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 09:12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2008.11.05
머리말
프롤로그-사랑, 그 행복과 비극 사이에서
망각,동양철학의 가능성
1.기억에서 망각으로
2.니체에 있어서 망각의 의미
3.들뢰즈와 장자를 가로지르며
4.중국철학에 있어서 망각의 의미
5.동양적 사유, 그 가능성의 중심
관조의 미학에서 창조의 미학으로
1.아름다움에서 숭고로
2.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
3.울림을 내기 위해서
4.비움 뒤에 남는 것
5.마주침과 창조의 미학
6.장자 미학의 가능성
장자로부터 백남준으로 혹은 백남준으로부터 장자로
1.조삼모사 이야기의 숨겨진 논리
2.장자의 '허심'그리고 백남준의 '황홀'
3.아이, 새로움 그리고 창조
호접몽으로 장자가 말하려고 했던 것
1.[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2.송나라 상인의 아찔한 경험
3.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두가지 것
4.호접몽 이야기의 비밀
5.장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했던 것
잃어버린 시간과 타자를 찾아서
1.시간을 없애라!
2.베르그손과 사르트르의 시간론
3.레비나스,되찾은 시간
4.레비나스를 넘어서 장자로
5.유아론적 시간의식을 넘어서
에필로그-사랑과 기쁨의 삶을 꿈꾸며
쟁점과 핵심어 찾아보기
♤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망각이나 비움이라는 개념을 허무적인 것으로 독해해서는 안됩니다.
타자에 대한 사랑 자체를 망각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가 망각하거나 비워야 한다고 생각한 대상은 우리가 타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타자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우리의 판단과 추측이라는 거지요.
망각은 타자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제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움이나 망각만으로 우리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비움이나 망각은 타자와의 사랑에서 단지 필요조건일 뿐 절대 충분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배낭이나 가진 것이 너무 많다면 우리는 크레바스를 건너뛰기 힘겨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진 짐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저절로 크레바스 저편으로 건너가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에게 비약하는 것뿐입니다.
♤
니체가 이야기하는 망각은 기억을 초월하려는 능동적인 힘, 기억을 벗어나려는 치열한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모래성을 만들고 파도에 의해 부서지는 모래성을 보며 까르르 웃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파도가 휘몰고 간 그 자리에 다시 모래성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황폐한 모래사장에서 파괴가 아닌 생성의 가능성을 엿보는 이 아이는 얼마나 짜라투스트라를 닮았습니까?
부서진 모래성을 ‘기억’하고 좌절과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면 이 아이는 이전처럼 유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새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려면, 고독한 산책자는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합니다.
새로운 연결을 꿈꾸십니까? 그렇다면 기존의 모든 연결을 잊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물이 빨아들이면 그것에 저항하고, 혹은 물이 밀어내면 그것에 저항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이것은 결국 물과의 연결을 우리가 무의식으로 거부한다는 것,
따라서 땅과의 연결을 통해 구성된 자의식을 유지한다는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물과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신을 망각하고, 물의 복잡하고 다양한 흐름들에 맞추어 ‘감각-운동’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장자가 단순히 주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
바람소리는 누가 가지고 있는 걸까요? 바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구멍들이 가지고 있는 소리일까요?
그것은 다양한 세기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 바람과 다양한 모양과 깊이를 가지고 있는 구멍의 우발적 마주침에서 출현하는 것입니다.
장자의 비움이나 망각을 허무주의나 혹은 초월주의로 연결지어서는 안됩니다. 비움이나 망각에는 어떤 초월에의 의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자와 마주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겠다는 하염없는 겸손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비움이나 망각은 수직적 상승이 아니라, 세계로의 수평적 열림을 위한 첫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닫힘이나 상승이 아니라 열림과 소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
장자의 철학은 「제물론」편에 등장하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길은 걸어다녀서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
‘길’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어감’이 먼저 있습니다.
태초에 ‘길’이라는 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음’이라는 행동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기증이 나는 절벽 사이의 다리를 생각해봅시다.
누군가가 먼저 건너갔기 때문에 그 다리가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그런데 도대체 누가 다리도 없는데 그 심연을 건널 수 있었던 걸까요?
고산준령에 나 있는 산길을 생각해봅시다.
누군가가 지나갔기 때문에 그 산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길도 없는데 걸어갔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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