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6. 19:20ㆍ책 · 펌글 · 자료/문학
수필은 에세이가 아니다. 에세이를 문학적 에세이와 비문학적 에세이로 구분하는데,
수필은 문학적 에세이에만 국한된다.
수필이 에세이와 다른 것처럼 생활 수기와도 다르다.
생활 수기가 자기 체험을 '기술'한 것이라면 수필은 체험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활 수기가 자기의 체험을 사실대로 옮겨서 쓴 실화라면,
수필은 자기의 체험을 재구성과 형상화라는 과정을 거쳐 예술적 감동을 획득한 글이다.
같은 소재인 신변 잡사를 단순히 기록하면 '신변 잡기'가 된다.
하지만 같은 신변 잡사라 하더라도 언어적 형상화를 통하여 문학성을 획득하면 수필이 된다.
즉 체험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소재 중심의 문학이다.
- 손광성
말뜻은 알겠는데 완전 공감은 안되는군요. '언어적 형상화'와 '문학성 획득'이 있어야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죠. 단순한 진솔성 ·참신함으로도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이 보편화 된 지금은 글쓰기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다보니까, 오로지 인쇄물에만 의지해서 쓰고 읽고 하던 시대랑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나 카페나 각종의 커뮤니티에 올려놓은 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디까? 어설프고, 투박하고, 맞춤법이 엉망이래도 뭉클하게 와닿는 경우는 없던가요? 외려 그래서 더욱 더 정감이 가는 경우는 없던가요? 저는 프로페셔널하다 싶게 쓴 글을 보면 기성품 같아서 식상하더군요.
뭐든지 자꾸 하다보면 늘지요. 매끄러워지고 세련됩니다. 저 역시도 예전에 비해서는 글쓰기가 좀 늘었다고는 생각이 되는데…, 그게 개운치가 않습니다. 요즘의 제 글 쓴 걸 보면 재기발랄함도 없고, 참신성도 없고, 영 맛깔이 안 납니다. 초등학교 어린애들의 일기장을 보면 재밌잖아요.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면 살살 바뀝니다. 수사가 점점 늘어나고 과장에, 변명에, ……,
(띄어넘고)
제가 쓰는 글은 생활수기도 못되는 신변잡기일 뿐인데, 언젠가는 저도 내밀만한 근사한 수필을 한 두 개쯤은 쓰고 싶긴 합니다. '수필'하면 우선 고등학교때 배운 것밖에는 생각이 안나는데, 이양하의「신록예찬」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효석의「낙엽을 태우면서」, 김진섭의「백설부」, 피천득의「인연」, 민태원의 「청춘 예찬」,
이양하의「나무」, 나도향의「그뭄달」, 김상옥의「백자부」, 이희승의「 딸각발이」, 조지훈의「지조론」, 피천득의「수필」, 양주동의「질화로」, 피천득의 송년」,
그 밖에 긴가민가하거나 교과서 외에서 본 기억으로는 계용묵의「구두」, 전숙희의「설」, 조지훈의「돌의 미학」, 전혜린의「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 김태길의 경주」, 이상의 권태」, 차주환의 냉면기」,
유병석의「자반을 먹으며」, 김점선의 무서운 년」과 「말 위에서 죽다」, 목성균의「세한도」, 법정의「초가을 산정에서」, 피천득의「나의 사랑하는 생활」, …… 가만 생각하니, 법정스님이 쓰신 산문들도 대개가 수필 아닌가요?
그렇게 따지면 저도 수필을 꽤나 읽었습니다. 안 읽은 것은 아니네요.
그런데 수필은 '언어적 형상화'와 '문학성 획득' 못지 않게 위트가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합니다. 위트가 들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글은 여운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
...........
...........
무서운 년
마흔을 훌쩍 넘겼던 해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다.
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에서 자퇴해라. 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
그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재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
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
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점선)
조회 136 추천 0 2009.12.03. 00:06
한국의 명수필 2 수필에 길을 묻다
법정 외 지음 / 손광성․맹난자․김종완 엮음 / 284페이지 / 10,000원 발행일 2005. 11. 25 / ISBN 89-324-7096-0-03810
“읽을수록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우리 수필” 황동규, 정호승, 안도현, 김훈, 장영희, 법정, 손광성, 맹난자, 목성균 등의 명문장이 한데 모인 한국 대표 수필선
1. 기획 의도
오늘날 우리는 수필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질적 수준의 문제가 제기되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열등해서가 아니다. 모든 장르는 고유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장르에는 우열이 없다. ‘수필은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로 오해하고 있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을 따름이다. 1990년대 이후 수필의 양적 팽창은 거의 놀랄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모든 작품이 다 문학성이 뛰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옥석을 가려야 하는 선정 작업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작업은 독자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작가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독자들에게는 양질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작가들에게는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수필의 역사를 한 눈에 가늠하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을유문화사는 1993년에 이미 『한국의 명수필』을 엮어 낸 바 있다. 그리고 세 차례에 걸쳐 개정판을 내면서 꾸준히 보완해 왔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신작들을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두번째 선집인 『한국의 명수필 2-수필에 길을 묻다』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지난 12년 동안 일어난 변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여성작가의 괄목할 만한 수적 증가라 하겠다. 1993년도 첫 선집에 수록된 작가를 성별로 분류한 결과,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7대 3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집에 수록된 작가의 성비는 5대 5이다. 이것은 비단 수필계의 일만은 아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수필가의 이와 같은 성비의 변화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필의 내용 면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수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첫째는 지적인 면에서 정적인 면으로, 둘째는 전문적 내용에서 일반적 내용으로, 셋째는 논리적 사고에서 감성적 정서로 그 성격이 변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한 시대를 돌아보고 다가올 시대를 조망하는 현재의 시각으로 오늘의 수필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2. 책의 내용
읽을수록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우리 수필들 수필은 부드러운 귀엣말 같은 친근감이 있고,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함이 있으며,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오는 삶의 예지가 있다. 수필은 시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소설처럼 차갑지도 않다. 따뜻하다. 이 따뜻한 체온을 나는 사랑한다. 수필도 때로는 비판을 서슴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정이 있는 비판이다. 수필의 미는 균제(均齊)의 미다. 치우침이 없는 조화의 미학. 알맞게 생략하고 알맞게 비약한다. 비유를 원용하되 산문의 명료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이며, 이야기 형식을 취하되 체험에 바탕을 둘 뿐 허구에 기대지 않는다. 한 잔의 차를 앞에 놓고 친구와 정담을 나누듯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직접성, 그것이 우리에게 신뢰감을 준다. -머리말에서
굳이 엮은이의 머리말이 아니라도 수필은 열린 형식의 문학이고 제재에 따라서 시적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소설적 또는 희곡적 형식을 취할 수도 있는 실험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때로 수필의 정의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양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글쓰기가 깃들어 있다. 시인, 소설가, 언론인, 음악가, 화가, 평론가 등 다양한 필자들이 저마다의 개성 있는 글쓰기로 미문(美文)을 창출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황동규, 정호승, 안도현, 김 훈, 장영희, 법 정, 손광성, 맹난자, 목성균 등의 문장가들이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 그 안에서 발견한 인생의 의미를 담아 내었다.
본문 중에서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이란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한 형태이다.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 의식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환희뿐만 아니라 고통 역시 수반하게 마련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다른 모든 일들처럼 사랑도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짝사랑이야말로 성숙의 첩경이고 사랑 연습의 으뜸이다. 학문의 길도 어쩌면 외롭고 고달픈 짝사랑의 길이다. 안타깝게 두드리며 파헤쳐도 대답 없는 벽 앞에서 끝없는 좌절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만이 마침내 그 벽을 허물고 점다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승리자가 된다. -장영희, 「아프게 짝사랑하라」중에서
명태를 생각하면 언뜻 늦가을 텃밭의 황토 흙에 하반신을 묻고 상반신을 햇살에 파랗게 드러낸 채 서 있던 청정한 조선무가 떠오른다. 그 순박무구하고 건강하기가 과년한 산골 큰애기 같은 조선무가 없으면 명태의 담백한 맛을 살려 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산골 동네 텃밭에서 그 청정한 무가 가으내 담백한 맛의 진수를 보여 주려고 뼈무르면서 명태를 기다렸다. 순박한 무와 담백한 생선의 만남, 그야말로 산해(山海)가 진미로 만나는 것이다. -목성균, 「명태에 관한 추억」
3. 차례
1 나의 사랑하는 생활 약 속 - 장영희 겨울 나무 - 황동규 거리의 악사 - 권지예 감탄과 연민 - 고재종 놓치고 사는 기쁨 - 백임현 가을 바람소리 - 김 훈 쑥 뜯는 날의 행복 - 반숙자 뽕 짝 - 이혜연
2 꿈 그리고 소망 무엇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가 - 김용택 명태에 관한 추억 - 목성균 봄빛 속으로 - 김종완 산책길에서 - 한계주 망치를 든 남자 - 윤온강 말 위에서 죽다 - 김점선 라지스탄 사막의 밤하늘 - 정 경
3 존재의 흔들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 황동규 푸른 텐트 - 정영숙 현대의 섬 - 정호경 몸 이야기 - 김 현 영정사진 - 정호승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 - 맹난자 숫 돌 - 송연희 난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 이혜숙
4 그런 일이 있었지 세한도歲寒圖 - 목성균 바람 부는 날의 산조 - 최 운 정미소 풍경 - 구 활 폐교에 뜨는 별 - 정목일 버드나무 - 정성화 어린 날의 초상 - 문혜영 한 장의 흑백사진 - 박영자
5 너와 나 그리고 우리 각 서 - 한승헌 벌의 언어와 나비의 언어 - 이어령 맥박의 음악과 호흡의 음악 - 한명희 무서운 년 - 김점선 두드러기 - 최민자 나와 구두의 관계 - 안도현 옛글 외우기 - 이일헌
6 사랑과 고뇌 늦어도 11월 하순에는 - 김광일 7월을 닮은 남자 - 김유진 내 삶의 위기, 그 실존 - 박범신 아프게 짝사랑하라 - 장영희 눈 길 - 김애자 고려장 - 김국자 이 가난한 11월을 - 손광성
7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노 출 - 김 훈 빵과 밥 - 이어령 산 책 - 맹난자 달리는 지하공간에서 - 염정임 피혁삼우皮革三友 - 오병훈 짐승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 이희자 삶의 비밀 - 안도현
8 생활의 예지 초가을 산정에서 - 법 정 해가 뜰 적에는 - 정진홍 어물전에서 - 손광성 묵언의 바다 - 곽재구 약을 팔지 않는 약사 - 김소경 뒤를 돌아보며 - 황소지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 - 최재천
4. 엮은이 및 글쓴이 소개
엮은이 손광성(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 맹난자(『에세이문학』발행인) 김종완(『에세이스트』발행인)
|
'책 · 펌글 · 자료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 (0) | 2013.10.29 |
---|---|
수필 - 몇 대목 (0) | 2013.10.29 |
『꿈꾸는 황소』 (0) | 2013.06.11 |
안대회, 『궁극의 시학』 (0) | 2013.05.24 |
고등학교 국어책 수록 문학작품 (0) | 2013.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