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옥탑방」 & 조관우「늪」

2013. 12. 8. 15:58詩.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박정대

 

 

기억의 동편 기슭에서
그녀가 빨래를 널고 있네, 하얀 빤스 한 장
기억의 빨랫줄에 걸려 함께 허공에서 펄럭이는 낡은 집 한 채
조심성 없는 바람은 창문을 마구 흔들고 가네, 그 옥탑방

 

사랑을 하기엔 다소 좁았어도 그 위로 펼쳐진 여름이
외상장부처럼 펄럭이던 눈부신 하늘이, 외려 맑아서
우리는 삶에,
아름다운 그녀에게 즐겁게 외상지며 살았었는데

 

내가 외상졌던 그녀의 입술
해변처럼 부드러웠던 그녀의 허리
걸어 들어갈수록 자꾸만 길을 잃던 밤이면
달빛은 활처럼 내 온몸으로 쏟아지고
그녀의 목소리는 리라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려왔건만
내가 외상졌던 그 세월은 어느 시간의 뒷골목에
그녀를 한 잎의 여자로 감춰두고 있는지

 

옥타비오 빠스를 읽다가 문득 서러워지는 행간의 오후
조심성 없는 바람은 기억의 책갈피를 마구 펼쳐놓는데
내 아무리 바람 불어간들 이제는 가 닿을 수 없는, 오 옥탑 위의
옥탑 위의 빤스, 서럽게 퍼럭이는
우리들 청춘의 아득한 깃발

 

그리하여 다시 서러운 건
물결처럼 밀려오는 서러움 같은 건
외상처럼 사랑을 구걸하던 청춘도 빛바래어
이제는 사람들 모두 돌아간 기억의 해변에서
이리저리 밀리는 물결 위의 희미한 빛으로만 떠돈다는 것
떠도는 빛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

 

 

 

 

 

 

 

 

 

조관우 | 1집 My First Story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순간 모든것이 멈춘듯 했고 가슴엔 사랑이..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하는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져버린 내 모습 뒤엔 언제나 눈물이....

까맣게 타버린 가슴엔 꽃은 피지 않겠지
굳게 닫혀버린 내 가슴속엔 차가운 바람이..

꿈이라도 좋겠어 그댈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뒤엔 언제나 눈물이 흐르고 있어

 

 

 

 

 

어느 여름날 朴正大 시인은 창이 넓은 서재에서 옥타비오 파스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어와  시인은 문득 고개를 들어 창 너머 옥탑방을 바라봅니다.

그곳에서 그는 빨래줄에 걸려서 바람에 날리고 있는 여성의 팬티를 발견합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빠스’로부터 ‘옥탑 위의 빤스’로 이행하는 시인의 연상이 말이지요.

다시 시인은 옥탑방에 살고 있던 어떤 여인과의 매혹적인 사랑, 그 젊은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 시절 옥탑방에서 나누던 사랑을 시인은 즐거운 외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늪>이라는 조관우의 이 곡이 중요한 이유는,

이 노래만큼 조르쥬 바타이유(G. Bataille)가 이야기한 에로티즘의 전형을 잘 보여준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노래 속에는 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어느 여인을 관음증적으로 훔쳐보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여자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나 봅니다.

일부일처제가 강요되는 성적 금기 때문에 남의 아내가 된 여인은 더 강렬한 에로틱한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지금 같은 결혼 제도가 없다면, 그래서 남의 아내와도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면,

<늪>에 등장한  주인공 남자의 열망도 그처럼 강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옥탑 위의 빤스로 시작된 박정대 시인의 에로티즘이 이제 더욱 선명히 드러나지 않습니까?

젊은 여성이 빤스를 빨랫대에 거는 것을 지켜보는 것,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옥탑방으로 들어가서, 혹은 불러들여서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

이 모든 일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행동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두 남녀는 옥타비오 파스 의 <연인>에 등장하는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그토록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사랑을 구걸하던 청춘도 빛바래어 이제는 사람들 모두 돌아간 기억의 해변에서"

사회적 금기를 받아들이면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겁니다.

금기를 위반할 수 있는 열정과 몰입의 시간이 이제 너무나 멀리 스쳐간 과거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시인이 이 작품에서 그리워했던 것은 젊은 시절 사랑을 나누었던 어느 여인이지만,

그가 진정으로 되찾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에로티즘 그 자체일 수도 있겠지요. 

 

(강신주,『』철학적 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