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서양화

말레비치

 

 

 

 

 

 

- Download #1 : malevich2.jpg (117.8 KB), Download : 339

 

 

 

 

- Download #2 : malevich4.jpg (103.1 KB), Download : 313

   

   
★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 ★

20세기 초반, 혁명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 일어난 러시아 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 예술운동은 예술의 미적 감각과 역사에 대한 의식, 그리고 작업소재와 공간을 확대, 확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운동으로 인해 기존의 예술은 새로운 개념, 새로운 작업들에 의한 도전에 직면하고, 급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는 혁명 전후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던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의해, 미술이 정신적 연대감을 매개로 산업 현장과 직결될 수 있다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프랑스의 입체주의, 이태리의 미래주의와 함께 기존 미술의 관습적 틀을 넘어서 실험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는 문화예술 전 장르를 통해 공동작업으로 진행시켰다는 운동적 개념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어, 서구의 실험적 태도보다 더 큰 파급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러시아 아방가르드미술은 형식이나 내용, 색채 및 재료, 텍스츄어, 공간감, 그리고 다이나믹한 실험주의로 후에 기하학적 추상이나 미니멀리즘, 컨셉추얼 아트, 키네틱 아트를 파생시키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미술은 분류상 네오프리미티비즘(Neoprimitivism)과 입체미래주의(Cubo-Futurism), 광선주의(Rayonism), 절대주의(Suprematism), 구성주의(Constructivism), 생산주의(Productivism)로 나뉘어진다. 이같은 장르적 운동은 종래 철학의 보편구조와 형식미술을 다양화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들의 기본정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미학적 개념의 재정립과 새로운 역사와 만나는 「예술의 순수성」에 맞추어졌다.

 

요컨대, 러시아 아방가르드미술운동은 종래의 회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파악하려는 실험 정신이 핵심이 되었다. 혁명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혁명사상과 새로운 기술을 연결하고자 하였으며, 무대예술, 환경미술, 응용미술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야로 확장하게 되었다.


절대주의(絶對主義:Suprematism)는 최초의 순수한 기하추상회화 운동으로 1913년경 러시아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8~1935)에 의해 시작되었다. 말레비치는 입체파에서 끌어낸 순수한 감각을 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기하학적인 색채평면 형태만을 묘사(기하학적 추상주의), 바탕에 검정색 정방형만을 그린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감성의 극한적인 극점으로서의 추상을 주장했다.


말레비치가 시도한 최초의 절대주의 작품은 흰 바탕 위에 연필로 검정색 4각형을 그린 드로잉이다. 여기서 그는 이전에 그가 추구하던 입체파적인 미래파 양식의 특징인 재현적 요소를 모두 제거했다. 그리고 '적절한 표현 수단이란 최대한으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사물의 외형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검정색 4각형은 감성을 뜻하며 흰색 바탕은 '감성을 초월한 공(空)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의 초기 절대주의 작품들은 대개 1913년경부터 제작되었지만 1915년에 전시되었다. 이 해에 그는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Vladimir Mayakovsky:1893~1930)를 비롯한 몇몇 문인들의 도움으로 절대주의 성명서를 편집했다. 4각형·원·십자형 등의 단순한 기하형태로 이루어진 초기 구성작품들에서 말레비치는 검정색·흰색·빨간색·초록색·파란색만을 사용했다. 1916~17년에는 원의 부분이나 작은 3각형같이 좀더 복잡한 형태들을 다루었고 색채도 갈색, 분홍색, 엷은 자주색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또한 복잡한 공간 관계를 엮어서 3차원적인 환상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의 실험은 1917~18년에 그린 <백색 위에 백색 White on White>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여기서 색채는 사라지고 희미한 윤곽의 4각형만이 나타나 있다. 1919년 개인전을 끝으로 그는 절대주의 운동의 종말을 고했다. 그 밖에도 이반 클리운(Ivan Kliun), 이반 푸니(Ivan Puni or Puny(Jean Pougny:1894 ~1956), 올가 로사노바(Olga Vladi-mirovna Rosanova:1886~1918) 등과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절대주의 화가가 있다.


이 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유명한 러시아의 화가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1920년 이후에 그린 기하학적인 형태들에서 절대주의의 영향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다른 추상미술 경향과 더불어 이런 기하학적 양식은 칸딘스키와 러시아의 화가
엘 리시츠키(El Lissitsky:1890~1941)에 의해 독일에 전해졌고 특히 1920년대 초 바우하우스(Bauhaus)로 이어졌다.

 

 

 

 

 

Self Portrait, 1908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8~1935)는 키예프 출신의 러시아 화가로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예술의 개척자이다. 처음에는 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니 나중에 M.F. 라리오노프 및 러시아
전위파 시인들과 친교를 맺고, 절대주의(Suprematism)을 주창하였다.
1911년에는 '다디아의 책'이라는 그룹에 참가하여 러이아의 입체파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1912년 파리 여행 후 레제풍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표하고급속히 자기 방법을 발전히켜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원. 십자가. 삼각형을 추가하고, 그러한 기본형태에 의한 추상예술을 이론화하여 절대주의라 이름 짓고 1915년 V. V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혁명 직후 교수직에 임명되기도 했으니, 미술 정책의 반동적 전환으로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자유를 잃은 채 지냈다. 1926년에 독일로 이주해 절대주의 선언을 상세히 설명한 <비구상의 세계>를 바우하우스를 통해 간행했다.

자연의 혼돈을 지배하는 인간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절대적 기본형태로서의 직선은 그의 기하학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자연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사각형은 절대주의의 기본요소이며 외관적 세계를 부정하며, 과거의 미술을 부정한다. 창조를 위해서는 정신적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물질적 필요의 충족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1917년 혁명은 환영했으나, 예술이 기계문명에 맞추어지고, 공리적 목적에 씌여진다는 것에 동조할 수 없었다. 또한, 예술가와 기술자간의 어떤 편의상의 결합도 부정하였다. 진정한 창작품은 시대를 넘어 영원성이 부여되는데 비해 과학과 기술의 발명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의식보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잠재의식(초의식)으로 보여지는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그는 보았다.

 

말레비치는 미술가가 수동적으로 자연 환경에 반응하는 전통적 재현 방법을 거부하고 자연 그 자체의 실재와 같이 의미있는 새로운 실재들을 창조하려 했으며 그 방법으로써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택했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는 창작 예술에 있어서 순수감성의 절대적 우위를 말한다.'라고 그의 회화의 의도를 피력했으며 이는 곧 시작적, 물질적 현실세계를 초월하여 대상없는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 회화를 위해 사각형을 기본 요소로 선택했고, 정사각형은 가장 이상적 형태로 십자형, 장방형 등 다른 절대주의의 형태들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말레비치의 그림에서의 흰색바탕은 푸른 하늘의 경계를 부수고 무한한 공간으로 탈출하려는 그의 의지를 나타내며 절대주의가 전개될수록 색이 정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사각형에서 채색된 선명한 색채마저 배제하게 된다.


말레비치는 몬드리안과 마찬가지로 비구상에 이르기 위해 초기에 입체주의를 받아들였는데, 피카소의 큐비즘보다는 레제의 원통주의를 도입하였다. 서민의 생활상을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하여 보여주다가 1913년에 <흰 바탕위의 검은 사각형>이라는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의 절대주의 작품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1918년 1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0,10'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절대주의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 1915년 이후 한동안 여러 색채의 크고 작은 사각형을 배열시킨 작품을 발표하여 다색시대를 맞이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는 색채의 순수성, 즉 색채가 회화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단위로 존재한다는 점을 추구한다.

1918년 <흰 바탕의 흰 사각형>이라는 궁극적인 절대주의 작품이 등장한다. 모든 불순물을 쏟아버린 무의 세계라는 말레비치의 표현에서처럼 절대적 우위성을 극렬하게 드러냈다.

말레비치는 '자연 그 자체의 실제와 같이 의미있는' 새로운 실제를 창조하려 했다. '예술에 있어서 순수한 감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그는 몬드리안의 이성 중심과는 반대로 감성의 극한적인 극점으로서의 추상을 주장했다. 단순한 현실적 감각세계를 거부한 것이 아닌, 순수한 감성으로서의 극점, 즉 주관주의적인 추상이며 몬드리안보다 훨씬 앞서서 시작한 추상이었다.

몬드리안의 작품과 비교한다면 모두 기하학적 추상 형태로서 어떠한 정감이나 현실의 모습의 재현을 배제하지만, 몬드리안의 작품이 현실 세계로부터 출발하여 지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장기간의 숙고의 결과물인 반면, 말레비치의 작품은 직관적 통찰에 의해 현실을 단기간에 초월하여 얻어낸 절대의 세계였다.

 

 

 

 

Flower-Girl, 1903

Spring, 1905/1906

 

 

 

Die Hochzeit, 1907

 

 

 

Landschaft(Der Winter), 1909

 

 

 

Taking in the Harvest, 1911-1912

 

 

 

Morning in the Country after Snowstorm, 1912

 


다소 산만한 듯한 빛의 방향과 빨강, 파랑, 흰색의 강렬한 색이 인상적이다. 지난 밤의 폭풍우가 마을을 눈으로 뒤덮고, 아침 햇살의 강렬한 빛이 마을을 덮은 눈 위에서 반사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시기의 말레비치는 모든 물체를 분해하는 입체주의와 차가운 금속미의 미래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The Woodcutter(나뭇꾼), 1912

로봇과 같은 모습의 이 나뭇꾼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레비치의 대표작이다. 그는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해서 역동적 구성이라 칭하기도 하였는데 따뜻한 색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날카롭게 떨어진 선과 빛의 각도가 입체주의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다소 경건한 분위기가 밀레의 만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Reaper on Red Background, 1912-13

러시아 민족주의의 감정을 실은 이 작품은 앞의 나뭇꾼과 같은 스타일의 그림이다. 말레비치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의 농부들의 생활을 단순하고 장엄하게 그려냈다. 명암 대비와 원색으로 강조된 곡면의 입체감이 앞의 나뭇꾼보다 훨씬 단순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Black Circle, [1913] 1923-29

 

 

 

Black Square, [1913] 1923-29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처음 전시되었을 때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그림은 러시아 정교의 성상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래서 말레비치가 죽은 후 러시아 미술가 연맹에 안치되었을 때 그의 머리 위 벽에 이 그림이 걸렸다고 한다. 십자가 대신으로 말이다.

 

 

 

 

The Aviator, 1914

말레비치 특유의 명암대비 인물표현이 엿보인다. 물고기, 문자, 카드 등 다소 비행사와는 상관없을 듯한 여러가지 물체들을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입체주의 영향이 남아 있는 듯 하다.

 

 

 

 

An Englishman in Moscow, 1914

나뭇꾼과 흡사하게 그려진 인물을 뒤에 두고 재미있는 물체들이 화폭에 배치되어 있다. 단어들, 물고기, 촛불, 총검, 교회, 칼 등이 일관성없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는 영국인의 도시에 대한 경험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Soldier of the First Division, 1914

 

 

 

 

Red Square: Painterly Realism of a Peasant Woman in Two Dimensions, 1915

 

 

 

 

Black Square and Red Square, 1915

 

 

 

 

Suprematist Painting: Aeroplane Flying, 1915

당시 러시아는 혁명으로 인해 물질주의 세계관이 팽배해 있었다. 말레비치의 초기 절대주의 작품으로 물질주의적인 제목이 붙어 있다. 하지만 예술의 효용성만을 따지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당시의 사회 흐름에 그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타나게 되는 절대주의 스타일의 그림에는 <절대주의>라고 제목을 붙이고 있다.

 

 

 

 

Suprematist Composition, 1915

 

 

 

Suprematism, 1915

 

 

 

Supremus No. 56, 1916

 

 

 

Suprematism(Supremus No. 58), 1916

 

절대적 감각의 추구와 새로운 기호의 창조에 자신의 예술세계인 절대주의를 설명한 말레비치는 위의 그림과 같은 스타일을 시리즈로 그렸다. 훗날 이 절대주의 감각은 바우하우스를 통해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전해졌고 아직까지도 그 감각적 흐름은 현대 디자인의 주류가 되고 있다.

 

 

 

 

 

Girls in the Field, 1928

 

 

 

Complex Presentiment: Half-Figure in a Yellow Shirt, 1928-32

그의 초기작품에서 많이 보았던 명암대비의 물체 표현이 약간 보이지만 그동안 추구해 왔던 절대주의 스타일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다. 그러나 감각적인 원색의 대비는 그의 디자인 경향을 느끼게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집 한 채를 바라보고 있는 외로운 사람의 뒷모습은 고독한 말년의 말레비치 자신을 연상시키고 있는것 같다.

 

 

 

 

Red House, 1932

 

 

 

Running Man, 1932-34

Girl with a Comb in Her Hair, 1932/1933

 

 

 

Self Portrait, 1933

 

 

 

Portrait of the Artist's Wife, 1933

 

 

 

Self Portrait, 1908

 

 

 

 

 

 

 

 

 

 

 

 

 

 

 

'미술 > 서양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브로조 로렌체티 (1290-1348) <좋은 정부의 도시>  (0) 2015.04.24
오토 딕스   (0) 2015.04.23
모딜리아니  (0) 2015.04.22
뭉크 작품 못 본 게 많네요  (0) 2015.04.22
파울 클레 作品  (0) 201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