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606] 양구 이모부 대전 현충원에 묻히셨네

2016. 11. 29. 18:56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이제보니 이모부가 월남전 참전용사입디다. 

아시겠지만 참전용사라고해서 다 국립묘지 오는 건 아닙니다.

무공훈장을 받았거나 아니면 작전 중에 부상당해서 일정 등급 이상의 장애인이어야 합니다.

마침 대전 현충원으로 오게 된 덕분에 편하게 문상했습니다.

춘천에서 火葬해서 오니까 대전 도착 2시반.

1시 이전에 도착하는 분들의 단체합동안장식에는 참석 못하고 개별적으로 안장했습니다.

예전에는 일주일 단위로 묶어서 합동으로 안장을 했는데 지금은 매일 한다더군요.

대전현충원엔 아직 3년간의 여분이 있답니다.

전국의 모든 국립묘지가 포화상태랍니다.

 

안장과 관련한 모든 일을 현충원에서 알아서 해주니까 상주가 따로 할 일이 없더군요.

매점에서 꽃만 사다가 꽂으면 됩디다.

두 달쯤 뒤에 정식 비석을 세운다더군요.

나중에 이모도 돌아가시면 이곳으로 올 거니까,

양구 외갓집의 세 딸 형제가 모두 대전 근처에 묻히게 되는……. 

 

 

 

 

 

 

 

 

양구에서 외갓집식구 서넛과 교회 사람들 여남은 명이 함께 왔더군요.

그러니까 喪客이 우리까지 합쳐서 스물 댓 명쯤.

교회 예배로 장례치뤘습죠.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는 노래 제목이......

 

 

 

 

               

 

 

 

 

606장/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펌)

(S. F. Bennett 작사 · J. P. Webster 작곡) 

 

 

Kenny rogers sings..In the sweet bye and bye.


 

 

 

    서북지방 장로교단 전용《찬셩시, 1905》130장에 찰스 F. 하이젤(한국 이름 변하설 片夏薛, Chalres. F. Bernheisel,1874-1958) 선교사의 번역으로 처음으로 실린 찬송이다.

《찬숑가, 1909(곡조판)》252장을 스캔하여 올린다. 왜 곡조와 가사를 따로 실렸을까?  곡조 찬송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된다. 일본 찬송가는 아직도 가사를 따로 올려 두 페이지에 싣고 있는 게 그런 이유다. 곡조에만 치중하다 보면 가사의 뜻을 새겨보지도 않고 부르기 때문이다.

 

 

 

 

《찬숑가, 1909(곡조판)》252장 

편하설 선교사의 한국 사역 - 박종현 -

 

찰스 F. 하이젤 선교사는 1900년에 내한하여 42년간 평양지역 선교의 초석을 놓은 전도자요, 평양대부흥운동의 목격자이며, 평양신학교의 초석을 놓고 교회사를 가르쳤던 신학교수이며, 평양의 산정현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며 신사참배의 박해를 목격한 역사의 증인이다. 그는 1874년 미국 인디애나 주 컬버에서 출생하여 1900년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파견받았다. 그는 세계를 품고 세계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였다.

 

그는 1905년 헬렌 컼우드와 결혼하였으며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1958년 84세의 일기로 고향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일기를 통해 선교사들의 선교여정을 볼 수 있는데 하절기 휴가를 제외하면 계속 선교지역을 순회하며 회심과 교육을 위한 수고를 감당하였다. 그들은 순회선교를 통한 복음의 확신을 소명으로 알았고, 교리문답과 교회를 돌보는 일에 우선 강조점을 두었다.

 

또한 그는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과 기독교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01년 개교한 평양신학교와 1897년 개교한 숭실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며 후엔 평양외국인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5년 후 한국부흥운동에 관해서 소책자를 남겼다.

 

그는 평양대부흥운동을 사도시대의 오순절운동이 재현된 것으로 보고 특히 복음전도자 길선주목사의 부흥운동에 대해 증언하였다. 1936년 이후 신학잡지〈신학지남〉을 통해 로마 카톨릭교회를 비판하였다. 그 이유는 선교 초기에 겪었던 로마 카톨릭교회의 개신교박해와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대한 항거였다. 그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 중 참된 증보자와 사죄, 지상의 가시적 교회의 무오류성, 사도직 계승과 교황제도 그리고 연옥설과 사제독신주의 등을 비판하였다.

 

찰스 F. 하이젤의 신학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이다. 그는 종교개혁 사상가로 복음주의자로 오직 성경과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중심이요, 권위로 놓아가는 변증적 사상으로 한국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번역자 찰스 F. 하이젤 선교사 가족

  

 

이 찬송은, 미국의 샌퍼드 베넷(Sanford Fillmore Bennett, 1836~1898)이 1868년에 작사한 가사에 조셉 웹스터(Joseph Philbrick Webster, 1819~1875)가 작곡한 찬송이다. 작사자 베넷은 이 찬송 탄생의 계기를 이렇게 말하였다.

 

웹스터 씨는, 많은 음악가들이 그러하듯이, 풍부한 감성과 센스를 지녔는데 소심한 데가 있어서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그가 우울해 보이는 날이면 그의 의기를 살리기 위해 작곡을 하도록 가사를 주곤 하였다.

 

어느 날 그가 위스컨신 엘크혼(Elkhorn)에 있는 내 사무실을 찾아와, 난로 앞에 나를 등지고 앉았다. 나는 내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가서 물었다. “웹스터, 무슨 일 있어?” “별일 없어.” 그가 대답하였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It will be all right by and by.)

 

그 순간 전광석화 같이 시상이 떠올랐다. 내가 대답하였다. “얼마 있으면 즐거워질 거야. The Sweet By and By! 이거 좋은 찬송이 될 것 같은데?” “그래! 좋겠어.”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최대한 빨리 가사를 써 나갔다. 그리고 그에게 가사를 주었다. 가사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났다. 그는 테이블로 가서 5선지를 꺼내더니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꺼내어 멜로디를 연주하더니, 후렴을 추가하였다. 그가 내 방에 들어온 지 채 30분도 안 된 때였다. 우리 두 친구는 함께 이 찬송을 불렀다.

 

                                                                                                                       

   영어 원문                                      <21세기 찬송가>            오소운 사역(私譯             

There's a land that is fairer than day,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And by faith we can see it afar;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        믿는 맘 가지고 보오니

For the Father waits over the way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있을 곳 예비한 주께서

To prepare us a dwelling place there.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우리를 기다리시누나

Refrain                                           <후렴>                           <후렴>                  

In the sweet by and by,                        며칠 후 며칠 후                언젠가 우리는

We shall meet on that beautiful shore;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생명강 가에서 만나리

In the sweet by and by,                        며칠 후 며칠 후                언젠가 우리는

We shall meet on that beautiful shore.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생명강 가에서 만나리

 

 

작사자 샌퍼드 베넷

 

작사자 샌퍼드 베넷(Sanford Fillmore Bennett, 1836~1898)은 183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베넷의 시는 1850년대 일리노이주의 워크건(Waukegan)에서 발행되는「가제트」'Gazette' 지에 실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워크건대학과 미시건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는 2년 동안 리치먼드의 장학관으로 있었다. 1860년에 위스컨신주 엘크혼(Elkhorn)으로 이사하여 'Elkhorn Independent' 지의 편집차장 일을 하였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제40위스컨신지원병부대에서 복무하였다. 제대 후에는 엘크혼에서 약방을 하며 약학을 공부하였다. 1874년 러쉬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의사로서 20여년을 살면서 찬송시를 썼다.

 

 

 

작곡자 조셉 웹스터

 

 

작곡자 조셉 웹스터(Joseph Philbrick Webster, 1819~1875)는 1819년 뉴욕주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중음악 작곡자요 연주자였다. 그는 뉴욕에서 로웰 메이슨에게 작곡을 사사하였다. 1851년 그는 일을 따라 여러 군데 이사를 다녔는데, 1851년에 인디애나주 매디슨(Madison)으로, 1855년에는 시카고로, 1856년에는 위스컨신주 라신(Racine)으로, 마지막으로 1859년에 위스컨신의 엘크혼(Elkhorn, Wisconsin)으로 이사하였다. 그는 평생 동안 1,000 여 곡의 발라드를 작곡하였고, 찬송가도 많이 작곡하였다.   

 

아사 훌(Asa Hull, 1828~?)이 출판한《절제하는 기쁨의 책》'Temperance Glee Book, 1875' 102장에 이 찬송이 있는데 5절까지 있다.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가 출판한《성가와 독창곡 750곡집, 1889》'Sacred Songs and Solos: With Standard Hymns, Combined, 750 Pieces, 1889' 9장에 실려 있는데 3절 뿐이다. 외국 찬송들은 대개가 이를 따르고 있다.

 

 

 

《성가와 독창곡 750곡집, 1889》9장

《찬숑가, 1909》악보는 이 찬송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다음 글은 교역자들이 읽는《월간 목회》잡지에 100회 연재한 글 중에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부분을 옮겨 온 것이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란 표현

“전도사님, 우리가 죽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왜 ‘요단강 건너간다’고 말하지요? 성경 어디를 보아도 죽음과 요단강은 관계가 없던데요.”

“마침 찬송가 전문가이신 원로 목사님이 오셨으니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지."

 

"오 목사님,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로 된 우리 찬송에 대해서 질문이 들어왔는데, 목사님이 설명해주세요.”

“그건 아주 잘못된 오역이야. 내 1절만 영 · 일 · 중 3개국어로 흑판에 써 놓을 테니 보라구.”

There's a land that is fairer than day,  낮보다 밝은 곳 있구나

And by faith we can see it a fair;         믿는 맘 있으면 보인다 

For the Father waits over the way        있을 곳 예비한 아버지 

To prepare us a dwelling place there.    우리를 기다리시누나

In the sweet by and by                       머잖아 우리는

We shall meet on that beautiful shore.  생명강 가에서 만나리.

 

信んじて仰ぎ見る      믿고서 멀리 바라보는

搖かなる故鄕            머나먼 나의 고향에는   

主の備えたまいし      주께서 예비해 놓으신

永遠の住い有り。      영원한 나의 집 있도다

やがて我も                마침내 우리도

輝やく御國にて          빛나는 주의 나라에서

淸き民と                   거룩한 백성과

共に御前に立たん。    함께 주 앞에 서리로다 

有一地比日中更光彩,   해보다 더 밝은 저 곳을

雖遙遠我因信望得見,   믿는 맘 가지고 보오니

我天父在那地常等待,   있을 곳 예비한 주님이

早爲我備安宅於裡面    나 오길 기다리시누나

到日期我樂義             그 날이 오면은

同衆聖相聚會在美地.   나도 거기에 가 있겠네

 

“보다시피 어디에도 요단강이란 말은 없어.

이 찬송은 미국에서 작사 · 작곡된 것인데, 처음 우리 나라에 소개될 때

 'We shall meet on that beautiful shore'를 잘못 번역한 거야.

여기서 'beautiful shore'는 직역하면 ‘아름다운 강가’인데,

그 강이 요단강이라고 번역을 한 거야.

 

존 번연(John Bunyun, 1628-1688)이 쓴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에 사람이 죽으면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으로 표현하였고, 이 책이 세계적으로 애독되던 시절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고 번역한 것이라 생각되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의 동상

이 강은 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생명수 강가’야. 이 찬송이 처음 소개되기는 1908년에 장 ·감 합동 찬송가로 발행한 [찬숑가, 1908] 252장인데, 그 때 가사가 100여 년 동안 그대로 불려져서, 믿지 않는 사람도 누가 죽었을 때 ‘그 사람 요단강 건너갔어!’라고 말하게까지 되었어. 고쳐야 할 찬송인데 너무 입에 익숙해져서 비 성서적인 줄 알면서도 못 고치고 있어.”

 

“목사님, 그럼 224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과, 541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의 원가사에는 요단강이란 말이 있나요?”

 

“아주 좋은 질문이야. 224장은 1919년에 성결교에서 발행한 《신증 찬송가, 1919》 101장에 처음 소개된 찬송이고, 541장은 역시 《신증 찬송가, 1919》 111장에 소개된 찬송인데, 영어 가사는 같은데, 곡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이 달라졌지. 그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어.”

 

 

Face to face with Christ my Saviour,Face to face what will it be?

When with rapture I behold Him,

Jesus Christ who died for me.

Face to face shall I behold Him,

Far beyond the starry sky, (요단강이 아니라 하늘의 별들 저 너머)

Face to face in all His glory,

I shall see Him by and by.

 

 

 “목사님, 그럼 이 두 찬송에는 어떻게 요단강이란 말이 들어갔을까요?”

 “확언은 할 수 없지만 ‘며칠 후 며칠 후,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란 찬송이 1908년부터 10 여년 불린 시기에 번역을 하다 보니까 그리 된 게 아닐까? 왜냐 하면 [신증 찬송가]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일본어 찬송가 《임마누엘 성가, 1965》23장에도 ‘요단강’이란 말은 없어.”(아래 악보 참고).

 

 

《임마누엘 성가, 1965》23장

 

 

“목사님 하나만 더요. 226장의 ‘저 건너 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의 강도 요단강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던데요.”

“그것도 계시록 22:1-에 나오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야. 원어 가사를 소개하지.”

 

There's a land beyond river,      

That we call the sweet forever,  

And we only reach that shore by faith's decree;

One by one we'll gain the portals,

There to dwell with the immortals,

When they ring the golden bells for you and me.

Don't you hear the bells now ringing?

Don't you hear the angels singing?

'Tis the glory Hallelujah Jubilee.

In that far off sweet forever,

Just beyond the shining river,

When they ring the golden bells for you and me.

 

“그러니까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는 꼭 고쳤으면 좋겠네요.

 

며칠 후에 만난다면 모두들 며칠 못 살잖아요?”

 

“와하하하!”

 

“내가 고친 걸 칠판에 쓸게 함께 불러봅시다. 이렇게 고치면 좋을 텐데....”

머잖아 우리는          

생명강 가에서 만나리.

머잖아 우리는           

생명강 가에서 만나리.

 

 

일본《讚美歌, 1952》488장 ▲

홍콩《頌主新歌, 1988》53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