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잉? 기형도에게 이런 말이 있었어?

2013. 5. 28. 13:44詩.

 

 

 

기형도의 죽음에 관하여

기형도의 죽음은 그야말로 풍문을 만들어 내었다. 당시 동성애자의 집합소 격이었다는 종로 파고다 극장에서 새벽시간에 홀로 죽음을 맞은 것을 두고 나돈 '기형도가 게이'이고 사인은 뇌졸중이 아닌 복상사(혈압상승으로 인한 심장마비)라는 설다. 그가 동성애자 였다는 것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 [늙은사람]나 [나쁘게 말하다]에서의 일부구절, 수필 [장정일 소년] 하지만 그가 생전에 가깝게 지낸 이들은 이러한 소문을 전면부인하였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 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기형도「나쁘게 말하다」전문)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임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기형도「늙은 사람」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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