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 20:13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키스 해링 (Keith Haring)
인어공주가 천사의 날개를 달고 바다 위 하늘로 올라가는 것일까, 천사가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것일까. 검은 종이에 하얀 분필로 빠르게 그려지는 드로잉은 단순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뉴욕에 걸맞지 않게 더럽고 지저분함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뉴욕의 지하철역. 시기가 지난 광고를 가리고자 덮어놓은 검은 종이판 위에 하얀 분필로 그려진 단순한 이미지의 드로잉들.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선과 율동감 있는 상징적 형상들을 통해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을 대중 가까이로 끌어들인 젊은 이단아, 그는 바로 뉴욕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키스해링이다.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예술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예술은 어떤 힘을 발휘해야 하는가?’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청년은 계속되는 질문과 고뇌 속에 끝없는 작업을 해댄다. 지하철역, 거리의 담, 건물의 벽, 버려진 문짝….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작업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것은 곧 그에게 있어 삶의 목적이자 원동력이었다.
키스해링의 지하철 드로잉 사진. (Photo by Elinor Vernhes)
1958년, 필라델피아 쿠츠타운에서 출생한 키스 해링은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통과 기독교가 강하게 자리잡은 보수적인 필라델피아,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과 눈에 띄는 건물이나 흥미거리라곤 찾아보기 힘든 작은 시골, 쿠츠타운은 호기심 많고 억누를 수 없는 열정으로 가득 찬 소년이 머물기에는 더없이 답답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링의 십대는 결코 모범적이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불어 닥친 베이비 붐 마지막 시기에 태어난 그는, TV의 보편화로 대중문화가 형성되고 매체의 영향력이 커져가던 미국의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성장했다.
격변하던 60~70년대 미국사회와 10대 소년의 꿈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지만 더 넓고 더 많은 것에 대한 욕구가 늘 넘쳤던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보수적이고 편협해 보이는 환경에 늘 구속당하는 느낌이었고, 이에 대한 억눌림은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그를 일탈된 모습으로 비치게 했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은 TV와 잡지뿐이었다. 키스 해링은 <라이프>지를 통해 세상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지켜보았고, TV에서 월트 디즈니나 닥터 수스 같은 대중문화를 접했다. 급속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사회는 점점 변화되고, 반전과 성에 대한 자유, 과거 전통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우드스탁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번져가는 것도 알았다.
미국 사회가 전통적인 사회에서 새로운 변화의 흐름으로 이동해 가는 이런 과도기적 시기를 해링 또한 사춘기 시절로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십대는 이후 자신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난히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십대 소년에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자신을 벗어난 일이 아니었다.
[Pop shop 3] 1989 ⓒ Keith Haring Foundation [Untitled] 1985 ⓒ Keith Haring Foundation
해링은 시대적 변화와 흐름을 그대로 흡수한 세대를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변화와 함께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정한 많은 고민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해링 안에는 그 시대가 반영되어 있었고, 그런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 속에 시대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반핵,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지원 등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사회적 문제나 사건들은 시대를 반영한 역사의 흔적이 되었다. 키스 해링은 그것이 시대적 사명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사명이라 믿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게 그려내는 마법
해링에게는 이런 무거움을 쉽게 풀어내는 마법 같은 능력이 있었다. ‘앤디워홀은 가벼운 주제를 무겁고 심각하게 표현한 반면, 키스 해링은 정반대로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게 그려낸다’는 요코 오노(Yoko ono, 1933~)의 말처럼, 해링의 작품은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예술은 결코 소수의 특정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그의 철학이 그의 작품 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뉴욕으로 이동한 해링은 시각예술학교 (School of Visual Arts, New York)에 재학하며 당시 뉴욕에 유명하던 그래피티와 기존 예술계의 제도 밖에서 활발하던 대안 예술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는다.
1980년 여름, 해링은 그가 존경하는 화가이자 학교 스승이었던 키스 소니어(Keith Sonnier)의 전시회를 돕게 되는데,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예술이 대중에게 인정받기는커녕 이해조차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결국 재학 중인 시각예술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이 직접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Andy Mouse]. 1986 ⓒ Keith Haring Foundation
자신의 예술은 과연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그 해 겨울 지하철을 기다리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찾아왔다. 검은 종이로
가려놓은 빈 광고판을 보고 재빨리 분필을 사와 그림을 그린 것이다. 비어있는 뉴욕의 광고판과 시내 곳곳을 채우는 ‘거리의 작업’
은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 해링의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이 펼쳐지면서, 부드럽고 리듬감 있는 선으로 표현된 단순하고 명료한 그의
그림들은 점점 더 확산되었고, 거리 곳곳의 빈 공간은 그만의 ‘실험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의 흔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말을 건네며 서로 대화하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이러한 소통은 그가 작업을 하는
이유이자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특징적인 굵고 힘찬 선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
그가 세계 곳곳의 도시로, 학교나 병원의 벽으로 주저 없이 뛰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곳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의 완벽한 작업 공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들과의 소통을 원해서일까. 그의 작품은 대형 공간에서 이뤄질 때가 많았다. 특히 그의 작품이 가진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굵고 힘있게 표현된 ‘선’이다. 카툰의 외곽선을 닮은 듯한 해링의 선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거대한 벽면이나 종이에 어떠한 밑작업도 없이 자유롭고 거침없는 붓질로 선을 그려 나갔다.
심지어 해링은 공식적으로 계획된 프로젝트에서도, 즉흥적으로 진행된 벽화 디자인에서도, 스케치나 습작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링의 작품에는 어떤 실수나 수정, 비율의 비대칭도 존재하지 않았다. 해링에게는 마치 울창한 숲 한 가운데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거대한 공간을 머리 속에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절대적 공간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벽에 작업을 할 때에도 어떻게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한 번도 내려와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림을 그려냈다.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감각으로 그려진 선들은 조금의 실수도 없이 서로 연결되고 맞닿아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상징이 되어 완성된 작품을 이루어낸다.
밝고 귀여운 이미지의 그림들과 달리 골몰한 생각으로 가득 찬 그는 굵고 힘찬 그의 선의 세계를 통해 그 어떤 것보다 강열한 메시지를 세상 속으로 던졌다.
독일 베를린 장벽에 그린 사람 형상의 손과 발이 연속적으로 맞물리는 고리 형태의 이미지는 장벽이 지녔던 단절과 분열에 대치하여 인간의 연합을 표현한다. |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는 가장 외설스러우면서 가장 성스러운 주제가 담겨져 있고, 선과 악, 거룩과 쾌락의 양극이 서로 맞닿아 공존한다. 인간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들은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로 향해 간다. 관람자는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난 솔직하고도 다중적 의미를 접하며 각자 에게 던져지는 메시지를 찾는다. 31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생애 동안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공공작업과 작품 세계를 펼쳤던 해링이 가장 꿈꾸고 열망했던 대중과의 소통은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서 즐거운 소통을 하고 있다.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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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cast.naver.com/art/theme/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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