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30. 09:53ㆍ미술/서양화
퍼온 곳. cafe.daum.net/mrsangjodhkim/68zt/1108 둥굴레방
Christmas Morning (1944)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절망적 심경을 표한 그림이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길은 왠지 음침한 느낌을 주는것이 이 환자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된다는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주변의 나뭇가지는 결코 부드럽지 못 하고 따가운 감을 주는 것이 환지의 고통을 나타낸 것이라 보인다.
Chimney Swift (1947)
앤드루 와이어스가 많이 다룬 주제는 '죽음'이다.
몸이 허약했던 앤드류 와이어스는 어린시절부터 고통에 많이 시달렸을 것이다.
예술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고통'을 연구했을 것이고 그것은 곧 그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Christina Olson (1947)
소아마비환자였던 크리스티나 올슨을 그린 작품이다.
크리스티나의 세계 Christina's World(1948) 32 1/4 x 47 3/4 in. 뉴욕 현대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이 작품은 2009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국민화가' 앤드류 와이어스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중반 회화 가운데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림의 모델인 크리스티나 올슨은 커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와이어스가 만난 이웃 가운데 한 명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세 살때 소아마비에 걸려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다.
1948년, 와이어스가 55세에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완성하였다.
크리스티나는 죽기 전 병원에서 머물던 2개월을 제외하곤 평생 커싱의 집에서 보냈다.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오지나 다름없는 커싱을 美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됐으며,
메인 주 제1의 명소로 만들었다.
-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p135~137
Cooling Shed (1953)
아무도 없는 '공간'이 매우 쓸쓸하게 느껴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현대적인' 쓸쓸함이다.
Corner of the Woods (1954)
남자는 실의에 빠져있는 듯하다. 날씨가 추워보이지만 그걸 잊을 정도로 남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털장갑과 외투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Chambered Nautilus (1956)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난다.
Brown Swiss (1957)
잎새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죽음'처럼 불길한 기운이 물씬풍기는 풍경이다.
Blackberry Picker (1943)
Below Dover (1950)
바다와 떨어져서 들판에 덩그렀게 놓여있는 한척의 낡은 배는 저절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저 배도 언젠가는 푸른 물살을 가르며 힘차고 멋있게 질주 했던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젠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꼴이 되어버린 쓸쓸함.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야 할 필수 사항이 아닐런지?
Alvaro and Christina (1968)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에는 불길한 풍경이 많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림 밖에 누군가가 쓰러져있을 것만 같다. 이 풍경 안에는 크리스티나의 흔적이 보인다.
집안일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한데 그녀는 보이지 않고 불안한 정적이 감돈다.
Combers (1979)
종이 달린 이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듯하다.
파도가 금방이라도 집을 집어 삼킬 듯이 거세게 몰려온다.
누군가 불쑥 손내밀어 저 종을 울리길 바란다. 그것이 비록 마지막 종이 되더라도....
Big Top (1981)
Baron Philippe (1981)
두 개의 외인잔과 촛불...........
Adrift (1982)
노인의 죽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배는 바로 노인 자신이다.
노인은 배를 조종하며 여러 곳을 항해했지만 이제는 자연에 몸을 맞기게 됐다.
물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A Feather in Her Cap (1987)
계단 난간에 걸려 있는 깃털모자는 얼핏보면 한 마리 백조같다.
왜 모자는 저기에 걸려있는 걸까.
모자를 놓고 간 여자는 멋쟁이임에 분명하다.
모자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류 가운데 하나인 '백조'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난당하기 쉬운 장소에 놓여있는 저 모자는 외롭고 쓸쓸해보인다. 혼자 있는 백조처럼!
초등학생 때 사육장에서 키우던 두 마리 백조가 생각난다. 두
마리였을 때는 매우 활기찼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을 부라리며 철망 가까이 뛰어오곤 했다. 부리로 찌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마리가 사라졌다. 혼자 남은 백조는 활기를 잃었고 구석에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야위어가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오색찬란백조의 날개처럼 그녀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줬을 저 모자는 영원한 이별의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Breakup (1994)
차가운 눈속에 파묻힌 시체가 부패하지 않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손은 마치 자기만이라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저 시체는 아직도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닌지도 모른다.
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심장이 끊어졌어도 피는 계속 돌게해 팔부위를 '좀비(살아있는 시체) 상태'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Airborne (1996)
새는 깃털만 남기고 어디로 떠난 걸까.
'흔적만 남기고 떠남'을 표현한 이 그림은 앤드루 와이어스가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새삼 상기시켜준다.
1917년 7월 12일 생인 앤드루 와이어스는 2009년 1월 16일 사망했다.
새가 자신의 몸에서 뽑혀져 나온 깃털을 남기고 떠났듯이,
앤드루 와이어스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에서 뿜어져나온 인내와 열정 그리고 영감으로 만들어낸 그림들을 흔적으로 남기고 떠났다.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Newell) Wyeth)
1917. 7. 12 미국 펜실베이니아 체즈퍼드 출생. 2009년 사망.
낡은 건물, 벌판과 언덕, 그리고 작가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을 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그려 주목을 끌었다. 그의 아버지 N. C. 와이어스는 하워드 파일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유명한 삽화가로 아들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1937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여기에 출품한 작품은 거의 두 지방, 곧 체즈퍼드 주변의 브랜디와인 계곡과 메인 주 쿠싱에 있는 여름 별장 주변을 주제로 그린 것이다. 그는 갈색 계통 색상만을 사용하여 수백 가지의 은은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기법은 매우 사실적이며 정교하지만 그의 그림은 사진과 같은 자연주의를 극복하고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가장 유명한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 Christina's World〉(1948, 뉴욕 현대미술관)는 독특한 사선 원근법의 능숙한 처리와 빛을 이용하여 정확한 시간을 표현하는 그의 화풍을 잘 알려준다. 그밖의 작품 중에서 〈짓밟힌 잡초 The Trodden Weed〉(1951)는 소련의 전 총리 니키타 흐루시초프를 감동시켰다고 하며, 〈니콜라스 Nicholas〉(1955)는 미국의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찬사를 받았다. 와이어스는 화가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수여하는 대통령 자유상을 받았다(1963). 1977년에는 존 싱거 서전트 이후 미국의 미술가로서는 최초로 프랑스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다음해에 소련 미술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이 되었다. 1980년에 생존한 미국의 미술가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67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에는 그 미술관의 개관 이래 가장 많은 입장객이 몰렸다. 와이어스의 뛰어난 기법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축적된 삶에 대한 통찰력과 야외 풍경화에서 대지의 밑바탕을 꿰뚫어보는 직관, 그리고 낡은 집과 그 실내의 묘사를 통해 여러 세대에 걸친 삶의 과정을 드러내는 밀도 있는 주제의식 등이다.
faraway
앤드류 와이어스 가족은 3대가 화가인 특이한 집안이다.
그의 아버지 N.C.와이어스는 유명한 삽화가였고, 앤드류 와이어스도 화가,
그의 두 딸과 막내 아들 제이미 와이어스 역시 화가다.
딸 하나는 작곡가, 아들 하나는 발명가로 3남 2녀가 모두 특이하게 풀렸다.
어려서부터 특이한 교육을 고집했던 와이어스의 아버지는 학교라는 제도의 도움없이 아이들을 온전히 가정교육으로 양육한다.
와이어스는 어려서부터 가족간의 친밀함과 자연에 애정을 갖고 관찰하는 자세를 중요시하는 교육을 받고 자랐고
아버지의 그런 영향은 자연의 사소한 부분이라도 섬세하고 각별한 애정으로 그려내는 그의 그림 속에서 충분히 엿보여 진다.
토지와 초원, 그리고 그 자연의 한 부분을 이루는 인간은 어찌해도 결국엔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들의 고독을 노래하는 듯하다.
그림으로 조형화된 그의 서정적 운율은 서글픈 동화를 보는 듯하고 누군가의 서시시를 듣는 듯하다.
인간은 현실을 사는 존재인 동시에 기억과 추억 속에도 사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생각케 한다.
잔잔하게 다가오는 그들 각각의 인생사는 나와 그림의 사이 그 중간 어디에선가 나의 인생사와 만나... 내 자신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우리에겐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이 있다면
미국인에겐 바로 이 앤드류 와이어스가 그들의 고향에 대한 혹은 어린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을 대변하고
우리의 모난 마음을 치유하는 서정시같은 그림의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faraway 부분도
(부분도)
와이어스는 주로 이웃들의 모습과 집 주위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그의 극사실적인 그림은 당연 몇날 몇일의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런 이유인지 이웃들을 그리거나 모델들을 그렸던 인물화는 앉아있는 모습이나 누워 잠자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찮은 풀과 야생화 하나도 그의 손을 거쳐 시(時)성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자연에 대한 이해와 깊은 애정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창작의 과정이다.
역시 오리지널이 가진 느낌을 전달해 줄 수 없어 너무나도 안타까운 그림 한 장....
빨래줄이 쳐있는 시골 누군가의 집 뒤 한 켠의 모습이다.
거기에 널린 얇은 아이 속 바지의 투명함과 투박한 나무에 걸린 종의 금속성, 그리고 그 뒤에 걸린 마대걸레의 엉뚱함.....
모두 하얀색으로 그려졌지만 마치 그만그만한 촌부들이라도 제각각이듯
하얀 벽과, 하얀 나무 막대 기둥과, 하얀 종과, 하얀 아이의 속바지 모두가 각각의 표정을 갖고있다.
자연과 삶의 여유가 어우러진 나른하게 따듯하고 친숙하게 정다운 아름다운 장면이다.
헬가 테스토프(Helga Testorf)시리즈
Lover
15년간 와이어스에게 비밀리에 모델이 되어주었던 독일에서 망명한 여인, 헬가는
그렇게 미국 시골과 시간에 잊혀질 여인이었지만 와이어스의 그림을 통해 영원한 삶을 부여 받았다.
와이어스에게 영감을 주어 특별한 존재가 되었고
그림을 통해 특이한 그들의 사연과 함께 영원히 회자될 것이므로 말이다.
집과 따로 떨어져있던 작업실에서 와이어스는 아무도 몰래, 심지어 부인을 포함한 가족도 모르게 247장의 그녀를 그렸다.
헬가 테스토르프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여인으로 네 아이의 엄마였으며
당시 그 동네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살아가던 이웃이었다.
물론 가족끼리도 모두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와이어스는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녀를 그리고 싶은 영감에 사로잡혔다고 훗날 회상했다.
아무도 몰래 헬가를 그리기 시작한지 15년만에 그러니까 헬가의 나이 53세에 와이어스의 나이 70에
그는 247장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할 것을 결심했고
부인을 설득하려 할 때 그의 아내는 물론 부득부득 이를 갈았을 일이지만
"그림이 아름답지 않기만 해봐요"라고 했다고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헬가 시리즈는 공개되자마자 한 컬렉터가 모두다 구입했다.
사람들은 "당신은 헬가를 사랑했는가?"라고 물었다.
앤드류 와이어즈는 그 물음에 대해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그리는 화가는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게시물은 검색하다가 아무런 카페에서 그냥 퍼왔는데, (글쓴이는 따로 있을 겁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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