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모나코 - 1

2017. 8. 15. 14:37여행/남프랑스

 

 

 

1

 

 

 

이쪽은 아직도 니스 ─ !

 

 

 

 

 

작은 터널을 빠져나오면 이제부턴 모나코 왕국 ─ !

 

 

 

 

 

 

 

 

 

 

모나코 들어갈 때는  ‘입국료’가 없는 대신에 ‘일일 주차권’을 삽니다.

버스 주차장이 두 곳 있었는데, (처음에 내려놓은 곳과 나중에 떠나올 때의 주차장이 달랐음.)

주차장이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있습디다. 1, 2 (3)층으로.

 

 

 

 

 

 

 

 

 

 

 

 

 

 

손바닥만한 접시에 엑기스만 폭 쏟아놓은듯.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육로로 들어오면 돌산과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와 아늑하고 편안한 첫인상으로, 지중해를 통해 크루즈로 들어오면 프로방스에서는 보기 힘든 빽빽한 고층 건물들 덕분에 현대적인 첫인상으로 다가온다. 2월에는 몬테카를로 서커스, 5월에는 포뮬러 원(F1) 모나코 그랑프리, 7~8월에는 르 스포팅 섬머 페스티벌과 세계 오르간 페스티벌로 음악왕국으로 변모한다. 

- 上同 p198~

 

 

 

 

 

 면적 : 2㎢, (뉴욕 센트럴파크보다 작고,)

인구 : 36,000명,

언어 : 프랑스어, 이태리어, 영어,

1인당 GDP : 16만불, (세계 1위)

 

 

 

인구가 총 4만 명이 안되는데 군인과 경찰이 몇 명이라더라?

어린애 빼고, 노인네 빼고, 여자 빼고, 젊은 남자는 전부다 군경(軍警)이란 소리.

관광수입과 카지노서 뜯는 고리로 먹고사는 나라.

 

 

 

 

 

 

 

 

 

 

 

 

 

 

요런 사진이 하나 또 있었는데,,ㅋㅎ

 

 

 

 

 

 

 

 

 

지금 이건 첫번째 주차장

 

 

 

 

 

2

 

 

 

 

 

해양박물관

 

 

 

 

 

 

 

 

 

 

 

 

 

 

해양박물관 마당 한 귀퉁이에 앙증맞게 생긴 잠수정이 있던데, (실제로 작동이 되는..) 

임시 전시한 것 같습니다.

 

 

 

 

 

 

 

 

 

모나코 대성당

 

 

 

 

 

 

 

 

 

 

 

 

 

 

 

기둥이고 벽이고 전부다 일일이 매달려서 손걸레질 하네벼.

 

 

 

 

 

 

 

 

 

 

 

 

 

 

 

 

 

 

교회가 진짜 깨끗하고 산뜻합니다. 유럽의 교회들을 보면 전부다 어둠침침한데,,

이런 정도의 조명은 돼야만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있죠.

 

 

 

 

 

 

 

 

 

 

 

 

 

 

─ 위에는 그레이스 켈리, 아래는 그녀의 남편 레니에 3세 ─

 

본명이 그레이스 페트리샤 켈리(1929-1982)입니다. 라틴어로  Gratia Patricia로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결혼식을 올렸다는데 그 자리에 묻혔군요.

먼저 죽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합장을.......

 

 

 

 

 

 

 

 

 

 

이것은  치표.. 현재 국왕의 묘가 되겠죠.

더는 자리가 없으니 마지막이 되겠네요.

 

 

 

 

 

 

3

 

 

 

 

 

 

 

 

모나코 왕궁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하고,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각에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겉 보기완 달리 내부는 엄청 화려하다는디. 못 봤넹~

 

 

 

 

 

 

 

 

 

 

왕궁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도 좋아요.

 

 

13세기 초 요새로 쓰이던 건물을 16세기에 궁전으로 화려하게 개조했는데, 프랑스의 여러 궁전을 모방한 인테리어가 곳곳에 눈에 띈다. 내부로 들어가면 헤라클레스 갤러리를 통과하게 된다. 이곳에서 보이는 '명예의 안뜰'은 퐁텐블로 성의 페라슈발 계단을 모방한 것이다. 왕실의 주요 연회장이며 가장 화려한 '왕좌의 방'은 방 전체가 붉은 색과 금색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거울의 방' 그리고 마자랭의 방, 그리말디 가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푸른 방 등이 볼만하다.  이 외에 자동차 전시관도 멋진 클래식 자동차로.......

- 『프랑스 데이』 p649

 

 

 

 

 

 

 

 

 

 

 

 

 

 

 

 

 

 

 

 

의외로 물건 값이 쌉디다. 프랑스보다 싸요.

저 큰 샌드위치가 5.5유로, 우리 돈으로 7천원.  엄청나게 싼 거지요.

하긴 샌드위치는 프랑스도 쌌지.

그러게???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일도 그렇고.... 각종 먹거리가 우리나라만 비싼 것 같넹?

 

 

 

 

 

 

 

3

 

 

 

 

 

 

 

 

우측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원입니다.

 

 

 

 

 

 

 

 

 

 

 

 

 

 

 

 

 

 

 

 

 

 

 

 

 

 

모나코 왕이여, 지금 왕 노릇하는 애의 할애비쯤 되는.

 

 

 

 

 

 

 

 

 

 

저 건물이 아까 그 해양박물관이고,

오른편 나즈막하게 보이는 건물이 버스주차장 (지상과 지하로 5층이든가 6층이든가.)

 

 

 

 

 

 

 

 

 

 

정원이 아담합니다. 크진 않죠.

 

자, 이제 점심 먹고 다시 니스로 나가서 기차 타고 파리로 갑니다.

오늘 중에 파리 야경을 봐야하는데, ,도착시각이 어찌 될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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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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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켈리는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1951년도부터 1956년도까지 고작 5년 동안만 영화배우로서 활동했지만, 그녀가 남긴 족적은 엄청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레이스 켈리는 5년 동안 ‘하이눈’ ‘이창’ ‘모감보’ ‘나는 결백하다’ ‘다이얼M을 돌려라’ ‘갈채’ ‘백조’ 등 총 11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던 걸작품들이라서, 전세계의 수많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환희를 안겨주었고, 그레이스 켈리는 당대 허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5년 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은 한결같이 큰 명성을 남긴 명작품들로서, 지금까지도 당대의 걸작품이라고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들이다. 명배우 클라크 게이블과 함께 출연한 영화 ‘모감보’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레이스 켈리는 뛰어난 미모와 눈부신 연기력으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고, 게리 쿠퍼와 함께 출연한 영화 ‘하이눈’은 내용이 알차고 감동적인 서부영화로서 ‘서부영화의 백미’라는 칭송을 받고 있으며,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이창’은 공포스릴러물의 최고 수작으로 손꼽히는 영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토록 1950년대 전반 5년이라고 하는 짧은 기간 동안 선굵은 걸작품들에 출연하면서,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최고 미녀배우로 명성을 떨쳤던 그레이스 켈리는 1956년 갑자기 모나코의 레니에왕과 결혼을 발표해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그해 4월 레니에왕과 전격 결혼함으로써 26세의 나이에 영화계에서 완전 은퇴하고 만다.

 

그레이스 켈리는 아름다운 미모와 중후한 연기력으로 1950년대 미국 허리우드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세계적인 미녀스타였는데, 너무나도 일찍 결혼해서 허리우드를 떠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크나큰 아쉬움과 미련을 남겨주었던 배우로도 유명하다. 어쩌면 다른 허리우드 여배우들과는 달리 그녀가 25세라고 하는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을 이유로 영화배우를 은퇴했던 것이, 그녀에 대한 애착을 더 크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한다.

허리우드 영화계를 은퇴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왕국의 왕비로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레니에 3세와의 사이에 두딸 케롤라인과 스테파니, 그리고 아들 알베르 등 세명의 자녀를 낳아 모나코왕국의 여주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화려하고 행복하게만 보였던 그레이스 켈리는 1982년 9월 돌연 모나코 모나코빌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52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함으로써, 전세계인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만다. 그런데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과 관련해서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녀의 사망에는 모나코왕실이 개입되어 있다는 ‘음모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청순하고 우아한 미모를 갖춘 그레이스 켈리가 허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막 올라섰을 무렵에, 약삭빠른 레니에왕이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로 그녀를 현혹시켜서, 결혼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작은 최빈국이었던 모나코왕국이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가 된 이후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부자들이 방문하고, 피서를 즐기는 관광대국이자, 경제부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모나코의 레니에 왕과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은 세기적인 정략결혼이자, 사기극이며, 사전에 기획된 음모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레이스 켈리 때문에 모나코가 경제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왕실전문작가 로버트 레이시의 주장에 따르면, 모나코의 레니에왕이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한 것은 순수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고 하며, 사전에 철저히 기획된 음모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당시 모나코왕국은 재정적으로 큰 위기가 닥친 상태였다고 하며, 레니에왕에게 후사도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에게 합병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원래 모나코왕국은 프랑스의 한 공국에 지나지 않았던 작은 지방국가였다. 1950년대 전반 프랑스와 모나코의 협정에 의해서, 앞으로 레니에 3세에게 후사가 없거나, 모나코의 재정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프랑스에 귀속시킨다는 약정이 체결되었다고 한다. 당시 국가의 재정고갈과 경제불황 등 큰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었던 모나코는 영영 프랑스에게 귀속되어버릴 큰 위기에 빠지게 됐다. 

 

모나코의 왕국과 주권을 계속 유지시키기를 원했던 모나코의 레니에왕은 선박재벌이었던 오나시스를 만나 중대한 협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선박재벌인 오나시스는 모나코에서 가장 큰 경제계의 거물이었다고 한다.  오나시스는 레니에 왕에게 모나코왕국을 계속 존속시킬 수 있는 묘안을 하나 제안했다고 한다.

 

경제상황이 악화된 모나코를 재건시키기 위해서, 허리우드의 최고 미녀 배우를 배우자로 삼으라는 제안이었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있는 허리우드 미녀스타를 모나코의 왕비로 맞이한다면, 전세계의 메지저급 언론과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됨으로써, 관광도시로서의 모나코를 크게 홍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나코 왕비를 전면에 내세워서 유럽의 정치계 거물와 경제계 거물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벌여나간다면, 유럽의 부자들을 모나코의 카지노장과 휴양지역으로 많이 유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나코의 쇠락을 막기 위해서, 레니에왕과 오나시스는 사전에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고 하며, 두사람의 음모에 의해서, 레니에왕과 그레이스 켈리의 세기적인 결혼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레니에왕과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은 사전에 고도의 전략과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정략결혼’이자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결코 레니에 왕의 순수한 사랑은 아니었다고 로버트 레이시는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레니에왕과 오나시스 두사람이 음모한 데로,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가 된 이후, 모나코의 경제상황이 크게 개선되어서, 모나코는 프랑스와의 합병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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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도 의문투성이인데, 로버트 레이시의 주장에 따르면, 그레이스 켈리의 사망 또한 레니에왕과 모나코왕실이 사전에 음모해서 일으킨 인위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그레이스 켈리는 레니에 왕과 결혼해서 모나코의 왕비가 되었고,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살면서 행복해 보였지만, 실제로 그녀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겉으로만 행복한 척 연기를 했다고 하며, 그녀는 규율이 엄격한 왕실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모나코 왕실에서 그녀는 시어머니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다고 하는데, 모나코 왕비가 쓸 수 있는 왕비 면류관인 ‘티아라’를 시어머니의 반대로 한번도 써보지 못했다고 한다.

 

모나코왕실에서 그레이스 켈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적들과 견제세력에게 둘러쌓여 있었다고 한다. 원래 성격이 자유분방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엄격한 궁중법도를 지켜야만 하는 왕실생활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고, 오랜 기간 동안 외롭고 소외된 느낌으로 살아갔다고 한다.

실제로 그레이스 켈리는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걸려서, 괴로운 생활을 보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왕실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한 우울증까지 걸린 그레이스 켈리는 알콜중독과 약물중독에 빠지게 되었고, 파티에서 만난 젊은 남자들과 염문설까지 뿌리고 만다.

 


그러던 1982년의 어느날 그레이스 켈리는 휴가에서 돌아오던 도중 의문의 자동차사고를 당하게 됐고, 곧바로 사망하고 만다. 모나코의 산간도로에서 자동차를 몰고가던 그레이스 켈리는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서 사망하고 말았으며, 차에 함께 타고있었던 딸 스테파니 공주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고 한다. 


이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레이스 켈리의 운전 실수 때문에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다고 알려졌지만, 의혹스러운 부분들이 많이 있다. 로버트 레이시 등 일부 음모론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만년에 알콜중독에 빠지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등 왕실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그레이스 켈리를 모나코왕실에서 음모를 꾸며서 살해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활용 가치를 상실하고 모나코 왕실에 골칫거리로 전락한 그레이스 켈리를 모나코의 왕실사람들이 제거해버린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레이스 켈리는 만년에 품위를 떨어뜨리고 방탕한 생활에 빠진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녀는 알콜과 약물중독에 걸렸을 뿐만아니라, 별장으로 젊고 잘생긴 남자들을 불러들여 은밀한 파티를 벌였으며, 숱한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레이스 켈리의 이런 방탕한 생활이 외부로 새어나가게 되자, 모나코 왕실의 권위와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어 버린 것인데, 이에 모나코 왕실의 어른들은 더 이상 효용가치도 없고, 골치 아픈 존재로 전락해버린 그레이스 켈리를 제거하기로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모나코 왕실에서 사전에 치밀한 계획하에 자동차사고를 기획했으며, 그레이스 켈리가 자동차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시켰다고 한다. 이같은 이야기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인데, 실제로 그레이스 켈리의 사망에는 의문점들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당시 그레이스 켈리와 딸 스테파니공주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고 난 후, 자동차를 몰고서 왕궁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몸이 성치않은 그레이스 켈리가 직접 차를 몰고간 것인데, 당연히 있어야 할 경호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뒤에서 경호원들의 경호차량이 뒤따라서 왔어야 하는데, 사고 당시 경호원의 차량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모나코왕실에서 고의적으로 경호원들을 떼어놨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경호원이 몸이 불편한 그레이스 켈리를 대신해서 운전했더라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또한 그레이스 켈리가 몰고있던 자동차가 산간도로에서 뒤집혀졌는데, 그 사고후 구급차가 오는 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사고차량은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자동차사고가 난 후에, 경찰의 현장조사나 현장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며, 사고 후 곧바로 자동차를 치워버려서.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할 수 없었다고 점도 매우 큰 의문점이다. 상부에서 경찰에게 사고조사를 하지못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이다. 

 

또한 그레이스 켈리의 딸 스테파니공주는 사고 후에 ‘엄마가 운전도중에 뇌졸중 때문에 정신을 잃어서, 자동차사고가 났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뇌졸중 같은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직접 운전을 하도록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며, 더욱이 경호원 한사람도 붙이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런 여러가지 의혹점들 때문에, 로버트 레이시 같은 음모론자들은 그레이스 켈리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사전에 기획된 모나코 왕실의 음모에 의해서 살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레이스 켈리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예단할 수가 없지만, 그렇게도 아름답고 우아했던 그녀의 죽음은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에게 크나큰 상처와 아쉬움을 남겼다. 자신의 이름처럼 평생 우아한 아름다움을 잃지않았던 그레이스 켈리는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으며, 극적인 드라마와도 같았다.

한때 허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라는 예명을 간직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1982년 52세의 젊은나이로 사망했지만,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허리우드에서 가장 우아한 미인이라는 타이틀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그레이스 켈리는 너무 예쁜 미모 때문에, 쇠락해갔던 모나코왕국를 살렸고, 너무 예쁜 미모 때문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녀의 우아한 미모는 그녀의 삶과 죽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출처: http://olibia.tistory.com/140 [올리비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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