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감나무

2014. 8. 18. 20:54詩.

 

 

 

 

감나무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1996년>

 

 

 

 

 

 

 

 

 

 

재식이

 

 

아비의 평생과 죽은 엄니의 생애가
고스란히 거름으로 뿌려져 있는
다섯 마지기 가쟁이 논이 팔린 지
닷새째 되는 날
품앗이에서 돌아온 둘째동생 재식이는
한동안 잊었던 울음 쏟고 말았다
맷돌 같은 손으로 흘러넘치는 눈물 찍으며
대대손손 가난뿐인 빛 좋은 개살구의
가문의 기둥 찍고 찍었다
동생의 아이구땜으로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자"
가훈이 덜컹 마루 끝으로 떨어지고
동네 허리 감싸안은 야산도
함께 울었다 여간한 슬픔
끝모를 절망의 늪에
온몸 빠졌을 때도, 눈물에 인색하면서
선웃음 잃지 않던 뚝심의 동생이
썩은새로 무너지며 터뜨린 눈물로
텃밭 푸성귀들은 자지러지게 흔들던 날
예순의 머슴 아비도
죽은 엄니 초상화 꺼내들고
아끼던 눈물 한 방울
방바닥으로 굴리셨다
팔려버려 지금은 남의 논이 된
그 논에 모를 꽂고 온 동생의 하루가
내 살아온 부끄러운 나날에
비수되어 꽂히던 달도 없던 그날 밤
건넛집 흑백 TV 브라운관을 뛰쳐나온
프로야구의 들끓는 함성
허름한 담벼락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