 관한 것, 즉 '본초(本草)'라고 불리는 약초학이나 동물 식물 광물 등에 관한 것이 본래의 '박물'적인 수집품인데, 당초에는 '박물'이라는 카테고리에 서화나 고미술까지 모두 포함됐다.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미술'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영어 'Fine Art'를 '미술이라고 번역하고 'Museum'을 '박물관'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박물관에는 불상을 비롯한 박제류, 물리표본, 약물 식물 관련자료, 공예품, 서화와 회화, 조각품 등 순수 미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전시되었다.

이후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용어가 조금씩 정리되고 분류되면서 자연과학적인 것은 과학 박물관으로, 병풍과 서화류 등 미술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미술관으로 분류됐다.




제2장 이래저래 힘든 미술관의 일


일본이 해외 미술전을 여는 법: 미술관과 신문사의 깊은 관계
학예원(학예사)이 하는 일


''큐레이터''는 '돌보는 사람'이라는 라틴어 '쿠라토르'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에서는 '콩세르바퇴르'라고 하며 '보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험은 년간 2~3명만 통과하는 좁은 문으로, 자격증만 따면 대단한 권위를 가진다. 영국에서는 같은 의미로 '키퍼'라고 한다. 큐레이터는 미국식 표현으로 정보를 수집 정리하고 편집하는 작업에 중접을 둔 호칭이다.




매니지먼트 능력의 중요성
국민성으로 알아보는 나라별 미술관의 사정
작품 캡션을 먼저 읽어야 할까?
그 외에도 학예원의 업무는 산더미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모네와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수집해 인상파 미술전시회까지 개최하는 등 적극 후원했다. 마흔다섯 살에 요절한 카유보트는 생전에 자신의 컬렉션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모든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카유보트 자신도 예측했었듯이 프랑스 정부는 카유보트의 컬렉션을 거부했다. 지금은 인상파 그림이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단적인 유파에 불과했다.

화단의 권위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증품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고, 미디어도 논쟁으로 떠들썩했다. 이때 발멋고 나선 이가 르누아르였다. 카유보트의 컬렉션에 그의 미래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가 약 2년간 정부와 끈질기게 협상한 끝에 승인을 받아냈다. 1896년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시슬리, 드가, 세잔, 마네 등의 작품을 포함해 총 1,968점이 프랑스 정부에 기증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작품들은 피에르 드 룩셈부르그 미술관과 주 드 폼 미술관에 보관 전시되었다가 1986년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공개되었다.




제3장 전시회, 그 뒷모습이 궁금하다


기본에 충실한 정공법으로 성공한 전시회 '라 투르'
프로듀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학예원
영화감독, 연출가 같은 수완을 발휘해야 하는 학예원
전시회는 프로모션이 생명: 발로통 전시회의 성과
전시회의 수지 균형이란?
관람객 동원은 다음 전시회의 원동력

제4장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미술품


관람객은 미술관 벽면의 색상을 기억할까?
엄청난 운송비와 보험료: 대형 전시회의 경비는 억 단위?
작품은 어떤 식으로 보존·복원될까?
운반을 도와주는 일도 만만치 않다: 쿠리어의 중압감과 스트레스

제5장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미술품


카탈로그 레존네의 신빙성: 진품이 위작으로!
일본 미술, 애매함에 대한 집착
선의의 위작: 위작은 악?
르누아르 작품의 가격은 누가 결정할까?
소설보다 기이한 위작 사건: 결론은 진위가 아닌 선악의 문제
도난 사건, 설마 흔한 일?: 코로의 명화를 발견한 비화



제6장 미래의 미술관, 어떻게 될까?


세계 미술관의 세력 판도: "우리가 한마디만 하면"
미술품의 가격은 이렇게 결정된다
루브르 미술관의 로고 사용료만 600억 엔



2017년 11월에 오픈한 <루브르 아부다비>와 2020년 오픈 예정인 <구겐하임 아부다비>다. 각각 루브르 미술관과 구겐하임 재단이 주관하는 미술관이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향후 30년간 루브르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대여했는데, 2012년 12월에 개관한 루브르 랭스처럼 루브르의 직속 별관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휴 계약'에 불과하다. 즉 프랑스의 미술관팀이 전면적으로 지원해주겠지만 운영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아부다비인 것이다. 계약금은 600억 엔으로 추정된다.


연간 9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기록하는 <루브르>까지도 지금 자금에 쪼달리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물론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한 총 컬렉션 수는 약 38만 점이다. 방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시설의 관리비와 유지비, 2,0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인건비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다. 국가의 보조금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가 없다. <구겐하임> 재단은 지점을 개점함으로써 궁핍한 재정상태를 극복했다.



패션 브랜드가 미술관을 바꾼다?
틀을 깨라! 현대 미술의 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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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술 전시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비평성: SNS로 듣는 생생한 목소리
미술관으로 들어온 패션 브랜드와 만화 : 확장되는 미술의 정의
미술 감상, 원점으로 회귀하다: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향해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