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

2018. 8. 12. 04:46책 · 펌글 · 자료/역사

 

 

 

ㅣ說

 

 

물론 아틀란티스문명이 미노아문명을 의미한다는 가설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77년에 피힐러와 시링크라는 두 독일 과학자는 화산 분출물을 세심하게 조사한 결과 산토리니크레타가 멸망한 1450년보다 훨씬 오래 전에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화산은 BC1477년이 아니라 BC1650년에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황소 숭배는 고대 지중해 전역에 널리 퍼진 풍습이었으며 희생으로 바치는 짐승을 잡을 때 희생물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풍습 또한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몸에 흠집이 없는 짐승만을 신에게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수께끼에 매달리는 학자들의 집념 또한 대단했다. 만약 화산 폭발로 미노아문명에 치명타를 입혔다면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플로이드 맥코이 박사는 우선 화산 폭발 규모가 어느 정도로 컸을지를 분석했고 드라고슬라브 닌코비치는 산토리니 섬의 화산 규모를 추측했다.

 

그들은 우선 1883년 8월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의 화산 폭발과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을 비교했다. 크라카타우 섬 화산 폭발은 약 4,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주민들의 귀에 들릴 정도로 엄청났다. 폭발력은 100메가톤에서 150메가톤 규모였는데 이는 초창기 핵폭탄 6만 개에서 9만 개를 동시에 터뜨릴 때 발생하는 폭발력과 같다.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은 크라카타우 섬의 화산 폭발보다 열 배나 큰 규모였다. 산토리니 섬의 폭발로 지름 13킬로미터, 깊이 2킬로미터인 분화구가 생겼으며 높이 200미터가 넘는 해일이 인근을 강타했다. 크라카타우 섬 화산이 만든 해일의 높이가 35미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크라카타우 섬 화산이 폭발하면서 약 3만 6,000명이 사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산토리니 섬의 폭발에 따른 여파는 대단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산토리니 섬 화산이 폭발하면서 전 지구적인 여파를 줬다는 점이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한 사제가 “나흘 동안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흐렸다”라고 적었다. 중국에서는 오곡이 시드는 등 농사가 엉망이 됐다는 기록도 있다. 하나라가 상나라에 멸망시키는데 그 연유가 산토리니 섬의 폭발로 농사를 망쳤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화산 폭발은 남극 빙하에도 흔적을 남겼다. 기원전 1628년부터 7년 동안 재가 내렸다는 흔적이 빙하에서 발견된 것이다. 7년이나 재가 내렸다는 것은 7년이나 전 세계적으로 농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도 흔적이 발견됐다. 수령이 5,000년인 브리스톤 나무의 나이테를 살펴보니 그 당시 나무 성장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자들은 유럽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 중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이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안드리센 박사는 화산 폭발과 미노아문명의 멸망을 연계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크레타에서 둘째로 큰 도시였던 팔라이카스트로에서 갑자기 건물의 반이 날아간 것이다. 당시 이 도시에는 5,000명이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시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당시 셋째로 큰 도시인 말리아인에서도 똑같은 재난이 일어났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재난이 일어났을까? 우선 화산이 폭발하고 며칠 동안 밤낮이 구별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처럼 갑작스러운 재난은 불가능하다. 놀랍게도 퇴적층에서 유공충은 물론 산호말류도 발견됐다. 이들은 바다에서만 발견되는 생물이다. 게다가 퇴적층에서 자갈과 함께 있는 토기도 발견됐다. 바다에서 거대한 힘이 몰려왔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상상할 수 없는 해일이 밀어닥쳤다는 뜻인데 당시 해일은 높이 31.36미터, 속도는 시속 16킬로미터에서 32킬로미터 정도로 몰려왔다.

 

해일은 거의 30분, 40분 간격으로 연속해서 도시를 강타했는데 이 때문에 피해는 더욱 심해졌다. 첫 해일을 피해 높은 고지로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왔다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인도네시아 아체 주 해안을 강타한 해일로 해안에 살던 사람의 80퍼센트가 사망했는데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의 여파도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크레타 섬 해안에 정박한 함선들은 물론 도시 인구의 80퍼센트 정도가 피해를 봤을 것이다.

 

거대한 해일은 미노아인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미노아인들은 강력한 함대를 갖고 있는 데다 신들이 미노아를 보호한다고 믿었으므로 해안에 성벽도 건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재난이 일어났으니 신들이 미노아에 등을 돌렸다는 뜻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대재앙을 신들의 저주로 받아들였다.

 

물론 크레타 섬의 제1도시인 크노소스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 크노소스는 내륙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산이 폭발하고 거의 200년이 지나 미노아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따로 있어야 했다. 학자들은 내부 봉기 또는 외부 침략을 붕괴 원인으로 꼽았는데 근래에는 주로 후자가 우세하다.

 

우선 크노소스에 방화 흔적이 남아 있고 크노소스 인근인 체냐에서 대규모 무덤이 발견됐는데 미노아식 무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크노소스에서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는 긴 칼도 발견됐다. 학자들은 당시 지중해에서는 미노아문명과 미케네문명이 강력한 함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은 미케네문명, 즉 그리스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그래서 지중해를 주름잡던 미노아문명이 갑작스럽게 쇠퇴하자 그리스인들이 크레타를 공격해 멸망시켰다는 설명이다.

 

매우 중요한 정황을 알려주는 유물도 발견됐다. 크노소스 도로에서 어린아이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됐는데 이는 미노아인이 인육을 먹은 흔적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이 사실이 그리스신화의 미노타우로스 전설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즉 미케네문명은 크레타에서 인육 먹는 것을 크게 비난했는데 갑자기 해군력이 보이지 않자 충분한 준비를 한 다음 크레타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노타우로스 전설은 그리스인들이 크레타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만들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리스 반도 펠로폰네소스의 아카이아인들은 종교, 글, 예술을 크레타에서 배웠지만 무기만큼은 크레타인보다 우월했다.

 

천재지변이 미노아문명을 멸망시켰다는 시나리오는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 외에도 크레타 섬에서 계속 발생한 강력한 지진을 염두에 둔다. 즉 여러 번에 걸친 천재지변으로 크레타의 지배력이 약해졌을 때 아카이아인들이 크레타를 침입해 점령했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미노아문명은 자연재해와 외부 공격으로 멸망했는데 이런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돼 아틀란티스 전설이 시작됐다는 것이 현대 과학으로 보는 아틀란티스의 진실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무려 5,000여 권이나 되는 책이 아틀란티스 대륙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이 책들은 모두 플라톤이 설명한 아틀란티스가 실존한 대륙이거나 상상으로 만든 대륙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아틀란티스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란 건 2005년에 아틀란티스 학회가 개최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많은 학자가 그리스 밀로 섬에 모여 사라진 문명의 위치를 추정하는 수십 가지 가설을 제시하며 토론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존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하는 과학자조차 심정적으로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조차 모순적인 견해를 보일 만큼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인간들의 호기심은 대단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대륙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 대륙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더 나아가 속물적이긴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었을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 만약에 내가 보물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라진 대륙의 문명이란 바로 이런 공상을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여기에 아틀란티스처럼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전설이 인간에겐 꼭 필요하다는 설명도 큰 지지를 받는다.

 

사람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 흥미를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과거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침몰했다면 미래에도 그런 사건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대륙 침몰이라는 재난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 수 있다면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은 찾을 수 없어서 외려 더 매력 있는지도 모른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이 2000년 이상을 내려오면서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틀란티스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얄궂게도 꿈을 잃어버리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장에 해답을 얻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는 해답을 누군가가 제시해주기를 기대하는 게 아닐까? 적어도 아틀란티스 대륙과 함께 사라진 각종 보물은 아직도 바닷 속에 묻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기 위한 모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가 과학적 조사든 가라앉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든, 아틀란티스는 우리에게 영원한 매력을 지닌 이상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브라이언 페이건, 남경태 옮김,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오늘의책, 2003).

이종호, 『과학으로 찾아간 아틀란티스』(월드북, 2005); 이종호,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인물과사상사, 2004).

 

 

 

 

 

 

 

 

 

 

Ⅱ說

 

 

 

사라진 대륙,아틀란티스의 증거

 

  

만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주제에 접근한다면, 과거 대서양에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반증보다는 더 많은 긍정적 증거를 찾게 될 것이다. 거의 2400년 전에 플라톤은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헤라클레스 기둥이 있는 해협의 서쪽>이라고 묘사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현재의 지브롤터 해협이다.

그가 말하기를 ─ 

 

"9,000년 전에 아주 강력한 고대 국가가 있었다.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이상 국가였다. 아주 예전에, '헤라클레스의 기둥'(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지금의 지브롤터 해협 동쪽 끝에 솟아있는 두 개의 바위를 말한다) 뒤편에 큰 섬이 있었다. 

이 큰 섬을 아트란티스 대륙이라고 불렀는데 이 섬을 지배하던 나라는 동서로 리비아에서 이집트 접경 지역까지, 북쪽으로는 유럽의 티레니아(이타리아 중북부)까지 통치하는 강력한 국가였다.
이 국가는 그리스와 이집트의 해협에 위치한 지역도 점령하였다. 그러자 그리스에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그리스 전체를 총괄하는 동맹군을 만들었다. 그러나 동맹군 간의 이해가 서로 엇갈려 모두들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그리스 혼자만 싸워 승리자가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후에 엄청난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단 하루의 밤과 낮 사이에, 그리스의 전사 모두가 땅 속에 묻혔고 아틀란티스 대륙 역시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사라진 섬과 유적들이 수면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배가 항해하기 불가능하다. 그것은 침몰한 섬이 남긴 많은 이토(泥土)가 배의 항해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리스 정치가 솔론이 사이스의 사제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러면 아틀란티스 대륙은 역사상 실제로 존재하였던 대륙인가? 존재했다면 그 위치는 어디인가?

 

 에드가 케이시는 명상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세 번의 광범위한 대이변에 의해 부분적으로 무너지다가 결국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이변은 대략 기원 전 1만년에 발생했다고 했는데, 이 시기는 플라톤이 마지막 파괴의 시기로 분명히 언급했던 때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대륙이 바다 아래로 사라져서 12,000년 동안이나 완전히 잊혀진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은가? 지질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이나 섬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왔다고 말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해안들은 최근 몇 천 년 사이에 수백 피트나 솟아올랐다. 시실리가 지금은 해발 고도 3천 피트에 위치해 있지만 한 때는 대양의 바닥이었다. 펜실베니아의 석탄 퇴적물은 그 지역이 적어도 23번 수면 아래위로 융기와 침몰을 반복했음을 시사해준다.

 

현대에 들어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었던 지진이 2백년 전 포르투칼의 리스본에서 발생했다. (포르투칼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동쪽 해안과 가깝다). 그 지진으로 6분 이내에 6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대리석으로 된 선창으로 모여들었는데, 그 선창이 갑자기 해수면 아래로 6백 피트 지점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사람들과 함께 부근에 정박 중이던 많은 배들도 가라앉았는데 단 하나의 파편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시에 모로코 마을의 땅이 갈라져 그곳 주민 만 명을 삼켜 버렸다. 격렬한 화산 폭발이 아조레스 제도와 서인도 제도에서 일어났는데, 아조레스 제도는 과거 아틀란티스 대륙의 산 정상이었던 곳이라고 추측되며 서인도 제도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서쪽 끝이었다.

 

현재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1902년에 일어난 마르티니크섬(카리브해에 위치해 있음)의 펠레산의 화산 폭발을 기억하고 있다. 그 화산 폭발로 인해 수도(생피에르)에 살던 3만 명 전원이 채 1분도 되지 않는 순간에 몰살했다. 1976년에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지진도 아주 참혹한 것이었다. 

 

거의 40년 전 에드가 케이시는 1968년이나 1969년에 아틀란티스의 일부가 비미니해역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난 수년동안 탐험가와 지질학자들이 그 해역 바다 밑에서 벽이나 건물처럼 보이는 구조물을 발견했다. 1998년 아조레스 제도의 북쪽에서 끊어진 해저 케이블을 수선 중이던 프랑스 배가 해저 약 3천 미터 깊이에서 유리질의 화산암 조각을 발견했다.  

화산암은 오직 대기 중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인데 용암이 물 속에서 굳게 되면 수정 구조를 갖게 된다. 그 화산암 조각(파리 박물관 소장)을 조사한 과학자들은 화산암이 분해되는데 15,000년이 걸리므로 그 지역이 15,000년 이전의 시기에 해면 위에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대서양에 존재했던 사라진 대륙에 대한 더 많은 증거가 콜롬비아 대학의 모리스 어윙 교수가 1949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들어있다. 어윙 교수는 탁월한 지질학자로서 대서양 탐사 특히 대서양 한 가운데에 있는 해저 산등성이 일대를 탐사했다.

그가 한 많은 발견 중에 하나는 5,600m 깊이의 해저에서 끌어올린 선사시대의 해변의 모래였다. 그리고 그 지역은 육지로부터 거의 2,000㎞ 떨어진 곳이었다.  

모래는 오직 지표면에서만 형성되기 때문에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당시는 지상에 있던 그 땅이 3~4천m 깊이의 해저에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한 때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3~4천m 낮았음이 틀림없다.”  그 곳은 예전에는 바다 밑이 아니었으며, 대륙이동설도 대양 한 가운데에 있는 해변의 모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해저 산맥, 해저 분지, 화산재의 여러 겹의 퇴적층이 대양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1,000m 해저에서 대서양의 과거 역사를 말해주는 흥미로운 암석을 발견했다. 대륙의 일부였던 것이 틀림없는 그런 종류의 화강암과 퇴적암이었다. 우리가 이 곳에서 끌어올린 모든 암석들은 둥그스름했고 깊게 긁힌 자국이 있거나 줄무늬가 있었다.  우리는 또한 덜 굳은 이암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이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더 연구해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다.”

 

허드슨강이 뉴욕항의 입구에서 대륙붕 쪽으로 190㎞에 이르는 협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이 그 협곡은 깊은 바다 속으로 수백 킬로미터나 더 연장되어 있었다.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이 협곡들이 건조한 땅에서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북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지방의 높이가 한 때는 현재보다 3,000m 이상 더 높았다가 그 이후에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3,000m 아래 쪽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것은 선사시대의 대이변으로 인해 광대한 육지가 바다에 잠겼고 그에 비례하여 일부 지역이 융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지질학자들은 물 속에 잠긴 동굴을 증거로 버뮤다의 해수면이 한 때는 지금보다 18~30m 낮았었다고 말한다.

  

미 대륙의 식물과 동물의 분포도 대서양에 한 때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었다고 무언의 증언을 하고 있다. 아마 가장 인상적인 증거는 씨가 없고, 꺾꽂이로도 번식시킬 수 없는 바나나일 것이다. 바나나가 씨 없는 품종으로 개량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주의 깊게 재배되어야 했으며, 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온대지방에서는 바나나의 뿌리가 살지 못한다. 그래서 바나나의 경작이 아틀란티스에서 시작되었고, 거기서부터 동서로 인접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최근 화석을 통한 과학적 발견은 미대륙에서 말(馬)이 유래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16세기에 미대륙으로 말을 들여올 때까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알지 못했다. 야생말들이 고대에는 이어져 있던 육지를 통해서, 아틀란티스에서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건너가지 않았을까?

 

선사시대의 북미대륙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고래의 뼈가 해수면보다 150~180m 높은 지역인 미시간, 뉴햄프셔, 몬트리얼 등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북쪽에서 발견된 야자나무의 흔적은 이 지역이 한 때는 열대지방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알라스카에 묻혀있는 고대의 산호도 이 지역이 한 때는 열대지방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른 많은 예들이 이그나티우스 도넬리가 1882년에 첫 출판하고 1949년에 이거턴 사이크스에 의해 개정된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란 책에 열거되어 있다. 도넬리의 책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고대이집트의 문화와 스페인 정복자들이 관찰한 중남미 인디언 문화 사이의 현저한 유사성을 들어 이것을 아틀란티스의 증거로 삼았다.

 

이 두 지역은 많은 도시의 이름들이 거의 유사했으며 높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고, 대홍수에 대한 전설이 있었으며, 1년이 365일로 된 역법이 발달했고, 종교적 건축물에 십자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아틀란티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로서 아틀란티스로부터 동서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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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說

 

 

과학이 찾은 아틀란티스

전설상의 미스터리

 

현재 많은 학자에게 지지받고 있는 가설은 프로스트가 1909년에 『타임』에 처음 발표한 내용이다. 이 글은 라스가 1969년에 쓴 『재발견된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는 기사에서 다시 언급됐다. 그들의 주장은 크레타 섬이 아틀란티스라는 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크레타 섬이라는 프로스트의 가설은 다른 가설보다 자료와 증거가 많다. 그럼에도 이 가설이 근래까지 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플라톤이 말한 “단 하룻 낮과 밤사이”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갑자기 소멸했다는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레타 섬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면 “서쪽에 있었던 섬”이 아니다. 크레타 섬은 이집트에서는 서쪽에 있지만 그리스에서는 동쪽에 있는 섬이다. 이집트 사제가 이집트인인 까닭에 서쪽이라고 말했다고 수긍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지만 이 방향을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해 결론 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고학자나 과학자들이 모두 플라톤이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한 것은 아니다. 프로스트의 가설을 강력히 지지하는 증거가 마침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원전 17세기에 크레타에서 160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산토리니 섬에서 갑자기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미노아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 섬이 황폐해졌다는 증거를 고고학자 마리나토스가 찾아냈다. 화산 폭발의 연대를 과거에는 기원전 1477년으로 추정했으나 현재는 기원전 1628년으로 본다.

  

마리나토스는 산토리니 섬이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 대륙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크레타 섬 주위를 고집스럽게 뒤진 결과 드디어 1967년에 산토리니 섬 남쪽에서 아크로티리라는 고대 함대 정박소를 찾아냈다. 그 뒤로 1미터에 달하는 화산재에 덮인 마을도 발굴했는데 2층 주택, 3층 주택, 창문, 방, 계단, 운하, 도로, 궁전 등이 거의 원형 그대로 파묻혀 있었다.

 

놀라운 것은 건물 대부분에서 벽화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벽화는 이집트 벽화와 완전히 달랐다. 이집트 벽화는 파라오를 더 신격화하고 영웅으로 부각하기 위해 전투 장면이나 사후 세계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크레타 벽화는 꽃 따는 아이, 놀이하는 어린이 등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을 주로 담았다.

 

이것은 크레타가 다른 지역과 달리 암울하고 딱딱한 전제 국가가 아니라 문명화된 사회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층 가옥에는 냉 · 온수가 공급되는 배관시설이 있고 수세식 변소가 설치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크레타 문명이 전 세계적인 풍물을 도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유물은 물론 원숭이 그림 등도 발견된다. 이미 크레타가 아프리카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크레타가 원시사회가 아니라 당대에 지중해 전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국가였음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유럽의 최초 문명이 크레타에서 일어났다는 주장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산 폭발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크레타문명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섬인 크레타였다. 폭발에 따른 진동이 크레타에 있는 건물을 파괴했고 거리는 화재로 뒤덮였다. 엄청난 해일이 북쪽 연안을 강타했으며 지진도 일어났다. 고고학자들이 모두 미노아문명이 종말을 맞은 가장 큰 이유로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을 들지는 않더라도(또 다른 학설은 그리스인의 공격으로 멸망했다는 것이다) 이 화산 폭발이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은 지중해 조그마한 섬 하나가 바닷속에 침몰해버리고 그 여파로 그들이 잘 아는 크레타라는 강력한 국가가 완전히 파괴됐음을 알게 됐다. 이집트인들은 지중해를 활보하던 크레타인들이 화산 폭발 이후 갑작스럽게 출입을 끊자 이보다 800년 뒤에 이집트를 방문한 솔론에게 크레타 섬을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솔론은 크레타와 이집트인들이 부르는 케프티오우(Keftiou)가 동일한 지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이집트인들이 서쪽이라고 한 말도 당시 그리스인들이 머나먼 서쪽을 뜻하는 지브롤터 해협의 서쪽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신화로 설명했다. 크레타 멸망이 이미 1,000여 년이 지난 때였으므로 크레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자 이를 과장해 지브롤터 해협 서쪽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듯 1960년 그리스의 지진학자인 가라노포우르스는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한 열아홉 가지 사실은 대부분 크레타 섬과 연관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로시 비탈리아노는 열아홉 가지 중 여섯 가지는 완전히 일치하고 여덟 가지는 일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 대륙과 크레타는 믿기 어려울 만큼 유사하다. 특히 미노아문명은 플라톤이 언급한 매우 세련된 아틀란티스에 부합할 만큼 상당한 발전한 문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산토리니 섬의 지형도 플라톤이 기술한 아틀란티스 지형과 합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여행자들이 “사라진 대륙 후면에서 출발해 대륙 전면에 있는 다른 섬에 도달할 수 있었다”라고 기술했는데 이집트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크레타와 사이클라드 군도 그리고 그리스 대륙 사이를 말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황소를 제물로 바칠 때 금속을 사용하지 않고 매듭과 몽둥이만을 사용해 죽였다는 기록이다. 당시 크레타인들은 무기 없이 황소와 싸우는 운동을 즐겼다. 커다란 황소가 질풍같이 돌진하는 정면에 떡 버티고 섰다가 쇠뿔에 받히는 순간에 쇠뿔을 휘어잡고 공중회전을 해 황소 등에 올라타는 경기다. 이 경기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황소를 상대로 하는 것이므로 조그마한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그들의 무기는 오직 양팔과 번개처럼 빠른 눈, 민첩성과 용기뿐이었다. 크레타에서 발견된 투우사 프레스코화에는 황소 한 마리와 선수 세 명(두 명은 여자)이 그려져 있었다.

 

 

 

 

 

 

 

 

 

 

 

 

 

 

 

 

  

 

세계 역사적 사라진 대륙 고대 미스테리 불가사의 - 아틀란티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jEvEZfxX4s 

 

버뮤다 삼각지의 해저에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발견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YIR5f0t-M 

 

1만년 전 지구에 핵전쟁이 났었다? 인류학자들끼리 논란중인 지구리셋 설  

https://www.youtube.com/watch?v=yta3EX8WDyg 

 

해저에서 발견된 초고대 문명의 유적 -지구의 역사는 수정되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xS3UXoY7FA

 

해저 3000 미터에서 발견된 초거대 고대 도시의 흔적 

https://www.youtube.com/watch?v=Ig-BnV7Vf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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