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Ⅰ)

2014. 5. 6. 21:03산행기 & 국내여행

 

 

 

 

봉암사입니다.

거듭 또 말합니다만, 절도 마찬가지로 뒤에서부터 내려오며 보는 겁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이 등돌리고 있어서 순서를 바꾸기가 애매합니다.

 

 

 

 

 

 

 

 

 

 

알고보니 초파일 하루만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틀간이라네요.

준비하는 전 날을 포함해서 이틀이란 얘기겠죠.

 

 

 

 

 

 

 

 

 

가을빛이 완연하던 1947년, 일단의 젊은 수좌들이 경북 문경의 희양산 봉암사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야무지게 틀고서 뼈를 깎는 수행에 착수했다. 이른바 '봉암결사'의 시작이었다. 결사의 선구자는 청담, 성철, 자운, 우봉 스님 등 네 명. 이후 결사 정신에 공감한 눈 푸른 납자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라 입산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인원은 모두 42명. 혜암, 월산, 성수, 법전, 지관, 보일, 의현 등 비구 26명과 산내 백련암에서 정진한 비구니 16명이 그들이다.

 

이들은 왜 심산유곡의 산사로 들어왔을까?

 

이들이 수행중에 다진 결의는 무엇이었을까?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단전 자리에 위치한 신라시대 명찰. 지증대사가 창건해 선풍을 일으킨 뒤 구산선문 중 희양산파의 주봉으로서 법열이 찬연하게 빛나던 곳이다. 천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소실과 중창 불사를 거듭하며 오늘날까지 그 맥을 연면히 이어오고 있다.

이들 수좌는 이곳에서 조선과 일제 시대를 거치는 동안 만신창이가 돼버린 한국불교를 바로잡고자 결사를 단행했다. 공동수행의 기본방침은 '부처님 법대로'. '훼불 시대'를 통과하면서 부처님 법에서 멀어진 불교계의 폐습을 혁신코자 한 것이다.  당시 봉암사 스님들은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생활의 지표로 삼았다. 이 열여섯 가지 청규에는 스님들이 손수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등이 포함돼 스스로 결사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졌다.  자급자족 외에 '대처'의 타락한 승풍을 쇄신할 것도 천명해 부처의 교법에 따른 수행정신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당시 한복 두루마기의 승복을 지금처럼 보조장삼과 괴색 오조가사로 바꾼 것도 그때. 다시 말해 현재 우리가 아는 승복은 바로 봉암사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봉암사 결사는 한국불교의 큰집인 조계종의 종지종풍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발우 공양, 금강경반야심경 독송의식 등 지금의 생활ㆍ의례도 바로 이 결사에서 유래한다. 조계종단의 가까운 뿌리가 봉암사에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봉암사 결사의 기간은 짧았다. 빨치산이 남북을 오르내리는 통로에 희양산이 위치해 1949년 초부터 좌우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 그러자 이듬해 3월 상당수의 스님들이 경남 고성의 문수암으로 수행처를 옮겼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는 대중 스님들이 모두 해산하면서 결사가 완전중단됐다.

하지만 봉암사 결사가 한국불교사에 남긴 발자취와 의미는 매우 크다. 조계종의 역대 종정 중 4명, 총무원장 중 7명이 봉암사 결사 스님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함축해준다. 조계종의 현 종정과 전계대화상, 총무원장도 모두 이 결사 출신이다.  한국불교 재건의 기초가 된 만큼 봉암사 결사는 조계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때마다 큰 역할을 했다. 1980년의 10.27법난이나 1994년의 종단 사태 등 고비마다 봉암사 선승들이 나서서 '부처님 법대로'에 의한 해결책을 추상같이 내놓곤 했다.

이처럼 봉암사가 천금의 무게를 지니는 데는 결사가 말해주는 불교 개혁의 상징성이 있다. 조계종단은 1982년 봉암사를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하면서 불조정법 수호의 청정수행도량으로 자리잡게 했다. 종단 소속 2천500여 개의 사찰 가운데 일반인은 물론 불자들의 출입마저 25년째 제한되는 유일한 곳이 바로 봉암사. 일 년 중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되는 날은 부처님오신날 딱 하루다.


2007년 10월 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ido@yna.co.kr

 

 

 

 

 

 

 

 

 

 

 

 

 

 

 

 

 

구석에 있습니다만, 봉암사에서는 이 건물이 핵심입니다.

용맹정진으로 수도하는 선원(禪院)이라니까요.

‘曦陽山門 太古禪院(희양산문 태고선원’이라고 썼네요? 태고종과는 연관이 없을텐데?

(※ 曦(희) 字는 빛날 희자입니다. 첨 보는 자로군요.)

 

 

 

 

 

 

 

 

경내 공간이 아주 널널합니다. 헐렁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명불허전입니다.

과연 봉암사란 절이 우리나라 불교에서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 그 위엄과 위치를 알겠습니다.

건물 하나 하나 지극정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 봉암사 자체에서 불사 한 것이 아니라 종단에서 알아서 예우해준 듯합니다.

암튼 엄청 넓습니다.

 

 

 

 

 

 

 

 

범종루인데 얼마나 근사합니까?

어느 한 곳 허술한 데 없이 세세하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저 단청 칠한 걸 보십시요. 그리고 석물과 돌계단,, 

 

 

 

 

범종루는 아래 배치도에는 이름이 없는데, 왼쪽 가장자리의 가운데 있는 건물입니다.

제가 보는 순서는 S字 비슷합니다.

선원 - 3층석탑 - 금색전 - (다시) 선원 - 조사전 - 비각 - 대웅보전 - 극락전 산신각

- 요사1 (보림당)- 요사2 (주지실) - 요사 3 - 남훈루 - 해탈교

 

 

 

 

 

 

 

 

 

 

 

 

 

 

 

 

 

 

 

 

여기는 등(燈) 걸어달랄 사람도 없었을텐데.....? 

 

 

 

 

 

 

 

흰 등은, 세월호 추모에 동참하는 의미인 줄 알겠습니다만,

 이름을 쓴 등이 거의 없습니다.

 

봉암사 경내에는 탑이 이것 하나뿐인데, 보통 그 일직선상에 있는 것이 대웅전이잖습니까?

그런데 멀리서 보기에 글씨가 이상합니다..???

다가가 보니 ─

 

 

 

 

 

 

 

 

 

 

 

 

 

‘금색전(金色殿)’입니다.

금색전이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불상에다 금칠하는 거야......

 

 

 

 

 

 

비로자나불이라죠. 저는 불상 이름은 들어도 자꾸 헷깔립니다.

 

 

 

 

 

 

 

 

 

 

 

그런데 금색전 뒤로 돌아가면 이렇게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즉, 예전에는 이 건믈이 대웅전이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대웅보전을 새로 지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거기로 옮겨 모셨다는 얘깁니다.

 

바로 ↓ 이 건물입니다. 대웅보전. 훨씬 크게 지었습니다.

조사당, 아니 조사전부터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지증대사 부도탑(보물)과 지증대사탑비(국보)입니다.

대웅보전, 금색전, 조사당, 극락전, 범종루, 모두가 보물 국보급으로 훌륭한 건축물인데,

근래에 지은 건물이라서 그렇겠지요.

 

 

 

 

 

 

 

 

 

 

 

 

 

 

 

 

 

 

 

정말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꼼꼼하게도 잘 지었네요.

저 단청 한 걸 보세요.

건축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잘 지었습니다.

마치 한국 고건축의 교과서를 보는 듯합니다.

 

 

 

 

 

아까 본 ‘曦陽山門 太古禪院(희양산문 태고선원)’ 입니다.

 

 

 

 

 

 

 

 

 

 

묘유문(妙有門), 이름이 참 재밌습니다.

‘참선을 하다보면 오묘한 걸 발견하리라’

 

 

 

 

 

 

 

 

 

대웅전 앞이라고 등이 훨씬 많네요. 역시 이름 없는 빈 등입니다. ^__^

 

 

 

 

 

 

 

 

 

 

 

 

 

 

 

 

 

 

 

 

 

이 정도 크기면 절 중에서 제일 큰 축에 들 겁니다.

석가모니불 양 옆에는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목욕시키는......

 

 

 

 

 

 

 

 

 

 

 

 

 

 

 

어딜 찍을까나...?

 

 

 

 

 

 

 

 

 

 

 

 

 

 

 

 

 

 

 극락전을 묘하게 지었네요. 이런 형태는 첨 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 

 

 

 

 

 

 

 

 

 

산신각이고요,, 극락전 옆에 있습니다.

 

↓ 밑에는 다들 요사채들입니다.

당호야 있지요. 보림당(寶林堂), 선열당(禪悅堂), 이런 식으로.

 

 

 

 

 

 

 

 

초파일에는 절에서 밥 줍니다. 2시반까지 준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