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엑상프로방스 & 세잔 아뜰리에

2017. 8. 13. 16:09여행/남프랑스

 

 

 

 

 

 

아, 저 산이 바로 그 생빅투아르 렷다?!

 

 

 

 

 

 

 

 

 

 

세잔 아뜰리에는 시 외곽에 위치한 아담한 가정집 같습니다.

 

 

 

 

 

 

  

 

 

 

 

 

 

 

 

 

 

 

 

 

 

 

 

로컬가이드로 나온 아줌마.

실내가 협소해서 입장객수를 15명 정도로 제한합니다. 앞 팀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실내에서는 정숙해야 되고, 사진도 찍으면 안되고,,

웬걸?

후레쉬 터트리며 사진도 찍고, 소품도 막 만지고,.

경비원이 아예 계단에 나가 서 있더라는 ─

 

 

 

 

 

 

설명이 다 나와 있습니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바로 이 내용이예요. ^^*

이걸 미리 보여주는 건 조용히 하라, 그런 뜻인데 ─

 

 

 

 

 

 

 

 

 

 

 

창문으로 내다보면 이렇게 생빅투아르 산이 보여야 되는데,

나무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디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공?

 

 

 

 

 

 

 

 

 

 

 

 

 

 

 

 

 

 

 

 

 

 

 

 

 

 

 

 

 

 

 

 

 

촌티난다 그쟈? 나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됐지 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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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작은 작품전시실이 있더군요.

 

 

 

  

 

 

 

  

 

  

 

 

 

 

 

 

 

 

 

 

 

 

그림은 눈에 좀 익는 것 같긴 한데, 이름이 생소하구마잉~

 

 

 

 

 

 

 

 

 

 

 

 

 

 

 

 

 

 

집은 작아도 터는 넓구마잉~

여기는 작업만 하는 곳이고 사는 집은 시내에 따로 있었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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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 시내

 

 

프로방스 새들에겐 '노래하다'나 '지저귄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의 새들은 항상 수다를 떤다. 그것도 아주 호들갑스럽게.

촐랑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엑상프로방스 외곽에서 세잔의 아뜰리에를 둘러보고,

서둘러 그가 사랑한 카페 '뢰 되 가르송'으로 달려간다.

- 장다혜, 『최고의 휴식, 프로방스』p87

 

 

 

 

 

많이 됐어야 내 나이밖에 안됐을텐데, 이네들의 피부를 보면 완전 팔십 대드만......

 

 

 

 

 

세잔이 살던 집

 

 

 

 

 

 

 

 

 

 

 

 

 

 

 

 

 

 

 

  

 

 

 

   

 

 

 

 

세잔이 살던 동네랍시고, 액자집 같은 갤러리가 몇 개 있습디다.

 

 

 

 

 

 

 

 

 

 

 

 

 

생 소뵈르 대성당

 

 

 

 

 

 

 

 

 

 

 

 

 

 

 

 

 

 

 

 

 

 

 

 

 

 

 

 

 

 

 

 

 

 

 

 

 

 

 

 

 

 

 

제단화를 평소엔 이렇게 접어 놓는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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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더라?

 

엑상프로방스 인구가 10만여명 되는데, 그 중의 40%가 대학생이랍니다.

그래서 학문(법학)과 예술의 도시라는 ─

 

 

 

 

 

 

 

 

 

 

 

 

 

 

 

 

 

 

 

 

 

 

 

 

 

 

 

 

 

 

 

 

어쩌구 어쩌구 하며 작동하는 시계라 했는디.......

 

 

 

 

 

 

 

 

 

 

 

 

 

 

미라보 거리

 

 

카페와 플라타너스들이 어우러진 미라보 거리가 7월의 마지막 일요일 딱 하루, 와인축제의 장이 열린다.

달콤한 로제와인의 향기가 나를 덮쳐오고 뺨이 불그레한 사람들이 무장해제돤 행복한 표정으로 오간다.

2600여 년의 와인 역사를 가진 지역답게 프로방스의 여름과 가을에는 어디를 가나 공짜 와인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와인 축제가 열리지만 여긴 좀 특별하다. 이곳에서 100여 가지에 달하는 프로방스의 지역 와인을 총망라하여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42미터 너비에 440미터 길이로 쭉 뻗은 미라보 거리의 초입에서 와인글라스 하나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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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혜, 『최고의 휴식, 프로방스』p90

 

 

 

 

 

 

 

 

 

 

 

 

 

 

 

 

 

 

 

 

 

 

 

 

 

 

 

 

 

마르세이유로 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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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용의 남프랑스 예술기행

(11) 엑상 프로방스, 세잔의 영혼을 찾아서



폴 세잔의 아틀리에


 

엑상 프로방스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는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730km,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28km 거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지성의 도시, 대학의 도시로 프로방스의 자연과 예술의 향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으로 파리를 비롯한 북부지역의 프랑스인들이 즐겨 찾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6000년부터 농경사회가 정착한 이곳은 BC 103년 로마인에 의해 세워져 12세기 말에는 프로방스의 주도로, 15세기에 대학, 대법원, 주교구가 들어선 이 지역의 정치, 행정, 문화, 교육,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리에서도 항공,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고 이 지역의 주요 도시인 마르세유(Marseille), 아비뇽(Avignon), 님(Nimes), 아를(Arles) 등 어디서나 30분에서 2시간이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으로 항공, 철도, 도로 등이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어 여행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엑상 프로방스를 비롯한 주변 도시나 마을들은 어느 곳이나 가는 곳마다 독특한 색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마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여행객들을 맞는다. 특히 엑상 프로방스는 예술과 자연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카페와 우아한 건축물, 파리 못지않은 첨단 유행도시다. 또한 시내 곳곳에 20여개가 넘는 분수가 있는 물의 도시로 프랑스에서 가장 섹시한 도시라고 부를 만큼 매력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다시 이 도시를 찾게 만드는 것은 ‘근대 회화의 아버지’ 라고 일컬어지는 폴 세잔(Paul Cezanne, 1839년 1월19일~1906년 10월22일) 때문일 것이다.

  폴 세잔은 엑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났고 평생 프로방스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으며, 프로방스를 지극히 사랑했고 이곳에서 죽었다. 그는 엑상  프로방스 그 자체였다. 프로방스의 자연은 세잔의 스승이자 세잔이 숭상하는 모델이었다. 

  엑상 프로방스에 도착하면 먼저 찾는 것이 큰 분수가 있는 드골광장(Place du Général-de-Gaulle)이다. 이 광장에는 이 도시의 상징인 대형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어대고 있어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이 광장에서 세잔의 생가와 생트 빅투아르 산으로 가는 대로(大路)가 미라보(Cours Mirabeau) 거리다. 도로 폭이 넓은 이 거리는 아름드리 플라터너스 가로수가 이중으로 심어져 있어 한 여름에도 시원하고 아름답다. 또한 길가의 노천 카페는 이 도시의 명물이 될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냥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잔이 늘 다니던 단골 카페 레 드 가르송(Les Deux Garcons)도 이 거리의 명물이자 자랑거리다. 

  2004년 여름 나는 이 거리에 있는 갤러리에서 우연히 장 콕토(Jean Maurlce Eugene Cocteau)의 대형 기획전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렸다.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다가 우연히 장 콕도 특별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전지 면적 300m² 정도의 고급스러운 갤러리에서 열린 장 콕토 특별전을 통해 장 콕토가 시, 소설, 희곡,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에 있어서도 많은 작업을 남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거리는 길가의 쭉 이어선 카페도 아름답거니와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 또한 아름답다. 이 거리를 천천히 산책하면 몸도 마음도 절로 가벼워진다. 아니 이 거리는 결코 빠르게 지나칠 수 없다. 멋쟁이 여성도 많고 카페에서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너무 행복하게 보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로 하여금 절로 여유를 갖게 한다. 7월에는 세계적인 음악축제인 엑상 프로방스 세계 음악축제가 열려 도시의 활기를 더 한다. 

세잔과 아틀리에
  세잔의 아틀리에(musée Atelier de Paul Cézanne)는 구 시가지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생소뵈르 성당에서 700여m 더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드골광장이나 시청사(市廳舍)에서 걸어도 그리 먼 곳은 아니다. 레 로브(Les Lauves)라는 작은 숲속의 이 아틀리에는 자그만 2층 건물로 세잔이 죽을 때까지 사용했던 화실로 지금도 1906년 세상을 떠날 당시의 아틀리에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생전의 그의 모습, 그가 쓰던 망토, 외투, 베레모, 각종 화구들, 소품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자주 찾던 르 톨로네(Le Tholonet)와 생트 빅투아르 산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있는 곳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정원과 100여 평도 안 되는 작은 스튜디오에서는 은행가 아버지를 둔 덕택에 부자였지만 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세잔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세잔의 생가에서 5분 정도 가면 그라네 미술관(Musée Granet)이 있다. 19세기 이 지방 출신인 화가 그라네의 이름을 딴 이 미술관은 장 오귀스트 엥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등 주로 16~20세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과 그라네의 수채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미술관에서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엑상 프로방스를 사랑한 세잔의 그림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고작 유채화 8점인데 그것도 세잔이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지난 1984년에야 소장하게 되었다. 그라네 미술관은 세잔이 소년시절부터 즐겨 찾고 데생을 배웠던 곳이기도 하다.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바자렐리
  내가 그라네 미술관 보다 애착을 느끼는 곳은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8년 4월9일 ~1997년 3월15일)가 세운 바자렐리 재단 미술관(Foumdation Vasarely)이다. 시의 남쪽 마자랭 지구 교외에 있는 바자렐리 재단 미술관은 바자렐리의 회화처럼 신선하고 독특한 현대식 건물로 그의 대형 그림 수십 점을 포함해 대표작들이 전시, 수장되어 있다. 바자렐리는 1908년 헝가리 페치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에서 미술교육을 받았지만 주로 파리에 정착해 상업예술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40년대부터는 면밀히 계산된 기하학적 추상, 지각적 추상(perceptual abstraction)을 추구하는 20세기의 추상미술인 옵 아트(optical art)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품은 원근법적인 착란효과와 색채의 장력의 미묘한 변화와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보여주는데, 이 때문에 화면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효과를 낸다.



바자렐리 미술관(Foundation Vasarely)

 

  1959년 프랑스로 귀화한 바자렐리는 1961년부터 주로 프로방스에서 살았고 1970년에는 이곳에 바자렐리 재단을 설립했다. 높고 시원한 벽면, 현대적 감각이 뛰어난 미술관에는 그의 대표작 대다수가 소장되어 있어 이 지역의 또 하나의 문화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가까운 고르드(Gordes)에 이미 그의 중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교육용 미술관이 있지만, 바사렐리는 1976년에 무려 2500만 프랑의 건축비를 들여(전액 작가 부담) 바사렐리 재단 미술관을 설립했다. 그가 직접 설계한 재단 미술관은 길이 110m, 넓이 30m, 높이 12m나 되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세잔이 살았던 부팡(Bouffan)의 저택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젊어서부터 바우하우스 예술이론에 관심이 많았던 바사렐리는 그의 회화 작품을 엄청나게 확대하여 건축학적으로 미술관 건축과 통합된 대형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천정의 높이가 12m나 되는 전시실이 7개나 있고 또 다른 전시 공간, 연구실, 도서실, 회의실 등이 잘 갖추어진 현대적인 미술관이다.
바사렐리는 유명한 황색 선언문(manitest jaune)을 통해 "우리는 언제까지나 예술작품의 감상을 소수 엘리트에게만 한정시킬 수 없다. 따라서 내일의 내일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귀중품이 되든가 그렇지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조형 예술에 대한 관념이 지금까지는 수공예적인 제작과정과 유일한 작품이라는 신화에 좌우되어 왔다면 오늘날에는 이를 재창조, 대량생산, 대량보급의 관념으로 재조명 되어야 한다. 2차원의 세계에 고정된 영상의 찬란한 역사는 라스코 동굴 벽화로부터 추상화까지 이어진다. 미래는 우리에게 움직이면서 감동을 주는 새로운 조형미를 통해 행복감을 맛보도록 해준다." 고르도와 엑상프로방스의 바살렐리 재단 미술관은 그의 이러한 선언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세워졌다. 
바자렐리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초청 작가이자 공식엽서 아티스트로 여러 점의 기념엽서를 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생트 빅투아르 산 (La Montagne Sainte Victoire)

 



생트 빅투아르 산
  다시 세잔으로 돌아가서 세잔의 아틀리에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 산(Sainte Victoire, 성 빅트리아 산 이라는 뜻으로 흰 석회암으로 된 바위산이 특징)은 그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자 최후까지 매달렸던 모델로 세잔의 정체성을 갖게 한 세잔의 신앙과 같은 산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생트 빅투아르는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거나 몇 개의 산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우리나라 산과는 달리 1000m  높이의 연봉들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펼쳐져 있고 하얀 석회암이 뿜어내는 광채가 아름답다. 세잔이 독특한 시각으로 80여점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것을 봐도 생트 빅투아르 산은 세잔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생트 빅투아르 산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것도 세잔의 그림 덕분일 것이다.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캔버스에 유채, 55 x 45cm, 오르세미술관 소장

 

  한국에서 연극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시인인 피터 한트케(Peter Handke 1942~)는 세잔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생트 빅투아르 산을 찾아 세잔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와도 같은 웅장하고 깊이 있는 산문집 <불멸의 산 생트 빅투아르 기행, 세잔의 산을 찾아서>(원제는 생트 빅투아르의 교훈)를 썼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산을 직접보고 싶었다. 세잔이라는 위대한 화가가 즐겨 그린 이 산은 나에게 하나의 고정관념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생트 빅투아르 산을 실제로 보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상상을 온통 사로잡았고 나는 바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강렬한 쾌감이 수반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내 눈으로 생트 빅투아르를 확인하고자, 생트  빅투아르로의 여행길을 나섰다.”

  세잔이 그린 생트 빅투아르는 미묘함과 서정성으로 충만돼 있다. 리처드 베르디는 세잔의 산을 이렇게 말했다.
“산은 인간과 신 사이에 있는 정신적인 매개체로 세잔의 그림에서 산의 색깔은 모두 하늘을  향해 분출한다. 세잔은 그 색깔들에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여 그것이 하늘로 상승하면서 인간의 열망과 우주적 조화를 황홀한 결합으로 노래하는 듯하다. 후기의 생트 빅투아르를  그린 작품들은 창조의 초월적 아름다움이라는 신비한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 풍경을 두고 ‘세잔은 종교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장소. 붉은 색 지점. 졸라의 댐(에밀 졸라의 아버지인 토목기사 프랑수와 졸라가 건설한 댐)과 자드부팡(1859년 아버지가 사들인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 졸라의 저택)



세잔과 사과
  세잔에게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주제는 사과였다. 사과는 역사상 5개의 중요한 사과가 있다. 이브의 사과, 비너스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가 그것이다. 
세잔은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세잔은 사과로 그보다 더 큰 20세기 현대미술의 문을 열었다. 세잔은 늘 색채가 풍부할 때 형태는 더욱 풍만해 진다고 말했듯이, 그가 그린 사과에는 그의 이런 생각이 잘 담겨있다. 

 

  “사과란 과일은 매력적인 몸통과 아름다운 색깔로 인하여 인간의 오감에 두루 호소력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육체적 희열을 약속함으로써 성숙한 여신의 몸매를 연상하는 과일이다.  어쨌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과는 섹스의 환상과 이미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유럽의 민담, 시, 신화, 종교를 보면 사과는 성욕과 에로틱한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세잔에게 사과는 에밀 졸라와의 우정의 상징이자 추억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세잔과 에스타크
  세잔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자연의 소재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 그 중에서도 마르세유 서쪽의 작은 포구인 ‘에스타크’ 라는 어촌마을 이다. 세잔은 그와 가까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라울 뒤피(Raoul Dufy) 등을 초대하여 프로방스의 햇빛과 공기, 그리고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려 보도록 권했다. 르누아르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세잔의 제안에 선뜻 응했으며 이 지역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에스타크 초기에 세잔은 녹색과 황색이 어우러진 녹음(綠陰) 짙은 정경을 활기차게 그렸으나 후기에는 에스타크의 녹음보다는 주변 환경을 주로 그렸다. 세잔은 어머니의 특별한 배려로 이곳에 작업실과 거처를 마련하고 에스타크의 풍경을 수차례 그렸다. 세잔은 에스타크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아내가 된 모델 오르탕스 피케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세잔은 에스타크를 정말 좋아했으나 부두시설이 들어서고 전기가 들어오는 등 개발이 된 후에는 크게 실망해 이곳을 찾지 않았다.

세잔과 에밀 졸라
  엑상 프로방스나 세잔을 말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 있으니 소설 ‘목로주점’, ‘나나’, ‘대지’, ‘작품’ 등으로 유명한 작가 에밀 졸라(Emile Francis Zola 1840~1902)다. 졸라는  엑상 프로방스에서 중학교 때부터 세잔과 함께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세잔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에밀 졸라의 아버지 프랑조아 졸라는 대단히 야심찬 사업가로 엑상 프로방스의 댐과 운하, 마르세유의 신항구등을 건설한 토목기사였다.
 지독한 근시안이자 병약했던 그리고 외지에서 이사와 따돌림을 받고 있던 졸라를 세잔은 늘 감싸주고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곧 가까워졌고 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세잔의 아버지는 졸라와 어울려 다니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문학이나 미술에 오염된 배은망덕하고 타락한 인물로 여겨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잔은 엑상 프로방스 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1857년 시립 개방 미술 대학으로 학적을 옮겼다. 



에두아르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화’,
1868, 캔버스에 유채, 146.5 x 114cm, 
오르세미술관 소장

 

  졸라는 세잔과 30년간 끊임없이 교류하고 세잔을 파리 화단에 소개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엑상 프로방스에 머물 때도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많은 조언을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세잔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불행하게도  졸라는 세잔의 재능과 위대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세잔은 중학시절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등 언어학과 그리스, 로마, 프랑스 문학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폭넓은 독서 활동을 통해 인문학적 지식을 쌓았다.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시와 시극을 쓰는 등 문학과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특히 고전 문학에 관심이 많아  평생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 시대의 문학사조를 폭넓게 받아들였다. 

  졸라 또한 문학 분야  뿐만 아니라 미술평론가 입장에서 많은 글을 썼다. 그는 중학시절부터 그림과 조각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고 모델을 서는 등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졸라는 세잔의 위대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미술에 대한 안목도 뛰어나지  못했다. 당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앙리 마티스(Heinri Emile-Benoit Matisse),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에두아르 뷔아르(Edouard Vuillard) 등 쟁쟁한 작가들은 세잔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했지만 졸라는 세잔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결정적으로 1886년 졸라의 대작 장편 소설 ‘작품’에서 세잔을 실패한 천재 화가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우정은 끝났다. 졸라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만큼 세잔은 큰 상처를 받았고 분개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만약에 피카소가 없었다면 현대 미술사에 관한 책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폴 세잔이 없었다면 피카소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언급처럼 세잔은 피카소가 존경한 유일한 화가였다.
 지난해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베르트랑 퓌아르(Bertrand Puard)의 추리소설 ‘세잔을 위한 진혼곡’은 세잔과 졸라를 소재로 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프랑수아 그라네
  엑상 프로방스에서 활동한 대표적 화가로는 수채화가로 알려진 그라네(Francois Marius Grant 1775~1849)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그라네 미술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유명한 화가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 앵그르(Jeo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친했던 엑상 프로방스의 작가로 로마에 가서 17년간 머물렀고 파리에서도 활동했다. 또한 1830년 베르사이유 궁전의 미술관장으로 일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으며 그의 작품을 고향에 기증해 현재 그라네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그는 또한 종교와 중세 주제의 전문작가로 교회나 수도원의 내부와 버려진 기도원 등을 많이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앙드레 마송
  또 한 명 언급할 화가로는 앙드레 마송(Andre Masson 1896~1987)이다. 마송은 프로방스 와즈에서 태어나 스페인, 스위스, 뉴욕, 파리 등 여러 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입체파, 초현실주의, 액션 페인팅 등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앙드레 말로 문화상의 부탁으로 파리의 오데옹(Ode'on) 천정화를 그리기도 했다. 1947년부터는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를 그리기 위해 자주 머물렀던 르 톨로네에 정착해 작업실을 마련하고 프로방스의 풍경을 그렸다.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다리우스 미요
  엑상 프로방스 여행에서 기억해 두면 좋은 음악가로는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1892~1974)가 있다. 다리우스 미요는 유태계 프랑스인으로 1892년 엑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찰스 마리 비도르 (Charles Marie Widor 1844~1937)와 뱅상 댕디(Vincent d'Indy 1851~1931)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는 6인조가 생기기 전부터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와 친했으며, 6인조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30세이던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미국의 주류 음악이던 재즈를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뜨게 된다. 재즈의 세계를 알게 된 그는 아예 1940년 미국으로 이민 가 1947년부터 1971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Mills College와 파리의 Conservatory를 오가며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을 했고 제자를 길러냈다. 제자 중 스티브 라이흐(Steve Reich), 버트 바하라흐(Burt F. Bacharach), 데이빗 브루벡(David Brubeck), 모튼 수보튜닉,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등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 수두룩하다. 그는 12개의 교향곡과 20여개의 오페라, 4개의 발레곡, 그리고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독주악기와의 협주곡이 15곡, 현악사중주 18곡, 그 외에 다양한 악기들과의 실내악곡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재즈의 영향으로 조성(調聲)이 자유롭고 활기찬 재즈적 어법의 쓰임이 두드러진다. 그는 1974년 여름 제네바에서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 묻힌 엑상 프로방스를 빛낸 작곡자였다.(음악 평론가 임정빈)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엑상 프로방스를 여행할 때 세잔을 다룬 미술책과 함께 다음과 같은 책을 읽고 떠난다면 더 깊은 감동과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프로방스가 좋아 프로방스로 이주한 영국의 작가 피터 메일이 쓴 세잔의 미술품 도난을 다룬 추리소설 ‘세잔을 찾아서’와 세잔과 에밀 졸라를 소재로 한 베르트랑 퓌아르가 지은 추리소설 ‘세잔을 위한 진혼곡’, 또 피터 한트켄이 쓴 ‘세잔의 산을 찾아서’, 레몽 장의 작품 ‘세잔, 졸라를 만나다’ 등이다. 재미있고 읽기도 편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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