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

2018. 8. 15. 12:07책 · 펌글 · 자료/역사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인의 영웅들 ─

 

 

 

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 

2008. 12. 17

 

<그리스신화>보다 더 재미있고, <로마인 이야기>보다 더 스펙터클하다!
머릿속에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가 쏙쏙 들어오는 착한 교양역사서


 

『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 |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인의 영웅들』. 서양문명의 발판을 닦은 그리스, 대제국을 이룩한 로마. 그 찬란했던 역사에는 역동적으로 삶을 설계하며 철학과 문학, 과학, 정치를 탄생시킨 영웅들이 있었다. 이 책은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인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문학의 시조 호메로스, 많은 제자를 양성한 철학자 플라톤, 자마 전투에서 로마의 공화정을 지켜낸 스키피오. 그리고 탈레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키케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혼돈에서 질서를 찾아낸 문명의 선구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인물들의 장단점은 물론 시대적 배경과 상황 설명으로 각각의 사건을 유기적으로 엮고 있다. 서양 문명의 뿌리지만 수비게 이해되지 않았던 그리스, 로마의 역사. 역동의 시대를 살다간 12인의 영웅들을 통해 그리스 문명의 발생부터 동로마의 멸망까지 그리스 로마사를 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 칼 J. 리차드

저서(총 2권)
현재 라파예트 소재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제국의 사상사를 전공했으며, 글쓰기, 철학, 정치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통섭했다. 일찍이 서양 문명을 이룩한 그리스 로마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 로마사가 현대에 미친 영향을 다방면에서 조명했다. 대중을 상대로 그리스 로마사의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었다. 저서로는『창시자와 고전:Greece, Rome, and the American Enlightenment.』과 『미국이념을 위한 전쟁:A Brief History of a Nation's Thought』이 있다.

 

 

 

 

머리말



제1인 호메로스 서양 문학의 시조


그리스의 본토 미케네에서 피어난 문명
문명 파괴의 결과 도래한 암흑시대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영원히 계속될 호메로스의 영향

제2인 탈레스 서양 과학의 창시자


최초의 철학ㆍ과학의 전문가
탈레스 사상을 이어받은 그리스 후계자들
근대 과학자들에게 이어진 탈레스의 정신



제3인 테미스토클레스 그리스 문명의 방어자


애국심을 고취하고 단결하라
자유를 사랑하고 신을 찬양하다
단합과 분열 속에서 꽃핀 그리스 문화
페르시아, 그리스를 넘보다
전략과 전술의 승리
패권을 손에 쥔 바다의 제왕
자유의 힘을 증명한 테미스토클레스의 유산



제4인 페리클레스 민주주의 개혁자


전쟁의 승리가 가져다준 변화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다
아테네에 불어닥친 시련
민주주의 초석이 된 페리클레스의 유산



제5인 플라톤 서양 철학의 시조


법은 부모보다 더 존경할 가치가 있다
아카데메이아에서 이데아를 꿈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정신적 평등을 외치다
간소한 생활 속에서 영혼의 평화를 찾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모든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의 영향



제6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스 문화의 보급자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대제국의 꿈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마케도니아의 야망
흔들리는 대왕의 전설
대제국이 낳은 동서양의 조우
그리스 문화를 변모시킨 알렉산드로스의 유산



제7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로마 공화정의 수호자


그리스 문화를 사랑한 민족
로마를 일으킨 불굴의 정신력
로마, 이탈리아를 정복하다
성장한 공화정, 개혁을 단행하다
로마, 카르타고와 충돌하다
역장과 역장의 뜨거운 승부
대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스키피오의 유산



제8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공화정의 파괴자


동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다
세계 최고의 대국으로 자리잡다
농지개혁을 일으킨 형제는 용감했다
폼페이우스 대 카이사르
로마 독재관의 최후
독재를 낳은 카이사르의 유산



제9인 키케로 정치가, 철학자, 그리고 공화정 순교자


공화정을 옹호하다
제2차 삼두정치의 희생양
수사학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
덕망 있는 정치인 키케로의 유산



제10인 아우구스투스 로마 제국의 설립자


안토니우스 대 옥타비아누스
로마 최초 황제가 연 평화의 시대
폭군의 등장, 로마를 뒤흔들다
로마문명을 회복한 아우구스투스의 유산



제11인 타르수스의 바울 기독교 복음주의자


메시아의 출현을 예언하다
민중의 지지를 받은 유명인사
이방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다
로마인을 움직인 기독교의 승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인간적인 서양 사회를 이룩한 바울의 유산



제12인 아우구스티누스 기독교 신학자


대로마 제국 몰락하다
고대문화 최후의 위인
중세 문화를 탄생하게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

 

 

 

 

 

 

 

 

 

출판사 서평

 

세상에 대한 탐구심을 잃지 않고
보다 큰 세상을 꿈꿨던 영웅들의 이야기
「머릿속에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가 쏙쏙 들어오는 착한 교양역사서」


서양사의 철학, 문학, 과학, 정치를 탄생시킨
12인의 영웅을 알면 그리스 로마사가 통으로 보인다!

 

 

서양문명의 발판을 닦은 그리스와 대제국을 이룩한 로마에는 누구보다 앞서 갔던 선구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의 업적은 현대문명의 씨앗이 되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 혹은 '최고'의 수식어를 단 그들을 우리는 영웅으로 기억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모든 소설은 호메로스에게 빚을 지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그들을 기리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부터 로마까지 두각을 드러낸 12인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사를 정리했다. 호메로스, 탈레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플라톤, 알렉산더 대왕, 스키피오, 카이사르, 키케로, 아우구스투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 문명의 발생부터 동로마의 멸망까지 인과관계에 따라 그리스 로마사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12인의 그리스 로마인들은 서양 문명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세상을 총체적으로 변화시켰다. <벤허>부터 <글래디에이터>까지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끊임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 격동의 시대에서 남다른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제자를 양성한 레슬링 선수 출신의 철학자 플라톤, 20세에 왕위에 올라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알렉산더, 자마 전투에서 로마의 공화정을 지켜낸 스키피오, 그들의 삶은 역동적이었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도 사람이기에 그들의 유산에는 중요한 업적들과 동시에 비통한 과오들도 들어 있다. 온화하고 유능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 평화의 시대를 열었지만, 로마가 제국적인 정부 체제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칼리굴라와 네로와 같은 폭군들이 등장하게 했다. 이 책은 이러한 인물들의 장단점을 드러냄은 물론, 시대적 배경과 상황 설명으로 각각의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묶었다. 이를 통해 그리스 로마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스 문명 발생부터 로마의 멸망까지, 다양한 분야를 모두 독파한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하면 수많은 전투와 사건들부터 떠올라 쉽게 정리가 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 어느 로마사보다 친절하고 쉬운 이 책은 익숙한 인물을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그리스와 로마사를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이미 많이 다루어진 로마사뿐만 아니라 그리스사를 철학,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뤄 전반적인 서양문명의 뿌리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서양문학의 시조 호메로스 편에선 고전을, 서양 철학의 시조 플라톤 편에서는 철학을, 민주주의 개혁자 페리클래스 편에선 정치를, 핵심 인물과 사건으로 헷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주요한 사건과 전쟁이 챕터 별로 잘 나누어져 있고 그에 맞는 풍부한 그림자료가 설명을 돕는다. 각각의 인물을 통해 그리스 로마의 한 단면이 아니라 서양 역사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테미스토클레스가 거만하고 지조가 없으며 욕심이 많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쟁 이후에 그는 아테네 함대를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여러 도시들로부터 돈을 갈취하여 사욕을 채우려고 했다. 그럼에도,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를 승리로 이끌고 아네인들에게 강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 그의 업적이 강한 후폭풍을 이끌었음은 반박할 수 없다. 페르시아 전쟁의 결과를 군주정에 대한 민주정의 승리로 해석하면서,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국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다수의 권력을 훨씬 더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무적의 페르시아 대제국에 대한 그리스의 공화국들의 승리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공화주의자들을 고무했다. 가장 유명한 예로 그로부터 2천 년 후에 당시 가장 큰 대제국에 맞서 겉보기에 가망 없는 투쟁을 전개한 미국 혁명론자들을 들 수 있다. 또 이 책은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등장한 그리스 로마의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자세한 배경 설명과 함께 다시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2007년 개봉작 <300>에 등장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왜 300명의 전사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흥미로운 궁금증을 채워줄 답이 모두 담겨 있다.


21세기에도 그리스 로마의 역사는 계속된다!


21세기에 왜 그리스 로마의 역사에 주목하는가. 그리스인들은 근대의 과학적, 수학적 지식의 핵심을 이끌어냈고, 드라마와 시, 산문, 미술과 건축 등 서양의 예술 형식들을 확립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그리스와 로마 시인들의 작품의 토대가 되었고, 중세와 근대의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그리스에서 연극이 발전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대중적인 오락 형태인 텔레비전 프로와 영화의 선구가 되었다. 또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근본문제들을 명료화하고 눈부신 여러 해결책들을 제시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철학적 담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국민주권과 자연법 이론과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기반이 되는 혼합정체론도 형식화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의 가설들을 현실화시키고 수정하여 서양 세계 도처에 전해주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들이다. 우리의 법, 문학, 종교, 예술은 모두 그리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의 말처럼 현대의 세상은 동서양 구분 없이 그리스 로마 문화에 어느 정도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더 보태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 로마사의 다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그리스 로마를 뒤흔든 12인의 영웅들


1인) 서양 문학의 시조 - 호메로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장가라고 믿는 서양 문학의 시조는 키오스 섬 출신의 장님 시인 호메로스다. 유럽 문학 최고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남겼다.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 그 후의 문학 ·교육 ·사고(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고, 로마제국과 그 후 서사시의 규범이 되었다.

2인) 서양 과학의 시조 - 탈레스


물리적인 우주를 규정하는 자연적인 원인들을 발견하기 위한 탐색을 시작한 이가 밀레토스의 탈레스였다. 탈레스와 그의 그리스 후계자들은 더러 실수는 했지만, 당시의 소박한 기술 상태를 고려할 때 기대 이상의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켰다. 자신들의 이론이 가치 없는 것으로 드러났을 때조차 그리스인들은 후대의 과학자들을 위해 물질의 구성요소나 변화의 성질, 번식과 유전과 같은 수많은 과학의 근본 문제들을 규명하고 명확히 설명해 놓았다. 더 중요하게는 근대 과학자들이 인간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과학적 전망과 방법을 제시했다.

3인) 그리스 문명의 옹호자 - 테미스토클레스


페르시아 전쟁 시기의 아테네 지도자인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입을 좌절시켜 그리스 문명을 구해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의 도시들을 자신의 거대한 제국에 편입시켰더라면 그리스 정신은 말살되었을 것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라우리움 은광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군함건조에 충당하도록 민회(民會)를 설득했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조직하여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쳐 승리로 이끌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극적인 승리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활짝 꽃피울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4인) 민주주의 개혁자 - 페리클레스


페리클레스의 영도 아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절정에 달했다. 아테네는 일반 시민들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권력을 소유한 참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또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명실 공히 그리스 세계의 맹주로 군림하게 되었다. 페리클레스 시기에는 세계의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미술과 건축, 위대한 세 비극작가, 고대 세계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 그리고 최초의 역사가들이 빛을 발한다. 페리클레스의 정치 아래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그리스 아케익 시기의 절정인 동시에 서양문명의 탄생을 이룩했다.

5인) 서양 철학의 시조 - 플라톤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대개 물리적인 우주의 법칙을 탐구한 과학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철학'이라고 규정하게 된 여러 논점들을 정교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인물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주의는 서양 역사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대립되는 모든 철학도 그에 반대하여 형성되었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의 논의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철학적 담론을 위한 용어들을 정립한 사람도 다름 아닌 플라톤이었다.

6인) 그리스 문화의 보급자 - 알렉산드로스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당시까지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다. 그의 용모는 사자 갈기를 닮은 금발에 한쪽 눈은 청회색이고 또 한쪽 눈은 짙은 회색이었으며 뾰족한 치아가 특징이었다. 그는 목소리가 칼칼하고, 머리를 약간 들어 왼쪽으로 기울이고 기운차게 걸어 다녔다. 그는 그리스의 언어와 이념을 세계 각지로 퍼뜨렸고, 이로써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화가 융합된 거대한 '헬레니즘 세계'가 이루어졌다.

7인) 로마 공화정의 옹호자 - 스키피오


테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80년에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문명을 수호한 것과 마찬가지로, 스키피오는 기원전 202년에 자마 전투에서 로마의 공화정을 지켜냈다. 스키피오의 승리 덕분에 카르타고가 아닌 로마가 서양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를 수정하고 보급하여 결국엔 기독교를 지중해 세계 전역과 서유럽에 전한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오로지 다른 민족들의 업적을 전파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서양문명에 실질적인 공헌을 했다. 그들의 언어와 법률 및 건축은 아직도 서양의 모든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8인) 로마 공화정의 파괴자 - 카이사르


흔들거리는 로마 공화정을 마지막으로 밀어붙여 전제정치의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갈리아 지방을 정복한 후에 카이사르는 로마에 대해 독재권력을 행사하는 폼페이우스와 한판 대결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사르는 유능한 독재자임이 드러났지만 그의 허영과 야망이 암살을 불러왔다. 그로 인해 공화정은 더욱 혼란에 빠지고,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세계의 지배자가 됨으로써 제정이 시작되었다.

9인) 정치가 철학자, 그리고 공화정 순교자 - 키케로


고전 문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아마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요 철학자인 키케로일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웅변가들 가운데 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공화정의 순교자로 여겨지는 키케로는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정치가들의 역할 모델이 되었다. 국민주권과 자연법, 및 혼합정체에 관한 그의 웅변적인 연설과 저술들은 서양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이론들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10인) 로마 제국의 설립자 - 아우구스투스


로마는 공화정 때에 대부분의 영토를 확장했지만, '로마 제국(Roman Empire)'이라는 용어는 흔히 황제들이 로마를 다스리던 시기(BC 27~서기 476년)를 일컫는다. 이들 가운데 최초의 황제가 아우구스투스이다. 그는 매우 온화하고 유능하게 제국을 다스렸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대체로 만족했다. 세 차례의 피비린내 나는 유혈 끝에 아우구스투스가 회복시킨 제국의 질서와 평화, 번영이 그리스 로마 문명을 절멸에서 구해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른 한편, 아우구스투스의 바로 그러한 성공의 발판 위에서 칼리굴라와 네로, 같은 광기 어린 지배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1인) 기독교 복음주의자 - 바울


타르수스의 사울 파울루스는 그리스어로 글을 쓴 유대인이지만, 또한 로마 시민이기도 했다. 예수를 제외하고 기독교의 생존과 궁극적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에 바울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없다. 신앙 의인 교리에 중점을 둔 이방인들에 대한 그의 복음전도는 신생 종교를 거대한 제국 전역에 급속도로 퍼지게 했다. 더욱이 여러 기독교 교회와 개인들에게 보낸 감동적인 서신들은 다가올 세대들에게 기독교 신학을 상세히 설명해주었고 신약성경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12인) 기독교 신학자 - 아우구스티누스


로마 시민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기독교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다. 그의 가장 위대한 신학적 논문인 <신국론>은 출판 당시 기독교가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를 500년 동안 우뚝 솟은 기독교 신학자로 만들어주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들은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열정적인 <고백록>은 서양 문학의 고전들 가운데 하나로 전해져 오고 있다.

 

 

책속으로

 

"모든 소설은 호메로스에게 빚을 지고 있다."라는 에머슨의 말은 호메로스 이래로 새로운 구성이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 조건의 보편성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다만 변하는 것은 개별적인 특수성뿐인 것이다. 사실상, <오디세우스>와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트랙Star Trek>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등장하는 '선장'은 줄곧 낯선 외계 생물들과 접촉하며 수많은 모험을 하며 자신의 배와 승무원들을 이끈다. 선장은 현명하지만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고 자만심이 강하다. 그의 호기심은 두 작품에서 모두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이들은 소모인원에 불과하다. 호메로스에게 경이감은 '상상의 과거'에 의해 제공되고 <스타트랙>에 있어서는 '상상의 미래'에 의해 제공된다. 따라서 시대가 바뀌었을 뿐, 호메로스는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서양 문학의 시조 - 호메로스 편에서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는 아테네인들에게 강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들이 보기에, 아테네는 마땅히 지녀야 하는 그리스 함대의 지휘권을 스파르타에게 양보했고, 페르시아의 동맹 제의를 거절했으며, 두 차례나 크세르크세스에게 지독한 보복을 당했다. 이는 모두 그리스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아테네의 참여 민주주의는 엄청난 역경들을 극복했고, 많은 시민들의 관심 덕분에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해냈다. 페르시아 전쟁의 결과를 군주정에 대한 민주정의 승리로 해석하면서,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국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다수의 권력을 훨씬 더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 문명의 옹호자 - 테미스토클레스 편에서

플라톤은 언어능력이 무척 탁월해서 그의 산문은 종종 호머의 시에 비견된다. 사실상 호머의 시는 그의 본보기였다. 우아하고 자유자재한 필치는 가벼운 것에서 엄숙한 문체까지 아우르고, 표현하기 까다로운 심오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종종 시적 알레고리를 사용했다. 도덕적 삶에 대한 찬양("내가 반드시 옳지 못한 일을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 나는 스스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편을 택할 것이다.")은 그를 서양 철학의 중심에 놓이게 했다.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 관해 이렇게 썼다. "그분은 언행일치를 통해 한 인간이 어떻게 선하고 동시에 행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유일한, 아니 적어도 최초의 사람이었다." 나중에 키케로는 "만약 신이 인간의 말로 이야기한다면, 플라톤처럼 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플라톤은 사후 자신이 사랑하는 아카데메이아의 정원에 묻혔다.
서양 철학의 시조 - 플라톤 편에서

마그네시아에서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3세를 무찌르는 일을 도운 이후에 스키피오는 뇌물을 대가로 안티코오스에게 유리한 평화조건을 제시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고발의 당사자는 무자비한 정적인 대(大)카토였다. 얄궂게도 자마 전승 기념일에 해당하는 재판 첫날에 스키피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유명한 승리를 신들에게 돌렸다. 그러고서 그는 오늘날까지 공화국을 위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능력과 의지를 한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바치러 카피톨리누스 언덕으로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시민 여러분, 그대들도 나와 같은 사령관들을 가질 수 있도록 신들에게 간청하러 함께 갑시다." 청중 전체가 스키피오의 뒤를 따랐고, 고발자들만이 휑한 포룸에 남게 되었다. 스키피오는 나머지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혐의는 기각되었다. 그는 캄파니아의 리테르눔으로 은퇴해 밭을 갈고 살면서 로마는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로마 공화정의 옹호자 - 스키피오 편에서

기독교는 사도 바울이 아니었더라면 사멸했을지도 모른다. 로마 시민권을 얻을 만큼 부유했던 그의 집안은 갈릴리의 기스칼라(Gischala) 출신이었지만 소아시아 동남쪽의 타르수스로 옮겨오게 되었다. 아버지에게서 천막 짓는 일을 배우던 총명하고 영적인 소년인 바울은 당대의 가장 훌륭한 랍비 중의 한 사람인 가말리엘 1세 밑에서 랍비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2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구부정한 다리와 매부리코에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졌으나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 - 바울 편에서

 

 

 

 

 

 

 

 

 

1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무대는 트로이 전쟁 중으로 설정되어 있는 반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나고 귀향하면서 겪는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일리아스>는 가장 경외받는 작품이고, <오디세이아>는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스의 육체적인 위용을 중시하는 반면,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지혜와 인내, 자제, 재간, 지적 호기심, 성실을 중시하고 있다. <일리아스>에서와 달리 평범한 사람들은 더 이상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호메로스를 문학적 천재로 만드는 특성은 무엇인가?

 

첫째, 호메로스는 자신의 관심을 정면으로 인간의 성격에 두고 있다.

둘째, 호메로스는 특수성을 보편성과 결합시켰다.

셋째, 호메로스는 결코 말이 많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 청중의 지성을 믿고서 어떤 결론들을 암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넷째, 호메로스는 서스펜스의 대가였다.

다섯째, 호메로스의 묘사는 생동감이 뛰어나다.

여섯째, 호메로스는 커다란 인류애를 보여준다.

일곱째, 호메로스는 강렬한 호기심과 인생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성서가 히브리인들을 단결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신들에 관한 의문에 답하고 도덕에 관한 논쟁을 해결함으로써 그리스인들을 통합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전쟁과 불화에도 불구하고 호메로스에 대한 애정과 경의로 자신들이 일체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탈레스(bc625-546)

-아낙시만드로스(bc610-545)

-피타고라스(bc582-500)

-크세노파네스

-레우키포스

-아낙사고라스

-히포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bc287-212)

-프톨레마이오스(100-170)

-갈레노스(129-199)

 

 

 

 

 

 

3

 

솔론의 개혁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4

 

테미스토클레스

 

 

제1차 페르시아 전쟁 (bc499-490)

제2차 페르시아 전쟁 (bc490-480)

           ... 마라톤전투(bc490)

제3차 페르시아 전쟁 (bc480-479)

          .... 테르모필레전투(bc480), 살라미스해전(bc480), 플라타이아와 미칼레 전투 (bc479)

 

 

 

 

 

 

5

 

페리클레스

 

 

                                         <펠로폰네소스전쟁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는 페리클레스> - 폰 폴츠의 그림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몰장병 추도사

 

 

나는 우리의 정부 조직이 이웃 국가들의 제도들을 모방하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본받은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demokratia)라고 부르는데, 이는 권력이 소수의 손이 아니라 전 국민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문제에서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공적인 책임있는 자리에 다른 사람보다 위에 둘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아니라 그의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국가에 봉사할 능력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정치적으로 빛을 못보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 생활이 자유롭고 개방적이듯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상 생활 또한 개방적입니다. 만일 우리 이웃이 자기 방식대로 즐긴다해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며, 또는 실제적인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불쾌한 표정조차 내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생활에서 대해서 자유롭고 관용적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문제에서 우리는 법을 준수합니다. 그 이유는 법은 우리가 존중할 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권위있는 자리에 앉힌 사람에게 복종하고 또한 법들 자체에, 특히 압제받는 자들을 보호하는 법과 불문법들을 복종하고 그것을 어기면 누구나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이 끝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하는 모든 종류의 여가를 선용합니다. 시, 희극, 음악, 운동 경기에서의 다양한 경연대회들과 제사들이 1년 내내 정기적으로 벌어집니다. 우리의 가정들에서 우리는 미와 취미를 발견하는데, 이것들은 우리에게 매일매일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우리를 염려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도시가 위대하기 때문에 모든 좋은 것들이 전 세계에서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오고, 그 결과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상품들처럼 외국의 상품들을 즐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듯 합니다.

그리고 군사적인 안전보장의 문제에서 우리와 우리의 적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몇가지 예가 있습니다. 우리 도시는 세계에 개방되어 있고, 우리에게는 적에게 군사적으로 유리할 지도 모르는 비밀 정탐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외국인들을 추방하는 제도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국가를 비밀스런 무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진정한 용기와 충성심으로 수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육제도에서도 우리와 저들의 차이가 큽니다. 스파르타 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용기를 기르기 위한 힘든 훈련을 받게 되지만 우리는 이런 훈련을 받지 않고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비록 자유롭게 산다고해도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위험도 헤치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스파르타 인들이 우리 나라를 침입할 때에 그들은 단독으로 오지 않고 모든 동맹국들과 함께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외 원정에 나설때에도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그 일을 수행하며, 외국 땅에서 싸울 지라도 자기들의 국가와 가정을 위해서 싸우는 적들을 패배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의 적들 중에는 아무도 우리의 전 병력과 대전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병력을 특수한 임무에 따라 육군과 해군으로 분산시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대도 우리의 적이 우리 군대의 일부와 접전하고 승리를 거두면 우리의 전체 군대를 격파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만일 패하면 우리의 전체 군대 때문에 패했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혹독한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느긋한 마음으로, 그리고 국가가 주입한 용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용기로서 위험에 자발적으로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이 확실히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래의 고난을 위해서 현재의 우리의 시간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고난이 우리에게 닥치면, 언제나 엄격한 훈련을 받는 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 용기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국가가 당연히 칭찬받아야 할 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또 다른 점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 사치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일들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유약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부를 자랑해야할 것으로 보기 보다는 적절히 사용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가난에 관해서 말하자면 아무도 가난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실제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일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대체로 자신의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전반적인 정치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이점이 바로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아테네 인들은 우리 자신의 시민단 안에서 정책을 위한 결정을 내리거나 정책들을 적절한 토론에 회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과 행동 사이에 불일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적절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기 전에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우리와 또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모험을 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미리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지로 인해 용감하고 생각하기 위해서 멈추었을 때 그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용감한 사람은 사람은 인생에서 감미로운 것과 고통스러운 것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그리고 나서 앞에 올 일들을 맞으러 아무 꺼리낌이 없이 나아가는 자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호감의 문제에서 우리와 대다수의 다른 국민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행을 받으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서 친구를 만듬니다. 이 점이 우리의 우정을 더욱더 신뢰있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계속적인 호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우리의 호의를 받은 사람들의 감사가 계속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에게 어떤 빚을 진 사람의 감정은 우리와 동일한 열정을 가질 수가 없는데 이는 그가 우리의 호의에 보답할 때에 어떤 것을 자발적으로 주려하기 보다는 빚을 갚으려는 의무감이 앞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서 유일무이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에 어떤 이익이나 손해를 계산해서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자유로운 관대성에 입각해서 행합니다.

이 모든 점들을 함께 고려할 때에 나는 우리의 도시가 그리스에 하나의 교육장임을 선언합니다. 내 생각에는 우리 시민들 각자는 인생의 모든 다양한 측면들에서 자신을 자기 인격의 정당한 주인이자 소유주로 보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이 점을 아주 품위있고 다재 다능하게 행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이 특별한 때(추도식)를 위한 공허한 자랑이 아니라 참으로 객관적인 사실임을 보이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우리 국가가 내가 앞에서 언급한 자질들에 힘입어 보유했었고,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힘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아테네인들은, 내가 아는 국가들 중에 아테네인들이 혼자서 지금까지 우리의 특성으로 간주되던 위대성을 시험해보는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습니다. 아테네의 경우에는, 그리고 아테네의 경우에만, 침입하는 적이 패배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어떤 종속민도 위상에 걸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배받고 있다고 불평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실로 위대함이야말로 우리가 남긴 제국의 표적이자 기념비입니다. 현재의 세대가 지금 우리에게 놀라듯이 미래의 세대도 우리에게 놀랄 것입니다.

 

 

 

 

 

6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사업은 그리스 문명의 범위와 규모를 크게 확장시켰다. 하지만 그의 정복으로 훨씬 더 넓은 지역에 그리스 문화가 보급되었을 때 그리스 문화 또한 변모되었다. 萬能人에 대한 시민들의 이상은 점점 확대되는 군사적, 경제적 전문성에 자리를 내주었다.

기병의 활용과 산악전, 정교한 노 젓기를 포함한 새로운 병법은 장시간의 훈련을 요구했다. 일반 시민들은 그러한 훈련을 감당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일상적으로 수행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병사들은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 되었고, 그리스 문화의 핵심에 놓여 있던 시민권과 자국의 방위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교역의 급증으로 훨씬 더 큰 富가 발생한 반면 폴리스가 전통적으로 장려해온 다양성은 훼손되었다. 값싸게 수입할 수 있는 많아질수록 스스로 생산할 줄 아는 지방민들은 적어졌고 기량은 떨어졌다. 급증하는 교역량과 교역으로 공적인 일에 관심을 덜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유지하려고 했던 미묘한 균형이 께졌다. 개인과 일반 세상이 폴리스를 대신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부분적으로 近東을 그리스化했지만, 또한 그리스 세게를 동방화하는데에도 기여했다. 이제 근동에서 자신을 신격화 하는 부유한 왕들에게 밀려 뒷전으로 나앉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그리스 세계가 로마에 의해 정복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