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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기로 하고 300만원을 받았다
마누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어머니의 임대 아파트 보증금으로 넣어 월세를 줄여드릴 것인가,
말하자면 어머니 밤 기도의 목록 하나를 덜어드릴 것인가
그렇게 할 것인가 이 목돈을,
깨서 애인과 거나히 술을 우선 먹을 것인가 잠자리를 가질 것인가
돈은 주머니 속에서 바싹바싹 말라간다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고 돈봉투 끝이 나달거리고
호기롭게 취한 날도 집으로 돌아오며 뒷주머니의 단추를 확인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잘 있나, 그럴 성싶지 않은 성기처럼 더듬어 만져보고
(…)
내 정신의 어여쁜 빤스 같은 이 300만원을,
나의 좁은 문장으로는 근사히 비유하기도 힘든
이 목돈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장석남 (1965∼ ) 부분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책장 맨 꼭대기에 우르르 꽂힌 <세계를 간다> 시리즈 중
‘남아프리카’ 편에 1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숨겨놓고 수시로 안위를 확인하느라 바쁘단다. 또 한 시인은
마누라 몰래 통장 하나를 꿰찼으나 좀체 쓸 데도 없고 차마 쓰지도 못해 6개월에 한 번씩 통장정리하는 게
일이란다. - 정끝별 시인.
오늘자 경향신문에 실린 건데, 보다시피 詩 전문이 아니고 부분만 소개했습니다.
이런 경우 전문이 궁금하긴 한데, 펴보면 백발백중 실망하게 됩되더군요.
시를 소개하는 사람도 그걸 알기에 그렇게 인용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필요로 하는 부분만을 꼭 발췌하는 것이 아닐 거라는 거죠.
지금 저 「목돈」이란 시도 보면, 저걸로 할 말은 다 했잖습니까. 더는 덧붙일 말이 없을 듯한데.....,
시 전문을 찾아보니까 이렇게 덧붙였더군요. 사족이란 이런 것입니다.
‘평소의 내 경제관으론 목돈이라면 당연히 땅에 투기해야 하지만
거기엔 턱도 없는 일, 허물어 술을 먹기에도 이미 혈기가 모자라
황홀히 황홀히 그저 방황하는,
주머니 속에서, 가슴속에서
방문객 앞에 엉겁결에 말아쥔 애인의 빤쓰 같은
이 목돈은 날마다 땀에 절어간다’
아! 또 ‘(…)’ ← 이 부분, 원래는 이게 아니라 첨가된 말이 더 있습니다.
바로 이 내용입니다.
‘잊어버릴까 어디 책갈피 같은 데에 넣어두지도 않고,
대통령 경선이며 씨가 말라가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바라보면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 꼭 쥐고 있는’
아시겠지요? 정끝별시인이 왜 ‘(…)’ 이런 식으로 처리했는지.
장석남 시인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신문에 소개된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했을런지.
물론 정 시인이 장 시인에게 양해야 구했겠습니다만.
사족(蛇足)이라는 거, 글 쓰다보면 그게 쉽지 않더군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수정을 할 경우에 보면 거의가 군더더기 지우는 일입니다.
그렇게하고 나서도 훗날에 다시 또 읽어보면 또 눈에 띕니다.
줄이고, 지우고 자꾸 하다보면 처음의 반밖에 안 남게 되는데, 헛소리가 그만큼 많았단 얘기죠.
그러면 지우고 없애고 고치고, 하는 이것이 잘하는 짓이냐?
블로그에서는 꼭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손보면 문장으로서는 간결· 명료· 명징· 엑기스…… 흠이야 없어질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기록성으로나 문학성(?)으로 보자면 낙제감이지요.
推敲란 역시 어렵고도 애매한 문제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글쓰기보다 퇴고가 어렵다’고.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 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 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
텔레비젼의 희극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막걸리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 천상병
굴 비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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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문화부가 수여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시상식장에서 문학부문 수상자 함민복시인(37)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난해까지는 신경숙. 윤대녕. 김소진씨 등 "미래의 한국문화를 이끌" 작가들이 선정돼 상금 1천5백만원씩을 받았으나 올해는 IMF 탓에 상금이 없어진 것이다. 함시인은 상금 대신 혼자서 들기 힘든 조각품을 받았다. 훌륭한 예술작품이 그에게는 "무거운 짐"이 된 것이다. 그는 조각작품을 옮기기 위해 시상식장인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뒤풀이 장소인 인사동까지 택시비로 8,000원을 들였다. 하루 생존비를 길 위에 뿌린 셈이다. 뒤풀이 장소에 모인 몇몇 시인들은 조각품을 어루만지며 "한국에서 가장 무게있는 상"을 받았다고 그를 위로했다. 함시인은 시쓰기 이외에 다른 밥벌이를 하지 않는 전업시인.
한달에 두편 정도 유력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면 원고료로 10만원쯤 벌고, 그밖의 글을 써서 20만~30만원 정도로 한달간 생존한다. 그는 "사랑은 짧고 생활은 길다"면서 "한 여성의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 결혼마저 포기한 상태로 시만 쓴다. 생활비를 줄이려고 현재 강화도의 한 초가집에 들어가 산다. 외로움 때문에 전화를 많이 쓸까 두려워해 전화코드마저 빼버린 채. 시의 죽음이 이야기된다. 이제는 목숨 걸고 시를 쓰는 시인이 드물 뿐더러, 그런 시인의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오히려 쓰레기 같은 것들이 베스트셀러 되기 일쑤다. 패배가 예정된 장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국어 표현의 어떤 극점에 도달하기 위해 언어를 만지는 시인들에게 가난은 "팔자"다. 그에 비하면 이번 상의 대중문화 및 공연부문 수상자들은 대부분 옷차림새부터 화려했고 축하객이 들끓었으며 뒤풀이는 진수성찬이었다. 시인의 행색이 수상식장의 화려함에 먹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시인은 자발적으로 사회적 혜택들을 사양하고 고통스런 창작에 삶을 건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먹고 산다지만 밥도 먹어야 산다. 상금이 없는 상일지라도 그 수상자가 전업시인일 경우 다른 경비를 줄이더라도 예외적으로 상금을 주면 어떨까.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쌀 두 가마니 값이면 된다. 이는 비유나 비꼼이 아니다. 함시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게 20세기말 한국시인의 현주소이다. ( 2012년 12월 13일자, 경향신문 김중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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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이 뭔 대학 교수인가 학장인가 그럴 겁니다.
누가 쓴 글에서 봤는데,, 몇몇 시인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는가 봅니다.
끝에 회식을 하겠지요. 그 모임의 수장인지 총무인지를 안도현시인이 맡았는데,
저렇게 쌀 걱정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얄짤 없이 돈을 걷더라면서, 뭐라 욕합디다.
자기는 교수로써 월급도 수월찮게 타고, 시집도 잘 팔리니까 인세수입도 두둑한데,
겨우 그거 돈 십만 원 갖고서 야박하다 이거지요.
지금 이 말을 한 사람은 당연히 같은 시인입니다.
누군들 생색내는 돈으로 꽁밥 먹길 좋아하겠습니까? 그럴만하니까 저런 소리가 나왔을텐데,
듣고보니 기분이 좀 그렇습디다. 시 쓰시는 분들 거의가 형편들 어렵다잖습니까.
안도현이라면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만한 사람인데, 그러면,
자존심 안 상하게 슬며시 자기가 내줄 수도 있는 거지요.
전해 들은 얘기라서, 혹시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업시인'이라는 말에는 거부감이 듭니다.
그 말 속에는 전근대적 거들먹거림이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고, 먹고사는 것은 별개의 다른 문제 아닙니까?
전혀 돈벌이도 안되면서 시를 씁네만하고 돌아다니면 누가 좋아합니까. 자식새끼는 어찌 기르고요.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게, 죽치고 앉아 있다고 해서 시상이 나오는게 아니잖아요.
고요한 데 찾아다니면서 거닐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구요.
시장바닥 한가운데서 장사하면서도, 학원선생하면서도, 예비군 중대장을 하면서도, 버스 기사하면서도,
공무원하면서도, 은행원하면서도, ... , 다 쓸 수가 있어요.
암튼 '전문시인'은 몰라도 '전업시인'이라는 말은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전업으로 나서서 돈 많이 벌면 당연히 전업시인이 맞지요.
그렇지만 끼니 걱정하면서 어떻게 전업시인이란 소리가 나옵니까?,
호구지책도 없는 사람이 누굴 가르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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