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6. 17:43ㆍ여행/남프랑스
내가 이 ‘몽생미쉘’을 언제 어떻게 알게됐냐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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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안개에 갇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오른쪽으로 목초지와 강을 두고 남쪽을 향해 가는 길, 차가 다니지 않는 포장 도로다.
어쩌다 개를 끌고 운동을 나온 동네 사람들과 스칠 뿐 길은 한가롭다.
저 안개 너머 어딘가에 돌로 지은 수도원이 섬으로 떠 있겠지.
안개가 걷히면 마법의 성이 모습을 드러낼까.
조금씩 안개가 물러간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강변에서 점심을 먹는다.
근처 빵집에서 산 바게트와 치즈 한 덩어리가 전부인데 12첩 반상이 부럽지 않다.
다시 배낭을 둘러맨다.
양들이 풀을 뜯는 푸른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지도에도 없는 개울이 곳곳에 흘러 이리저리 돌아가야 한다.
게다가 누군가 8t 트럭을 몰고 와 들이부었는지 거대한 똥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가도 가도 끝없는 똥밭, 그 밑은 늪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젖어 발이 푹푹 빠진다.
방수신발을 신은 나는 그나마 나은데 운동화를 신고 온 J양은 온 발에 똥물이 들었다.
"그래도 채식을 하는 양들의 똥이니까 사람 똥보다는 덜 독하겠죠?"
어설픈 위로를 건네지만 그녀는 상심한 티가 역력하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중세의 성으로 가는 길인 양 유혹했는데 똥밭에 구르게 하다니….
죄책감이 밀려드는 한편으로 이 길에서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슬금슬금 피어난다.
멀리서 보면 평화롭기만 한 초원의 풍경에 이런 덫이 있었다니….
똥밭에 지친 우리는 잡풀이 무성한 기슭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쉰다.
강을 건너온 바람이 이마를 쓸고 지나간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풀들 위에 몸을 누인다.
하늘이 가득 안겨온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내 몸이 점점 작아져 먼지처럼 대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대로 멈추어도 좋겠다 싶은 그런 시간.
오후 2시.
마침내 지평선 너머로 몽생미쉘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점처럼 작고 뿌옇던 실루엣이 조금씩 커지고 짙어진다.
똥밭도 벗어낫겠다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간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부부, 오늘 처음 만나는 도보여행자다.
노르망디에 사는 마리와 르루 부부는 올 여름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단다.
프랑스 중부 르푸이에서 시작해 레옹까지 걸었고, 내년 여름에 레옹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을 예정이란다.
나도 산티아고를 걸었다고 하니 몹시 반가워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부부가 되돌아와 우리를 부른다.
시간이 나면 꼭 노르망디의 집으로 놀러오라면서 주소를 건넨다.
역시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몽생미쉘 근처의 작은 마을 퐁토르송(Pontorson)에 도착했다.
일단 숙소를 잡고, 몽생미쉘을 향해 걸어간다.
물이 빠진 갯벌 위에 드러난 몽생미쉘은 왠지 처연한 얼굴이다.
단체 관광객들의 물결을 피해 성벽 뒤로 건너가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바다로 지는 해를 봤다.
어린 새 한 마리 물가에 오래 서 있고 갯벌 너머로 붉은 해가 넘어갔다.
새들이 태양 속으로 날아갔고 먼 데서 바람이 불어왔다.
젖은 노을이 하늘가로 번지고 있다.
매표소의 문이 닫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시간에 수도원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으로 어둠이 내리고, 갯벌은 어둠에 갇히고 있다.
수도원의 문은 잠겼지만 아쉽지는 않다.
30㎞를 걸어 도착한 이곳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고,
내 곁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감수성을 지녀서 더 매혹적인 J양이 있었고,
오래된 유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바다의 밤을 몰래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 김남희, 『유럽의 걷고싶은 길』(2008. 5) 발췌
파리에서 몽생미쉘까지는 버스로 5시간 - 서쪽으로.
여름에도 다소 쌀쌀한 노르망디 지역입니다.
이번에 운좋게, 아니 의도적으로 앞자리를 맡아서 이런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습죠.
일행분들께 죄송^^
그림재료로 쓰려고 여러 장을 찍었는데, (반추상으로 그려볼까나……?????)
잠시 차를 세워줬으면 좋겠더구만. ㅠㅠ
암요, 몽생미쉘은 원경이 근사하지요.
여기서 이 지역만의 특식이라는「거품계란과 오믈렛」을 먹었는데, 맛이 영 ─ ~~
나중에 보니까 원조집이란 데가 몽생미쉘 성채 안에 있더군요.
우리네 뚝배기 계란찜이 훠~~~ㄹ 낫습니다.
‘몽생미쉘’ 우체국도 있고,
이 집이 바로 그 ‘거품계란’의 원조집임.
오늘은 관광객이 퍽 적은 날인데도 이렇습니다.
만일 햇볕 쨍쨍한 더운 날에 관광객마져도 만석으로 들어차는 날에는 ─
“으아악!”
이름이 잔 다르크성당이라지?
(이곳에 교회가 몽생미쉘 수도원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 역사를 좌지우지한 여성이 두 명 등장한다는데 <-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이라는데,
실존인물이 이 잔다르크이고, 가상인물은… 어… (…… 누구라더라? 까먹었넹????
이들은 중국팀. 한국팀은 우리 뿐.
이번엔 현지의 한국인 가이드는 없었고 프랑스사람 로컬가이드가 나옵디다.
그러니까 롯데관광의 인솔자가 북치고 장구치고를 다.......
이러니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는 ─
프랑스의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반도에 있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은 한마디로 신비스럽다. 고속철 TGV를 타고 파리를 출발해 렌(Renne)역에서 내린 뒤 다시 한 차례 기차와 택시에 몸을 실어 도착한 몽생미셸은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건축물이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요새와 같은 몽생미셸의 자태는 적지 않은 흥분감을 전해줬다.
몽생미셸은 ‘聖 미카엘(St. Michael)의 산(山)’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초라한 목조 건물이었으나, 프랑스 왕과 노르망디 공국 (Normandie dukedom)의 도움으로 거의 1000년 동안 증축을 거듭해 오늘날과 같은 장관을 갖게 됐다.
몽생미셸이 있는 자리는 원래 ‘시시(Foret de Sissy)’라는 울창한 숲의 한 부분이었다. 갑자기 밀어닥친 해일과 오랜 시간 계속된 자연의 침식 작용으로 숲은 사라지고 바닷가에 위치한 섬으로 남았다. 멀리서 볼 때 견고한 성채(城砦) 같은 건물은 16세기에 건립된 수도원이다. 조용하고 외딴 지역이라 수도승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修道)하기에 좋은 장소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몽생미셸의 입구에 들어서면 ‘왕의 문(Porte de Roi)’이란 견고한 문이 나타난다. 이 문을 지나 좁은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들과 선물 가게·호텔·레스토랑 등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수도승들이 포도주를 마시던 술집, 잡화 가게들이 있던 곳이다. 언덕길의 돌바닥은 그동안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닳아 반들거린다.
15분 정도 천천히 오르면 성채와도 같이 견고하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수도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수도원은 16세기에까지 이르는 대공사를 거쳐 오베르 주교(主敎)가 세운 성당 자리에 세워졌다. 수도원 주변에는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 동상을 모신 성당을 비롯해 여러 석조 건축물이 있다. 3층짜리 고딕식 수도원의 내부는 미로처럼 꾸며져 있어 표지판이 없으면 처음 간 사람은 길을 잃기 쉽다. 수도원 문을 지나면 돌층계가 있고, 1·2층에는 순례자를 보살피던 방과 귀빈들을 접대하던 귀빈실, 기사의 방 등 여러 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다.
3층에는 보기 좋은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게 여겨진다. 창문으로는 노르망디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3층의 회랑(回廊)은 다양한 종교적 주제를 소재로 조각된 127개의 돌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돌기둥의 건축미 또한 돋보인다.
몽생미셸의 역사와 전설은 신비감을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708년 오베르 주교가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대천사 성(聖) 미카엘(생 미셸)을 만난다. 미카엘 대천사는 “커다란 돌이 있는 곳에 성당을 세우라”고 말한다. 오베르 주교는 바위 위에 성당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천사의 말에 의아심을 갖고 공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미카엘 대천사는 세 번째 꿈에 나타나서 손가락으로 오베르 주교의 머리에 강한 빛을 비췄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브랑슈의 박물관에 구멍 난 오베르 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면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이웃 마을에서 잃어버린 소가 몽생미셸 바위 위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드디어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위를 깎아 토대를 만들고, 이탈리아의 몽테가르가노(Monte Gargano)에서 화강암을 가져와 미카엘을 기리기 위한 성당을 지었다.
몽생미셸은 966년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리처드 1세 공작이 베네딕트 교단의 수도원으로 지정했다. 그 후 백년전쟁(1338~1453) 때에는 요새로, 프랑스대혁명 당시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이름난 관광지이자 조용한 수도원이다. 프랑스 정부 입장에선 이곳이 단지 폐쇄된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사용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한 해 250만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부각되는 것이 수익이나 지역사회 발전 면에서 모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몽생미셸은 처음에는 성당만 세워졌으나, 11세기와 15세기에 수도원 등 중후한 석조 건축물이 많이 축조됐다. 8세기에 시작된 공사는 1000년 동안의 증축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매력적인 광경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80m 바위 위에 솟아 있는 성당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57m. 아래서 올려다보면 육안으로는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있는 성 미카엘의 금빛 동상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발밑에는 죽은 용이 있는 성 미카엘의 모습은 흥미롭다.
- 허용선(사진가 겸 여행 칼럼니스트)
로마네스크에 고딕양식이 뒤섞인 ─
밖에서 보기완 다르게 성 내부가 엄청 큽니다. 미로로 연결된 복잡한 구조에다 ─
서산 간월도처럼 생긴 섬으로
암석 지반에다가 지은 것인데, 상부는 깎고 그 옆과 아래로는 기둥으로 받치고‥‥.
그래서 '층층이' '총총이' 거대한 기둥들이 다닥다닥 많습니다.
잠시 기획전시품으로 가져다 놓은 듯.
일종의 도르레.
감옥에 갇힌 죄인들을 시켜서 저걸 돌려서 식량 등을 들어올렸다는 ─
죄수들이 이 일을 좋아했다네요. 개평으로 읃어 떨어지는 게 있어서리.
바로 저 창문으로, 저 쇠사슬로 묶어서 들어올리는 것입죠.
공동묘지가 보입죠? 교회 성직자가 묻히는 자리일테죠.
일본어, 중국어 관광안내책자는 있는데 한국어로 된 건 없더군요.
다른 지역의 관광지에서도 다 그랬습니다.
(스페인이나 이태리에서는 한국어판이 꼭 있더구만은.......)
버스는 4키로쯤 떨어진 마을에 주차시켜야 합니다.
주차장에서 수시로 드나드는 무료셔틀버스를 타고 와도 되고, 이렇게 유료 마차를 타고 와도 되고,
이 사람들처럼 걸어 와도 되고,
신발 벗어들고서 갯벌로 들어오는 젊은이들도 더러 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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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이 멋진 곳인데. 해뜰 때 해질 녘도 좋구.
그러자면 여기서 1박을 해야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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