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3. 21:17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누나는 열 살 전후 나이에 오빠인 큰형님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 찾아 막연히 북으로 떠날 때 엄마는 어느 정도 나이 든 두 남매를 본가에 맡겨둔 것이다. 열 살이란 어린 나이부터 엄마 없이 자라온 세월이 얼마나 외롭고 감당하기 힘들었을까 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동생, 내게 아직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저 딱 한번만이라도 엄마 곁에 누워 있고 싶소.”
언젠가 누나가 고희도 훨씬 지난 나이에 내게 이런 말을 한 일이 생각난다.
명태 순대나 녹두 지지미 또는 녹말 냉면, 무엇보다 가자미식해 같은, 어려서 고향땅 함경도에서 먹던 엄마의 손맛이 그리울 때면 나는 종종 누나네 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그러고 보니 누나는 언제나 내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마주 앉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같이 먹자고 권할 때마다 언제나 손사래를 치며, “일 없소. 동생이나 많이 먹기요. 이따 애들 돌아오면 같이 먹겠소. 어서 들기요.” 라며 하나 변하지 않은 고향의 억양으로 사양했다. 나이 터울이 많이 지고 어려서부터 한집에서 같이 자란 적이 없어서일까, 누나는 한번도 내게 말을 놓은 적이 없다.
“옛소. 이거 동생 가지기요! 시집갈 때 엄마가 달아준 노리개요. 이젠 동생이 가지기요.” 엄마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것으로 오래도록 평생 고이 간직한 친정에서 가져온 유일한 물건이 아닐까 하니 설핏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렇듯 누나는 차곡차곡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했단 말인가.
“외삼촌, 엄마 돌아가셨어요!” 누님이 운명하셨다는 생질의 전화였다. 며칠 전부터 건강상태가 심상치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던 누님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초저녁부터 병상을 지켰다. 오늘밤은 그럭저럭 넘길 것 같으니 나더러 그만 집으로 돌아가 쉬라는 조카들의 성화에 떠밀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였다.
드디어 입관하는 일시가 정해졌다 했다. 장지는 매형 곁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수의는 마련했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당신이 죽으면 시집가던 날 입었던 옷이 장롱 속에 있으니 굳이 그걸 입혀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는 것이다. 전쟁 때 피난 가는 경황 속에서도 그것을 챙겼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당신의 소원대로 누님은 얼굴은 삼베로 가려졌지만 그 옛날 혼례식 때 입었던 그대로 연분홍 양단치마에 색동저고리를 받쳐 입은 그 위에 연두색 갑사 원삼을 걸치고 관 속에 반듯하데 누워 있었다. 나는 집에서 이미 마련해 온 그 황금 노리개를 저고리 옷고름에 달아 드렸다. 그리고 나직히 속삭였다.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요, 누나!”
(주종연 산문집,『기억 속의 풍경』「누나의 죽음」에서 발췌. 제가 글의 앞뒤 순서를 막 바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 비탈리 「샤콘느」
“여보, 다음 생에도 우리 부부로 다시 만나요!”
“아들아, 다음 생에도 우리 父子로 다시 만나자!”
“며늘아, 다음 생에도 시아버지로 다시 만나자!”
“형님,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요!”
“형수님,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요!”
“누님,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요!”
“매형,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요!”
“동생,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세!”
“제수씨, 다음 생에도 우리 동기로 만나요!”
“친구, 다음 생에도 우리 또 이렇게 다시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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