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 난 황지우 시가 꽂힐까?

2014. 6. 2. 17:01詩.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챘으리라,
또 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돌아간 뒤
방금 들은 식당이름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나에게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오르는 거리들, 약속 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어느 날 내가 살었는지 안 살었는지도 모를 삶이여
좀 더 곁에 있어줬어야 할 사람,
이별을 깨끗하게 못해준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그냥 두고 온
거기, 訃告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제주 風蘭 한 점 배달시키랴?

 

 

- 황지우, 「두고온 것들」全文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 한다 

시멘트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魚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삐끔거리듯 

한 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 황지우,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全文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 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중에서

 

 

 

 

 

 

 

 

 

 

 

 

 

 

 

 

 

 

 

 

 

 

 

 

 

 

 

 

 

 

 

 Ton Rwtas ton Ourano (하늘에 묻지 마라)
- Haris Alexi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