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4. 19:31ㆍ책 · 펌글 · 자료/문학
장영희 책 2권, 김점선 책 7권을 한꺼번에 샀시요.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칠고 숨가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미려한 문체로 풀어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복됨과 희망을 일깨워온 서강대학교 장영희 교수.
그가 2001년부터, 척추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위해 연재를 그만두기까지
3년에 걸쳐 조선일보 북칼럼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에 게재했던 주옥 같은 글들을 엮었다.
생후 1년 때 앓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이며,
두 번에 걸쳐 암선고를 받고 투병해온 사람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글에는 삶에 대한 긍정과 발랄한 유머, 이웃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은 책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그 문학의 숲을 함께 거닐고, 그 숲의 열매들을 함께 향유하자고 권한다.
세계 석학과 대문호의 어록, 아름다운 싯귀, 소설의 한 장면을 사소한 일상과 버무려 내고 있는 그의 글은……
작가의 말 "같이 놀래?"
1.
어느 봄날의 단상 /
병원에서 만난 어린 왕자 /
사랑의 힘 /
마음의 성역 /
교통순경과 욕심꾸러기 /
꿈꾸는 아버지 /
시인의 사랑
2.
우동 한 그릇 /
진정한 위대함 /
사랑과 생명 /
어느 수인과 에밀리 디킨슨 /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 /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
시와 사랑의 강
3.
멋진 신세계 /
푸른 꽃 /
어느덧 물내린 가지 위에 /
안과 밖 /
내게 남은 시간
4.
저 하늘의 별을 잡기 위해 /
사랑의 문제 /
내가 이상을 버리지 않는 이유 /
어머니, 그 위대한 이름으로 /
거울 속의 감옥 /
'특별한' 보통의 해
5.
'초원의 빛'과 물오징어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사랑하는 너에게 /
아, 멋진 지구여 /
하면 된다? /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
진정한 행복
6.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이 세상의 파수꾼 /
11월의 영혼 /
마음의 전령, '손' /
어떻게 하늘을 팔 수 있습니까? /
가던 길 멈춰 서서
7.
인간 시간표 /
크리스마스 프레지던트 /
변신 /
마지막 잎새 /
사랑할 수 없는 자 /
그래도 우리는
8.
로미오의 실수 /
감정의 백만장자 /
대장님 /
피콜라의 크리스마스 /
태양 때문에
9.
생명의 봄 /
전쟁과 평화 /
오만과 편견 /
암흑의 오지 /
공포영화와 삶 /
내 뼈를 묻을 곳
10.
어느 가을날의 추억 /
그 사람을 가졌는가 /
백지의 도전/
성냥팔이 소녀 /
나는 소망합니다 /
문학의 힘
서명 '문학의 숲'으로 가는 길에서…
토크쇼 중에 윈프리는 탐 설리반이라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와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설리반은 절망과 자괴감에 빠졌던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은 단 세 단어였다고 했다. 어렸을 때 혼자 놀고 있는 그에게 옆집 아이가 “같이 놀래 (Want to play?)” 라고 물었고, 그 말이야말로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주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고 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상상력, 창의력, 논리적 분석력도 결국은 인간됨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장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올바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같이 놀래?” 하며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2005년 3월
장영희
.
.
새벽, 겨우 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 땀 훔치며
퍼져 버린 라면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느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선생님, ‘인생 성공 단십백’이 뭔지 아세요?”
학생이 물었다.
모른다고 답하자, 학생이 말한다.
“한평생 살다가 죽을 때,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백 권의 좋은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래요.”
나는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준 적이 없고,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하며 구명대를 내놓기는커녕 더욱 움켜쥐고
남보다 조금 더 앞서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면서
주위 한번 제대로 쳐다본 적 없이 살았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이별 노래 / 카토 토키코
마음의 성역
- 장영희
내가 지금 죽어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이제껏 지상에서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한다면, 무수한 죄 중에 제일 먼저 “저는 누군가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6,7년 전에 법학과 2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교양영어 과목과 영어과 2학년 영작 과목을 동시에 맡았던 때의 일이다. 우연히 두 반의 수강생 수가 스물네 명씩 똑같고, 법학과 학생들은 모두 남학생, 영문과는 여학생만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는 두 반 학생들에게 영어로 펜팔을 시키기로 했다. 각자 배우 이름이든, 작가 이름이든 자기가 잘 아는 영어 이름으로 가명을 쓸 것, 두 장 이상 영어로 쓸 것, 예쁜 편지지에 쓰되 자기 신상에 관한 말이나 낭만적인 말을 쓰지 말 것 등, 몇 개의 법칙을 정하고 임의로 남녀 짝을 지어 펜팔 상대를 정해 주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걷어서 점검을 하고 배달해주는 우체부 역을 맡았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첫째 주에 영문과 여학생 하나가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 여학생의 자리를 내가 메우기로 했는데, 나의 ‘펜팔’ 명호(가명)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한참 이성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 나의 교육적 실험은 큰 효과를 거두어서 영어로 문단 하나 쓰는 것도 힘들어 하는 학생들까지도 영화 이야기며 음악, 동아리 이야기들을 나누며 두 장의 편지를 꼬박꼬박 써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펜팔에게서 오는 편지를 많이 기다리는 눈치였다. 성실하고 착한 명호는 광주에서 올라와서 누나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외로움을 잘 타고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었다. 마침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나는 자주 격려의 말을 써 주었다. 그런데 편지가 오고 감에 따라 나는 점차 명호가 내게, 아니 내가 가장한 ‘캐서린’이라는 영문과 2학년 여학생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더럭 겁이 났으나 이제 와서 캐서린이 나라고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덟 번 가량의 편지 교환 후에 종강이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모르는 사람과 편지를 나눈 기억을 대학 생활의 추억으로만 간직할 뿐 끝까지 익명으로 남아서 자신의 펜팔을 찾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명호는 ‘이제껏 네가 나의 외로움을 많이 달래주어서 힘든 대학 생활을 너 때문에 잘 넘길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맙다. 너를 생각하면서 꼭 사법고시에 붙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또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여학생 화장실 문에 ’캘빈 크라인(명호의 영어 이름)이 사법고시에 붙었다.‘라고 쓰겠다. 그러면 내가 합격한 줄 알고 함께 기뻐해 달라.’고도 썼다.
그리고 1년 후, 무심히 학교로 들어오던 나는 ‘사법고시 여덟 명 합격!’이라고 써놓은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명호 생각이 났다. 밑에 있는 명단에는 분명히 ‘법학과 3학년 김명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오후 인문관 여학생 화장실 문 앞에는 ‘캘빈 클라인이 사법고시에 붙었다!’라는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혹시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명호가 날 찾아왔다. 그 여학생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합격도 의미가 없다고 안타깝게 호소했다. 나는 그 여학생은 그 사이에 유학을 가서 연락이 안된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명호는 자기 선생이 순전히 편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성역’을 마구 침범한 줄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
마음의 성역(sanctity of the human heart)이라는 말은 19세기 미국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이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에서 쓴 말이다. 아름답고 젊은 부인 헤스터와 불륜을 범한 딤즈데일 목사에게 접근해 복수를 다짐하며 교묘하게 그의 영혼을 고문하는 늙은 칠링워스,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라는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간통녀(Adultress)를 상징하는 주홍글씨 ‘A'를 달고 딸 펄과 묵묵히 살아가는 헤스터, 죄의식과 고뇌로 점차 쇠약해지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교를 하는 딤즈데일 목사,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갈등의 주류를 이루는 이 소설에서 호손의 목적은 결국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조금씩 죽음에 다가서는 딤즈데일을 보다 못해 칠링워스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헤스터에게 딤즈데일이 말한다.
“우리가 지은 죄는 남을 헤치지 않았으나 냉혹하게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칠링워스야말로 가장 큰 죄를 지은 죄인이요!”
<주홍글씨>뿐만 아니라 호손의 작품의 근저에는 항상 ‘머리와 마음(head and heart)의 균형’이라는 주제가 깔려 있다. 즉 머리는 지력, 분석력, 이성을 말하고 마음은 감성, 이해, 용서를 관장하는데 지력만 너무 발달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감정만 너무 발달해서 이성적 사고를 못해도 참다운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내와 불륜을 범한 남자를 벌하고 싶은 것은 인간적인 욕망이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간교한 수법으로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칠링워스는 호손이 말하는 '용서 받지 못할 죄(Unpardonable sin)'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죄를 통해 승화된 헤스터의 선행과 자선을 통해 가슴의 A자가 천사(Angel) 또는 유능한(Able)을 의미하도록 귀결짓는 호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결국 호손이 제시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그가 살았던 19세기보다는 머리만 점점 비대해지고 마음은 자꾸 작아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요즈음도 19세기 미국 문학 시간에 <주홍글씨>를 가르치며 “가장 악한 자는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자”라는 문구를 읽을 때마다 그때 명호의 슬픈 뒷모습이 떠오른다.
─ 읽은지가 까마득해서 하나도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어제(2020. 2.15) 산악회 버스에서 다시 읽었습니다. 반절쯤 읽었을 거예요. ─
1
신부님은 한국말에서 제일 발음하기 힘든 두 단어는 '교통순경'과 '욕심꾸러기'라고 하셨다.
2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고통스럽게 살아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
- 헨리 제임스,《여인의 초상》
- "이것은 어제가 아홉 번째 忌日이었던 나의 아버지 故 장왕륵 박사의 묘비에 적힌 말이다.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황망했다. (......)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묘비를 새겨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文才를 물려받지 못한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버지께서 환갑기념논문집에 직접 쓰셨던 글을 새기는 것뿐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즐기며 / 외길을 걸어온 인생 /
어느덧 물내린 가지 위에도 / 화사한 꽃, 열매 영글다."
- "이것은 어제가 아홉 번째 忌日이었던 나의 아버지 故 장왕륵 박사의 묘비에 적힌 말이다.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황망했다. (......)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묘비를 새겨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文才를 물려받지 못한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버지께서 환갑기념논문집에 직접 쓰셨던 글을 새기는 것뿐이었다."
- 悟道頌일세 그려.
3
연구실 쪽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가 자지러질 듯 노란색을 발하고 하늘에는 노을빛이 감돈다. 도스토옙스키가 죽음을 5분 남겨두고 그 귀중한 시간 중에 1분이나 할애하고자 했다는 自然도 이제는 서서히 順命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내 삶도 이제는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나는 눈물의 열정으로 대지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 마음의 전장에서는 치열한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과 가을을 볼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 없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헤매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을 볼 수가 있을까?
내 삶의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내가 저녁놀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리게 될까?
○ 마지막 잎새
밤새도록 세참 비와 사나운 바람이 불던 다음 날 아침, 수가 창문을 열어보니 벽돌 담 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다. (.......) 의사가 존시의 완쾌를 알려주던 날, 수는 그 마지막 잎새는 아래 층에 사는 화가 베어먼 노인이 그려놓은 것이었으며, 노인은 그날 밤에 얻은 폐렴으로 죽었다고 말해준다.
4
돈키호테가 마지막 모험에서 돌아와 제정신이 들어 임종한 후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졌다.
"광인으로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이여."
5
"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어디선가 본 책의 제목이다. 사회와 국가가 의무를 소홀히 해도 지금도 어디에선가 '운명에 반항'하여 싸우고 있는 장애아 자식을 가진 어머니들, 그 하느님 같은 어머니들의 외로운 투쟁에 사랑과 갈채를 보내며 나의 어머니와 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6
그러나 민숙이의 편지는 결국 희망을 말하며 끝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지금 내 삶이 척박하고 힘들어도 누군가 내게 별과 꿈을 노래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겠냐고 물으면 아마도 쉽게 그러겠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의 내 삶이 가치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오징어 삶는 내 손이 부끄럽지 않고, 저녁이면 다시 돌아올 가족이 있고, 그래, 난 기억해. 그 시의 다음 구절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들 어떠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7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가 인상깊게 읽은 수필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이 글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헬렌켈러의 작품이다.
"누구든 젊었을 때 며칠간만이라도 시력이나 청력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켈러는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계획표를 짠다.
방금 숲 속에서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더니 "뭐 특별한 것 못 봤어"라고 답하더라면서 켈러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질문한다.
"보지 못하는 나는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봄이면 혹시 동면에서 깨어나는 자연의 첫 징조, 새순이라도 만져질까 살며시 나뭇가지를 쓰다듬어 봅니다. 아주 재수가 좋으면 한껏 노래하는 새의 향복한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갈망에 사로잡힙니다. 촉감으로 그렇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제일 보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밤 아마 나는 잠을 자지 못할 겁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날 나는……."
이렇게 이어지는 켈러의 사흘간의 '환한 세상 계획표'는 그 갈증과 열망이 너무나 절절해서 멀쩡히 두 눈 뜨고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사는 내게는 차라리 충격적이다.
헬렌켈러가 꼭 사흘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는 이 세상을 나는 사흘이 아니라 석 달, 3년, 재수 좋으면 아직 30년도 더 볼수가 있으니 내 마음은 백 점으로 행복하다.
8
"당신이 1분 후에 죽어야 하고 꼭 한 사람에게 전화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9
일단 그 행복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변덕꾸러기이고 절대적 행복, 영원한 행복이란 없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을 그토록 원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언지 모르고 산다.
10
안데르센은 말년에 방대한 자서전을 썼다. 《내 삶의 이야기》를 썼는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괴테의 <시와 진실> 등과 함께 서양 5대 자서전의 하나로 꼽힌다. 그야말로 미운 오리새끼처럼 갖은 천대와 고난 끝에 백조로 태어나는 그의 삶의 여정이 담겨 있다.
11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치매기에 대한 공포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1961년 6월 권총 자살했다. 1928년에 그의 아버지가 똑같은 방식으로 자살했으며, 그의 형, 누이에 이어 1996년엔 손녀이자 유명한 배우였던 마고 훼밍웨이가 자기 할아버지 기일에 자살함으로써 한 가 족 중 다섯 명이 자살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일본 문학계에도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등 굵직한 작가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자살로 마감했다.
미국에서는 창의력과 자살 충동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고, 시인이나 작가가 보통사람에 비해 중증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4배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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